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준 분 그리워서"... 한 노숙인 할아버지와의 대화

박승일 2024. 3. 1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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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인 내가 30여 분 식사 말동무 하며 느낀 것... 설악산 가보고 싶다는 소망 꼭 이루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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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일 기자]

경찰관 직업이 일반 직장인과 다르게 지닌 장점 한 가지를 꼽는다면,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 말을 건넬 수 있다는 점이다. 가끔은 여행객이 혼자 사진을 촬영하고 있을 때, 도와준다고 나서도 여행객은 아무런 의심 없이 무조건 믿어주고 고마워한다. 그럴 때는 내가 입은 경찰 제복 덕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 일교차가 심해서 이른 아침에는 상당히 쌀쌀하다. 근무를 나와 오전 8시에 공원 한 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노숙인 한 분을 만났다. 얼핏 보기에는 일반 시민으로 보일만큼 깨끗한 옷을 입었고 머리 모양새도 단정했다. 허름하고 해진 신발을 봐야 그분이 노숙인인 것을 짐작할 정도였다.
 
▲ 공원에서 식사중인 노숙인 할아버지 이른 아침 할아버지는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 박승일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직 아침에는 추운데, 밥만 드시면 좋겠구먼 소주는 왜 드신대....."

그러자 할아버지는 나같은 경찰관의 접근(?)이 낯설지 않은 듯 나무젓가락으로 밥 한술을 뜨면서 말씀하셨다.

"소주를 마셔야 몸이 따뜻해져요. 도시락이 어제 받은 거라 많이 식었거든요." 

자신을 1947년생이라고 말한 노숙인 할아버지는 올해로 77세 어르신이었다. 하지만 얼핏 외모만 봐서는 그 정도로 보이지 않을 만큼 매우 건강해 보였다. 나는 할아버지가 식사를 다 하시는 동안 말동무를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혼자서 식사를 할 때 누군가 옆에서 이야기만 해줘도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잘 알고 있기에 거부감을 드리지 않는 선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현재 종로 2가 주변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왜 노숙자 쉼터'에 가지 않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과거 만나본 노숙인들을 통해, 이미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수많은 이유에 대해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 어제 받았다는 도시락 종로2가 교회에서 무료로 받은 도시락
ⓒ 박승일
 
"도시락은 어제 받은 거라 식었다면서 아침을 드실 수 있는 곳은 없는 거예요?"라고 묻자 답하는 할아버지. "절에서 아침에도 밥을 줘요. 점심은 또 교회에서 와서 주먹밥을 챙겨주고..." 

"그럼 거기 가셔서 따뜻한 밥을 드시죠?" 하자 돌아오는 답.

"어제 받아놓은 도시락이 있는데 아깝잖아요. 이것도 귀한 건데......"

그랬다. 할아버지는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자신이 받아 둔 도시락을 책임지고 있었다. 무료로 받은 도시락이지만 나눔의 소중함과 도시락의 값어치를 의미 있게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할아버지는 먼저 "저, 3월 말 고시원에 들어갈 겁니다. 한 달에 25만 원하는 곳을 이미 알아봐 뒀어요" 한다. 나는 "진짜요? 그럼 겨울 지나기 전에 미리 들어가시지"라고 말을 했다. 

"작년까지는 한 달에 70만 원 가량을 나라에서 받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백만 원 정도 받아요. 기초수급금과 장애수당까지 받으니까 그렇게 되네요."

사실 할아버지의 정확한 국가지원 생활비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단지 분명한 것은 현재 할아버지는 올해부터 조금 더 많은 지원금을 받는다는 것에 기대가 크다는 것. 그걸 말할 때 상기된 얼굴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앞으로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고시원에 들어간 뒤에는 설악산을 한번 꼭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면 되는데 장애인 할인을 받아 갈 수 있다고 자랑(?)까지 하셨다. 부디 그 꿈이 꼭 이뤄졌으면 한다.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사람 

"이제 고시원에 들어가시면 술은 줄이세요. 오래오래 사셔야죠" 하자 그분이 답한다. 

"술을 마시다 보면 나를 키워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저절로 나요." 

'그럼 술을 더 안 먹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어릴 적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술을 마시는 걸로 대신하고 있는 듯했다.

어려서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자신을 키워줬다고 한다. 어릴 때 양쪽 팔을 다쳐 고생을 많이 했다고도 한참 이야기 하셨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팔을 움직이는 데에 크게 지장이 없어 보였다.

어릴 때 할머니께서 "항상 소망과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많다고 했다.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77살이 되었지만 어릴 적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말을 어찌 저렇게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였다. 

"생활하시는 데서 다른 불편함은 없으세요?"라고 묻자, "종로 2가 동사무소(주민 센터) 복지담당 직원들이 너무 잘해줘요. 생활용품도 언제 오라고 미리 날짜도 알려주고 이야기도 너무 잘 들어줘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하신다.

사실 종로 2가 주변에는 노숙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민 센터 복지 담당 직원들도 업무가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혜택을 받고 있는 할아버지가 이렇게 직접 칭찬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직원들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0여 분의 시간이 흘렀다. 천천히 숟가락을 들던 할아버지도 식사가 거의 마무리되었다. "할아버지, 찬밥 드셨는데 제가 따뜻한 커피 한잔 사드릴게요"라고 말을 했다. 그분은 "아니에요, 혹시 믹스커피 있음 한 잔 주세요"라며 웃음을 보였다. 
 
▲ 믹스커피 할아버지는 비싼 커피보다 믹스커피가 좋다고 하셨다.
ⓒ 박승일
 
경찰버스로 돌아와 믹스커피 한잔을 타서 가지고 왔다. 그 사이 할아버지는 자신이 먹었던 일회용 도시락과 쓰레기를 비닐봉지에 담고 계셨다. 

"할아버지 다음 주에 꼭 고시원 들어가시길 바랄게요. 거기서 잘 생활하시면서 가고 싶어 하던 설악산도 한번 가보세요. 그러려면 건강해야 하니까 술도 줄이고 아프지 마시고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떠났다. 

일선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노숙인 관련 신고가 종종 있다. '미관상 좋지 않다. 혐오스럽다. 소란을 피울 것 같아 불안하다. 더럽다'는 신고 내용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장에 출동해서 할 수 있는 조치는 극히 제한적이다. 뭔가를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할아버지처럼 노숙인들이 스스로 자진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반드시 할아버지의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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