무고한 일가족을 방화살해한 진범, 그녀의 충격적인 연극
[이준목 기자]
2014년 '양양 일가족 방화살인사건'은 강원도 양양군에 거주하던 여성 박모 씨와 자녀 3남매가 고의적인 방화로 인하여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범인은 박씨의 지인이던 여성 이모 씨로 밝혀졌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더욱 놀라운 사실은, 범인이 저지른 방화 살인이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실체를 감추기 위하여 오랫동안 '연극'까지 벌였다는 것이다. 평범한 가정주부처럼 보였던 그녀는 한 무고한 일가족을 왜 그토록 잔혹하게 살해해야만 했던 것일까. 과연 그녀의 치밀한 연극 속에 가려진 무서운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14일 방송된 SBS 실화 스토리텔링 예능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119회에서는 '크리스마스의 악몽' 편을 통해 양양 방화살인사건의 충격적인 진실과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를 조명했다.
2014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 강원도 양양의 한 성당에서는 세 아이들의 세례 성사가 진행됐다. 박미연 씨(가명, 당시 39세)의 세 자녀인 이어진(당시 11세), 이다은(9세), 이우진(6세)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미연 씨의 가족은 3년 전 이 마을로 이사 왔고 동네 주민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귀여운 아이들은 주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밝고 선한 성격의 미연 씨는 학부모 모임과 성당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며칠 후인 12월 29일, 동네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미연 씨 가족이 거주하던 2층 저택에서 갑작스러운 화재가 발생하여 미연 씨와 세 아이가 모두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당시 주민들은 사건 당일날 밤 9시 30분, 두 번의 큰 폭발음과 함께 미연 씨의 저택에서는 불길이 활활 치솟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주민들은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소식을 듣고 지인들도 현장으로 달려왔다.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 하는 가운데, 미연씨와 같은 학부모 밴드 모임의 멤버로 절친한 사이였던 이진희 씨(가명)는 미연씨 가족을 구해야한다며 치솟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려다가 주변의 만류를 당하기도 했다.
불은 1시간 반만에 진화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미연 씨의 가족은 구할 수 없었다. 첫째 어진이와 우진이는 이미 현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고 작은 몸에는 심한 화재 흔적이 발견되었다. 엄마 미연씨와 둘째 다은이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끝내 생명을 이어가지 못했다. 지인들은 미연 씨 가족의 참혹했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침통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사건 현장에서는 일반적인 화재 사고 현장과는 다른 수상한 정황이 잇달아 발견된다. 화재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가족 누구도 탈출을 시도한 흔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모두 집안 곳곳에서 잠을 자듯 누운 채 발견되었고, 아무도 출입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더구나 집안 곳곳에서는 휘발유가 뿌려진 흔적이 발견되었고, 심지어 사망한 어진이의 시신에 남은 화상에서도 누군가 고의로 휘발유를 뿌린 것이 확인됐다. 이는 곧 화재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이재혁 형사는 "어마어마한 범죄였다. 평생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다"고 회상하면서 "피의자를 체포하고 난 후 조사를 하는데 사람을 대하면서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악마구나, 악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라는 기억을 떠올렸다. 이 사건은 누군가의 방화에 대한 '살인'이었으며 범인이 존재했던 것. 과연 범인의 정체는 누구이며 담당 형사는 그를 보고 왜 그토록 충격을 받아야했을까.
경찰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먼저 미연씨의 가족을 조사했다. 사망한 미연씨는 남편과 별거하며 홀로 삼남매를 키우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답답할 정도로 순박한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찰은 처음엔 미연 씨의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여 수사를 펼쳤다. 미연 씨의 남편은 아내와 사이가 좋지 못했고 1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가족과 따로 떨어져 살고 있던 상태였다.
하필 미연 씨의 남편은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오랜만에 집에 다녀갔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하지만 조사 결과 남편은 크리스마스라서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사줬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집을 떠난 상태였다. 남편의 몸 어디에서도 휘발유를 사용한 흔적이 나오지 않았고 모든 알리바이도 사실로 확인됐다.
미연 씨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빠였던 이숭희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아이들 셋 하고 아내를 한 번에 잃었는데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속옷만 입고 사진을 찍는 게 수치스럽고 힘들고 어떻게 표현할 수 없었다"라며 괴로워했다.
