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투자기업 '비자' 복병]④뿌리깊은 자국우선주의…韓 비자확대 차별
한미FTA 때 관련 조항 빠져
호주·싱가포르·칠레는 확보
트럼프 당선 땐 축소 가능성
사실상 11월까지 '골든타임'
미 의회의 한국 동반자법안이 갈수록 호응을 얻지 못하는 건 미국의 자국우선주의와 관계가 깊다는 분석이다. 투자기업이 전문직 비자확대를 요청하면 "미국인을 고용해 교육을 시켜라"라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 논리를 우리 측은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 외국인 비자 거절률 높아질 듯
재계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제조업 강화를 천명하면서 인재 교육까지 업체에 요청하고 있다"며 "투자기업의 비자요청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전략이 없는 상황이다.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 외엔 미국 정계와 행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논리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동반자법안에 대한 호응이 떨어지는 것도 미 의원들이 자국 내 여론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1월 미국 대선에서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론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이 같은 비자 특혜 조항을 요구하기는커녕 추가 독소 조항을 막아야 하는 입장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사실상 올해 11월까지가 '골든타임'인 셈이다.
호주·싱가포르·칠레는 전용 비자쿼터 확보
한국인 대상 미국 전문직 취업비자(H-1B) 발급이 어려운 근간에는 미국과의 FTA도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한미 FTA 협상 당시 전용 비자 조항을 추진했지만 끝내 넣지 못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캐나다, 멕시코, 호주, 싱가포르, 칠레 등 미국과 양자 FTA를 맺은 국가들이 자국인 전용 비자 쿼터를 연 수백 개부터 수천 개까지 확보한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안보 측면에서는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경제 측면에서는 '칩4(Chip4·한국 미국 일본 대만) 동맹'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자의 안정적인 고용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비자동맹'엔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15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호주는 미국과의 양자 FTA 발효일인 2005년 1월1일(현지시간)로부터 5개월이 지난 그 해 5월11일 '국방, 세계 테러와의 전쟁, 쓰나미 구호를 위한 긴급 보충 세출법(Emergency Supplemental Appropriations Act for Defense, the Global War on Terror, and Tsunami Relief)' 관련 미국 대통령 서명을 받아냈다. 이 법은 호주에 연 1만500개 'E-3' 특별 비자를 제공하는 근거법이 됐다. 미·호 FTA 협정문에 관련 규정은 명시돼 있지 않지만 미 의회가 승인한 국내법을 통해 연 1만500개 비자를 확보한 것이다.
싱가포르와 칠레는 미국과 양자 FTA를 맺으면서 특별비자 조항을 따냈다. 싱가포르·미국 FTA는 2004년 1월1일 발효됐다. 협정문 11장 '사업자의 일시적 입국' 섹션의 부록 11A.3조항에 "본 협정(FTA) 발효일부터 미국은 전문적 수준의 사업 활동을 하기 위해 임시 입국을 원하는 싱가포르 사업자의 초기 신청을 매년 5400건까지 승인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 2004년 발효된 칠레·미 FTA 협정문에선 '기업인 임시출입' 관련 조항에 "전문적 수준으로 사업활동을 하려는 상대국(칠레) 사업자의 일시적인 입국과 관련해 연간 수치 한도를 설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협정문 부록에는 "협정 발효일부터 미국은 임시 입국을 원하는 칠레 사업자들이 전문적인 수준의 사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연 1400건의 초기 신청을 승인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싱가포르, 칠레는 FTA 협정 조항은 물론 미국 국내법적 근거도 확보했다. 양국 모두 미 의회가 승인한 FTA 이행법, 이민 및 국적법(INA) 등을 확보했다. INA는 미국대사관 인터뷰나 미국 입국 후 신분조정 과정 등을 거친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지급하는 법이다. 그러나 한국은 한미 FTA 협정문 내 별도 비자 발급 조항을 명시하거나 미 의회가 승인하는 FTA 이행법 및 INA 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미국은 한미 FTA에 비자 쿼터 명시를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 당시 참여했던 정부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전문직 종사자들이 비자 만료 후 귀국하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악재는 많지만 우리의 대응은 조직적이지 않다. 경제단체장, 기업 대관 조직, 정부 부처 내 국·과 조직 등이 개별적으로 미국 정부나 정치권 인사를 만나는 식으로 로비활동을 하고 있다. 조직적인 가이드라인이나 통일된 창구를 통해 미국 정부와 정치권이 빠져나갈 수 없는 논리를 제시하는 협상 전략을 찾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경제단체장, 기업이 특정 산업, 특정 현안에 대한 아웃리치(대외접촉) 활동을 끊임없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각급 단체 아웃리치 활동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사소한 결과물이라도 민관이 긴밀히 공유하고 컨센서스(의견 일치), 가이드라인, 유의사항 등 필요한 정보를 정부가 기업과 경제단체에 알려주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기브 앤 테이크(주고받기)' 협상 전략을 선호하고 해외 기업 투자 유치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기업이 미국이 원하는 것을 먼저 제시하는 아웃리치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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