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새 60% 급등락…‘경주마 코인’의 유혹 [스페셜리포트]
제대로 분석 않고 불나방처럼 돌진
도박 같은 투자 단기간엔 수익
장기 수익률은 별로 좋지 않아
신중하고 차분한 투자 접근 필요
한국 가상자산 시장에 ‘포모(FOMO)’ 심리가 팽배하다. 포모는 영어 단어 ‘Fear of Missing Out’의 줄임말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가상자산 가격이 올해 들어 급등하면서 수익 인증 사례가 쏟아지자 기회를 노린 젊은 투자자가 대거 가상자산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모두가 수익을 내는 시점에서,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분위기다.
문제는 젊은 투자자들의 투자 방식이다. 거래량이 많고 안전한 가상자산보다는 단기간에, 가격 등락폭이 심한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이가 상당수다. 상장폐지 직전인 코인에 자산을 몰아넣고 단기 급등의 ‘한 방’을 노리는 행위도 빈번하다. 선물 시장에서는 레버리지가 125배 상품을 넘어 200배까지 허용하는 상품을 사들인다. 당장 옆의 사람이 수십, 수백 배의 수익을 내자, 포모 심리에 휩싸여 무리한 투자에 도전하는 것이다. 블록체인 업계 일각에서는 “투기를 넘은 도박 수준의 무리한 투자에 도전하는 사람이 넘쳐난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국 시세보다 100% 비싸게 팔리기도
현재 가상자산 시장 곳곳에서 투기 과열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현물 시장에서는 단기 급등 자산에 투자자들이 몰려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선물 시장에서는 최대 200배에 달하는 레버리지 상품까지 등장했다.
현물 시장의 지나친 과열 사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썸씽’ 코인과 ‘하이파이’ 코인이다.
‘노래방 코인’으로 유명했던 국내 코인 ‘썸씽’은 지난 2월 말 거래량이 갑자기 폭등했다. 상장폐지를 앞둔 코인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 이른바 ‘상폐빔’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투기 세력부터 기존에 상장폐지 직전 코인이 가격 급등락이 심하다는 점을 안 개인 투자자까지 몰리면서, 썸씽 가격이 급등했다. 2월 29일 썸씽은 업비트에서 가격이 30원까지 치솟았다. 이틀 전인 2월 27일 가격이 7원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려 300%가 넘는 상승폭이다. 당시 코인 대장주 비트코인에 이어 업비트 거래량 2위를 차지할 정도로 활발히 거래됐다.
썸씽은 30원에 육박하는 가격을 기록한 뒤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차익을 본 투기 세력이 물량을 정리하면서 상승분을 몇 시간 안에 다 반납했다. 3월 12일 상장폐지 직전까지도 하루에 30~-30%를 오가는 등락폭을 보였다. 마지막 가격은 7원대였다. 이날 각종 가상자산 커뮤니티에서는 ‘썸씽에 물렸다’ ‘마지막에 매도를 못해 손해를 봤다’는 인증 글이 쏟아졌다. 한 방을 노린 투자자들이 무리하게 사들였다 막판에 처분하지 못해 막대한 손해를 본 것이다.
‘하이파이’ 코인은 3월 13일의 ‘경주마 코인’이었다. 하루 만에 120% 가격이 급등하며 가상자산 시장을 뒤흔들었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쓰는 은어 ‘경주마’는 투기 세력과 개인 투자자가 한 번에 몰려 1시간 만에 가격이 40% 이상 폭등하는 코인을 말한다. 경마 경기장에서 빠르게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코인 가격 상승이 단기간에 급등한다는 뜻이다. 경주마 코인의 가격 상승에는 아무 이유가 없다. 오직 수요 폭등으로만 가격이 오른다. 당연히 가격이 다 오르고,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 가격이 급락한다.
3월 13일 저녁 9시경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서 하이파이 코인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3월 12일 1600원대였던 코인은 9시에 2400원으로, 그리고 10시에는 3700원까지 치솟았다. 같은 시간 바이낸스, 게이트아이오와 같은 글로벌 거래소에선 가격 변동이 없었다. 여전히 1600원대를 기록했다. 한국 시장과 글로벌 시장과의 가격 차이가 125%를 넘어섰다. 일반적으로 국내 거래소와 글로벌 거래소 차이가 5~7% 정도 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순수하게 국내 투자자들의 과열된 투자 열기가 코인 가격을 급등시킨 셈이다. 이유 없는 가격 상승은 곧 급락으로 이어졌다. 10시 30분경 3700원에서 대규모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10초 만에 가격이 40% 하락하면서 2200원으로 곤두박질쳤다. 불나방처럼 뛰어든 개인 투자자들은 물량을 매도할 틈도 없이 막대한 손해를 봐야만 했다.