경찰이 두 번째로 의심한 가능성은, 미연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아이들까지 살해했을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미연 씨에게 자살을 할만한 동기는 찾을 수 없었다. 남편 이숭희 씨는 "집사람은 마음이 굉장히 약하고 모질지 못한 사람이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그렇게 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다"라고 일축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다른 증언을 한 사람은 평소 미연 씨와 절친하게 지냈다는 이진희 씨였다. 그녀는 미연 씨가 남편과 사이가 좋지 못해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휘발유를 어디서 구하냐고 제게 물어본 적 있다. 이는 가족들도 잘 몰랐을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증언을 남겼다.
한편 화재 당시에도 살아있었던 네 가족이 탈출하지 못한 이유가 밝혀졌다. 바로 가족들의 시신에서 수면제의 일종인 졸피뎀 성분이 검출된 것이다. 경찰은 사고 현장에서 확보한 맥주캔과 음료병 등에서 졸피뎀이 들어있음을 확인했다. 누군가 미연씨 가족에게 수면제를 먹여서 잠들게 한 후 방화를 저지른 것이다.
경찰은 범인이 사건 당일날 늦은 저녁시간에 미연씨와 맥주를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경찰은 졸피뎀의 입수경로를 추적하면서, 한편으로는 미연씨의 남편이 가족을 찾아왔다는 사실이 동네에 어떻게 퍼지게 되었는지 정보의 출처를 탐문했다.
알고보니 모든 소문의 근원에는 바로 이진희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녀는 미연 씨의 절친한 지인으로 사건 당일 화재 현장에 뛰어들겠다고 나섰던 그 사람이었다. 심지어 이진희는 미연씨 가족의 장례식장에서 통곡하다가 몇 번이나 쓰러지기도 했다고. 그런데 미연 씨의 남편이 집에 왔다는 소문을 퍼트린 것도, 미연 씨가 휘발유 구매를 문의했다고 유일하게 주장한 것도, 공교롭게 모두 이진희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진희를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하다가 점점 수상한 정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진희는 화재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에게 먼저 휘발유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미연 씨가 자살한 것 같다는 주장까지 늘어놓았다.
경찰은 사건 당일 이진희의 행적을 추적하다가 CCTV를 통하여 그녀가 사건 당일 병원에서 졸피뎀을 처방받고, 주유소에서 휘발유까지 구입한 사실을 포착했다. 또한 이진희가 당일 마트에서 구입한 음료와 맥주병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과 동일했다.
이어 이진희가 사건 당일 치킨과 음료를 들고 피해자의 집에 들락거린 모습에 이어, 화재 발생 직전에는 근처 초등학교에서 차 시동을 끄고 대기하다가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하는 소방차 뒤를 따라 차량를 몰아서 현장에 다시 돌아오는 모습까지도 확인됐다.
그렇게 그녀는 미연씨 가족의 죽음을 가장 슬퍼하는 목격자이자 절친 행세 '연극'까지 했던 것이다. 네 가족을 방화로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의 진범이자, 담당 형사조차 경악을 금치 못했던 '악마'의 정체는 바로 이진희였다.
경찰은 사건 발생 열흘 만에 서울 강남에서 이진희를 긴급 체포했다.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던 이진희는, 경찰이 증거들을 계속해서 제시하자 결국 범행을 시인했다.
이진희는 왜 그렇게 끔직한 범행을 저질렀을까. 이진희는 "술을 마시다가 너무 화가 나서 그랬다. 미연이가 제 아들을 욕했다"라고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며 미연 씨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 이진희는 뇌성마비 장애를 둔 아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미연 씨가 아들을 험담하는 이야기를 해서 순간적으로 격분했다는 것.
하지만 이진희의 모든 행적은 그녀의 범행이 철저한 계획범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진희가 사건 3일 전에도 휘발유를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자, 한번 구입했다가 마음이 약해져서 버렸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경찰이 심문을 진행하려고 하면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며 혼절하기도 했다. 병원에 데려갔지만 별다른 증상은 나오지 않으며 그조차 연극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담당 형사는 "아마 자신의 방어본능이었을 것"이라고 회상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마침내 범행동기가 밝혀졌다. 이진희는 미연 씨에게 1800만 원의 채무가 있었다. 이진희는 매달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기로 했지만 첫 석달 이후로는 전혀 갚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사 계획을 세웠던 미연 씨는 이진희에게 돈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다급해진 이진희는 마침 미연씨의 남편이 다녀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연 씨 가족을 살해한 이후에 남편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 범행을 철저히 계획한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미연 씨는 사망하기 직전에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연 씨의 발바닥에서는 온통 그을음과 재가 발견됐다. 미연 씨는 수면제로 몸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도 마지막 힘을 다하여 둘째 딸을 데리고 작은 방으로 피신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미연 씨는 끝까지 목숨같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하여 사력을 다했던 것이다.
이진희의 연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진희가 미연씨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3일 전에 또다른 방화 살인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진희는 또다른 지인이던 장규식씨(가명)에게도 돈을 빌린 상태였다. 이진희는 미연씨에게 했던 것처럼 장씨를 찾아가 졸피뎀을 탄 술과 피로회복제 등을 권했고, 장씨가 혼절하자 방화를 저질렀다.
다행히 장씨는 의식을 되찾아 간신히 현장을 빠져나오며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장씨는 그날의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이진희는 병원에 있는 장 씨를 천연덕스럽게 찾아와 그날의 기억이 있는지 확인까지 했다고 한다.
경찰은 수사 결과 이진희가 현장에서 졸피뎀이 든 피로회복제와 휘발유의 흔적을 찾아냈다. 이진희는 얼마 전 장 씨의 사망 보험금 수익자를 자신으로 돌려놓아서 만일 장 씨가 사망하면 1억 6천만 원의 사망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던 상태였다.
오직 '돈' 때문에 이진희는 불과 3일 만에 4명을 살해하고 또다른 한 사람의 목숨도 거의 빼앗을 뻔 했다. 그리고 희생된 사람들은 모두 이진희가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은인들이기도 했다.
이진희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녀는 겉으로는 장애아를 키우는 평범한 엄마이자 주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진희는 특별한 직업 없이 남자친구의 아들을 돌보며 생활비를 지급받았고, 기초생활수급 지원금과 아들의 장애 지원금까지 더하면 고액의 고정 수입이 있었다. 이진희는 심지어 아파트에 살고 중형차도 끌고 다닐 만큼 여유로운 생활을 했다.
하지만 이진희의 실체는 달랐다. 그녀는 주변에 크고 작게 빚진 금액만 무려 1억 원에 달했다, 또한 미연 씨가 사망한 후 가족들에게 가짜 차용증을 내밀며 미연 씨가 오히려 자신에게 1800만 원의 빚을 졌다는 뻔뻔한 거짓말까지 했다.
이진희는 모든 범행이 밝혀졌음에도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하며 미연 씨의 탓으로 책임을 돌렸다. 피해자들에게 대한 미안함과 반성의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장애인인 아들을 내세우며 선처를 호소하는가 하면, 경찰들에게는 자신의 강아지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진희에 대한 임상심리평가에서는 그녀가 '연극성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이진희는 의외로 사이코패스는 아니었지만,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며 연극적인 히스테리성 성향과 수동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연극성 인격장애를 가진 이들은 마치 하나의 배역을 부여받은 것처럼 특정 이미지나 캐릭터를 계속 만드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이진희는 스스로 좋은 사람, 멋진 사람, 불쌍한 사람으로 '연기'를 해왔던 것이다. 이들의 실체는 사이코패스보다도 더 알아차리기 힘들어서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범인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이숭희씨는 "이진희는 자신의 상황을 더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남에게 거리낌 없이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인물이다. 내내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담당 형사들마저도 "이진희는 경찰과 대화할 때는 '평범한 부모'로 연기를 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티가 나는데 이진희는 그렇지않았다. 4명을 살해한 피의자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소름돋고 섬뜩했다"고 돌아봤다.
진단결과 이진희는 '재범 위험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정신장애 위장 여부를 판별하는 꾀병 탐지 검사에서는 이 씨는 무려 20점이라는 높은 점수가 나왔다. 전문가들도 이런 점수는 처음 본다고 경악할 정도였다고 한다.
검찰은 이진희에게 사형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그에게 무기 징역 및 30년간 위치 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하는 판결을 내렸다. 설사 이진희가 훗날 가석방이 되더라고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는 것을 감안한 판결이었다.
이진희는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하루아침에 가족들을 잃고 홀로 남겨진 유족의 슬픔은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었다. 이숭희 씨는 시간이 흘러도 10년 전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좋아하던 아이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한 유족들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신상을 세상에 알릴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진희는 가명이고, 무고한 네 명의 가족을 살해한 악마는 여전히 감옥에서 죄책감도 반성도 없이 하루하루 출소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도 옥중에서 자신만의 또다른 연극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해자의 이름을 알릴 수 없다면 피해자인 아이들만이라도 기억해 달라." 가족을 잃은 아빠의 마지막 호소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했던 이어진, 이다은, 이우진 세 아이와 어머니 미연 씨까지, 그들이 진정한 안식을 찾는 유일한 길은, 이 비극적인 사건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해주는 것, 그리고 가해자가 죄에 걸맞는 댓가를 치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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