현재 국내 거래소에서는 선물 거래를 지원하지 않는다. 현물 거래 시장에 만족하지 못한 투자자들은 바이낸스, MEXC 등 선물 거래를 지원하는 해외 거래소까지 진출하는 양상이다. 이들 거래소는 레버리지를 최대 200배까지 지원하는 선물 상품을 판매한다. 레버리지 비율이 높은 선물 상품은 도박에 가깝다. 125배 레버리지 선물 상품을 예로 들어보자. 가격이 0.8% 상승하면 바로 100%에 달하는 수익을 얻는다. 반대로 가격이 0.8% 하락하면 바로 투자한 자산을 잃게 된다. 몇 분 안에 자산이 모두 청산될 수 있는 초고위험 상품이다. 돈을 잃을 위험이 크지만, 반대로 투자에 성공하면 현물 거래와 비교가 되지 않는 막대한 수익을 벌 수 있다. 가상자산 커뮤니티에서는 현물 트레이딩보다는 선물 거래에 뛰어들어야 적은 자본으로 큰돈을 번다는 광고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실제로 선물 거래 규모는 점차 커지는 중이다. 크립토퀀트에 따르면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코인을 살 때 현금처럼 사용하는 ‘테더’의 시가총액이 최근 1000억달러에 근접했다. 올해 초 시가총액 916억달러 규모에서 급증했다. 선물 거래를 하려는 개인 투자자들이 테더를 대량 구매하면서 테더 인기가 올랐다는 분석이다.
투기 광풍에 힘입어 국내 가상자산 거래 규모는 국내 주식 시장을 넘어섰다. 시장분석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3월 13일 기준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 거래액은 12조776억원에 달했다. 같은 날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은 10조7630억원으로 집계됐다.
생존 편향·하우스 머니 효과
포모증후군은 ‘소외불안증후군’이라고도 불린다. 주로 타인에게 느끼는 시기심과 질투심, 불안감 등에서 야기된다. 포모증후군에 휘둘리면 장기·분산 투자와 같은 이성적, 합리적인 투자보다는 투기에 가까운 투자에 집착하게 된다. 왜 유독 젊은 투자자들이 ‘포모’에 휩쓸린 투자를 할까.
심리학자들은 ‘투자자들의 생존 편향이 심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생존 편향이란 ‘살아남은 것만을 보는 경향’을 뜻한다. 알고리즘에 따라 투자 성공 사례를 중심으로 정보를 접하면서 ‘남들처럼 투자하면 대박이 나고, 적어도 실패는 하지 않는다’는 기대를 형성한다는 설명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포모 현상은 미디어에서 투자 성공 사례 위주로 정보가 노출되면서 ‘나도 따라 해야 한다’는 동조, 불안심리가 작용한 현상”이라며 “투자자들은 ‘나에게만 이렇게 엄청난 행운이 올 수 없다’는 객관적인 시선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믿고 싶은 사안만 믿는 ‘확증 편향’ 역시 투자 광풍에 영향을 미친다. 성공 사례만 보고,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는 분석이다. 확증 편향이 심해지면 다른 실패 사례는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최신 정보만 보고 빠르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당장 남이 성공했다는 정보를 SNS, 커뮤니티를 통해 접하면 나도 성공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위험을 경고하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 편향’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하우스 머니’ 효과가 개인 투자자들의 공격적인 성향을 더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하우스 머니’ 현상이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탈러가 주창한 개념이다. 카지노에서 돈을 많이 딴 사람일수록 더 공격적으로 도박에 몰입하는 현상에서 유래했다. 리처드 탈러에 따르면 사람들은 도박으로 얻은 돈을 ‘자신의 돈’이라기보다는 남의 돈 또는 카지노의 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손실이 나도 내 돈을 잃지 않았으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라고 착각한다는 것. 하우스 머니 효과는 상승과 하락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100만원에서 90%가 오르면 190만원이 된다. 이때 하락 개념을 잘못 이해한 투자자들은 다시 90%가 빠지면 100만원으로 원상 복귀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190만원에서 90%가 하락한다는 것은 171만원이 증발한다는 뜻이다. 투자자에게 남은 현금은 100만원이 아니라 19만원이다.
위험 헤지 투자 전략·비중 조정 등
투자 전문가들은 소외 심리에 휘둘린 투자는 최대한 피하라고 권한다. 투자자들이 뛰어드는 ‘한 방’을 노리는 투자법은 단기적으로 보면 그럴듯해 보인다. 흐름만 잘 타면 한 번에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수익률이 떨어진다. 뒤쫓기듯 상승세만 보고 들어온 투자자들은 가상자산 전망, 블록체인 기술 등의 분석 능력이 부족하다. 가상자산의 핵심인 블록체인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개인 투자자는 드문 게 현실이다. 차트만 좇다 보니 손해 보기 일쑤다.
전문가들은 ‘소외 심리’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2가지 사안을 항상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 투자의 위험성을 늘 염두한 채 투자하라는 조언이다. 수익률이 높을수록 위험성도 커진다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가상자산 시장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모든 투자는 자기 책임으로, 은행 예금 금리보다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것들은 홍콩 ELS(주가연계증권)와 같이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고 전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자본 시장이 부실하니, 코인 시장에 관심을 갖고 들어오는 이들이 많다. 새로 들어온 이들은 코인의 위험성을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내재 가치가 없는 자산이기에 투자할 때는 반드시 ‘급락’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둘째, 최대한 검증된 자산에 집중하라는 조언이다. 검증 안 된 알트코인보다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같이 사실상 제도권에 안착한 코인을 중심으로 투자하라고 추천한다. 김대종 교수는 “비트코인 투자는 미국에서 ETF가 승인됐고, 가상자산이 비트코인을 주축으로 하는 만큼 안정성이 높다. 최대한 변동성이 낮은 자산을 중심으로 투자하라”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코인 리서치기관 연구원은 “가상자산 투자자라면 알트코인보다는 비트코인을 추천하지만 굳이 알트코인에 투자하고 싶다면 비트코인 금액의 5% 수준에서 하길 추천한다”며 “가상자산 투자도 무조건적 투자보다는 투자자가 열심히 학습하며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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