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격 첩첩 다도해 풍광... 딴 데선 못 봐요

이광표 2024. 3. 1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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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보석, 신안 천사섬 30] 국내 최대의 염전, 신의도

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 <편집자말>

[이광표 기자]

신안군 신의도 황성금리해수욕장 가는 초행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신의도 동리항 선착장에서 내려 해수욕장으로 차를 몰았다. 중간중간에 바닷물이 보여 곧 해수욕장이 나오려니 했는데, 산길이 나오고 고개가 나온다. 한두 번 헤매고 차에서 내려 주민에게 길을 묻고 나서야 해수욕장 가는 고개를 제대로 넘을 수 있었다.

백사장의 길이는 300여m. 그리 긴 것은 아니다. 그런데 구조가 좀 특이하다. 백사장 좌우로는 산이다. 백사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해안선이 안쪽으로 쭉 파고 들어와 좌우의 시야는 막혀 있다. 액자틀 같다고 할까. 그 가운데로 멀리 섬이 보인다. 한둘이 아니다. 보이고 또 보인다.

여러 개의 섬이 중첩되어 마치 산맥의 능선이 줄지어 다가오는 듯하다. 바다인데 자꾸만 백두대간의 능선이 떠오른다. 그 너머로 흐릿하게 큰 섬이 보인다. 진도군이다. 전체적인 풍경도 인상적이지만 작은 섬 하나하나의 모습도 매우 독특하다. 흔히 보아온 삼각형 모습이 아니다. 뿔 같은 것이 위로 불쑥 튀어나와 있기도 하고, 무언가 웅크린 날짐승 같은 것도 있다.

섬들이 만들어낸 깊은 수묵화
 
 신안군 신의도의 황성금리해수욕장. 먼바다에는 진도군의 작은 섬들이 겹겹이 둥둥 떠 있어 한 폭의 수묵화를 만들어낸다.
ⓒ 이광표
 
흔히 멋진 해수욕장이라고 하면 널찍한 은빛 백사장에 탁 트인 바다 전망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황성금리 해수욕장은 완전히 다르다. 눈앞의 바다에 섬들이 둥둥 떠 있다. 누군가는 이곳을 "한국의 하롱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하롱베이에 비해 훨씬 더 부드럽고 훨씬 더 포근하다. 수묵화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그럼, 저 섬은 대체 무슨 섬일까, 섬들의 정체가 궁금하면 신의도 해오름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해오름 전망대는 해수욕장에서 6km 정도 떨어져 있다, 전망대로 가는 길을 노은구만 해변길이라고 부른다. 노은리와 구만리를 잇는 길이다. 바다를 보면서 걸을 수 있고 자전거 투어도 가능하다. 황성금리해수욕장을 빠져나오기 위해 고개를 넘을 때 멀리 하의도로 넘어가는 뽀얀 삼도대교가 보인다.
 
 신의도 해오름길에서 바라본 삼도대교와 다도해 풍광.
ⓒ 신안군
해오름 전망대에 오르면 황성금리 해수욕장에서 보이던 섬들이 더 많이 펼쳐진다. 광각 렌즈에 잡힌 듯 좌에서 우로 쫙 늘어서 있다. 전망대에는 안내 표석이 있다. 친절하게도 시야에 들어오는 섬들을 표시해 놓았다.

왼쪽부터 상방고도, 하방고도, 광대도, 양덕도, 송도, 주지도, 혈도 순이다. 표석 속의 섬 모양 그림과 실물을 비교해본다. 섬 정상의 바위가 불쑥 튀어오른 주지도. 그 모습이 손가락 같기도 하고 상투머리 같기도 하다. 그래서 손가락섬, 상투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앞에 양덕도가 얌전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섬은 왼쪽 정상에 두 개의 바위가 튀어나왔다. 누군가는 발가락을 닮았다고 하고 누군가는 거북을 닮았다고 한다. 혈도는 구멍이 뚫린 섬인데 그 모습이 활을 닮았다고 한다. 광대도는 사자를 닮았다. 섬 하나하나의 모습이 특이하면서도 정겹고 또 신비롭다. 저 섬들은 모두 진도군에 속해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고품격의 첩첩 다도해 풍광이다.

토판염에 염생식물 함초의 맛을 담아내다

신의도는 염전의 섬이다. 신안군 증도의 태평염전, 비금도의 대동염전도 유명하지만 신의도는 국내 천일염의 최대 생산지이다. 전국 천일염 생산의 20%를, 신안군 천일염 생산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신의도의 염전 면적은 530ha, 매년 천일염 7만8000t을 생산한다. 신의도 동리 선착장에서 하의도로 연결되는 삼도대교 가는 길은 주변이 모두 염전이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신의도 염전. 신의도에서는 매년 천일염 7만8000t을 생산한다.
ⓒ 신안군
   
 신의도 염전에서 소금을 실어나르는 수레들.
ⓒ 신안군
 
신의도 천일염과 관련해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은 '6형제 소금밭'. 이름 그대로 신의도 출신 6형제가 염전을 운영하고 소금을 생산하는 곳이다. 이들이 유명해진 것은 2009년 KBS '인간극장'에 소개되면서부터.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고향 신의도를 지키며 땀 흘려 소금밭을 일구는 강씨 6형제의 휴먼 스토리였다.

6형제의 아버지는 예전부터 신의도에서 대를 이어 소금을 생산했다. 6형제도 염전 일에 힘을 보탰다. 그러다 1990년대말 새롭게 시작한 중장비 사업의 실패로 빚을 지고 형제들은 여기저기 흩어졌다. 다들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중 2008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염전이 남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뭍으로 나가 있던 형제들이 다시 신의도에 모였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참소금 염전' 규모를 확장해 '6형제 소금밭'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가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염전 운영과 소금 판매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2009년 인간극장에 형제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소금 주문이 급증했고 빚도 갚았다. 넷째 강원석(51)씨와 막내 강주일(42)씨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 책까지 출간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현재는 염전과 소금 가공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강씨 형제들은 한 해 토판 천일염 20kg짜리 3000포대, 일반 천일염 20kg짜리 8000포대를 생산한다. 바로 옆 하의도에서도 염전을 개발 중이다.

넷째인 강원석 대표는 6형제 소금의 대표 상품으로 함초황토소금을 꼽았다. 염전에서 생산한 최고 품질의 토판염에 함초의 맛과 영양을 담아낸 것이다. 천일염 80%에 함초가 20% 들어간다. 갯벌이나 염전 주변에서 자라는 염생식물인 함초는 칼슘 마그네슘 인 등이 풍부해 바다의 인삼으로 불린다.

우선, 토판염을 황토 그릇에 담아 섭씨 800도의 가마에서 12시간 굽는다. 여기에 함초 가루를 배합하고 다시 옹기 항아리에 담아 숙성시킨다. 가마에서 굽고 옹기에 숙성하는 과정은 충남 홍성의 제2공장에서 진행한다.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면 다시 신의도로 가져와 포장한 뒤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다섯째인 강주등 대표는 함초 재배와 가공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고 했다.

"저희는 함초를 말려서 가루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生) 함초를 갈아서 만듭니다. 가을에 함초가 붉어지지기는데 그 직전 여름에 함초를 갈아서 천일염과 섞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소금맛과 함초맛이 기막히게 어우러지지요. 짠맛이 줄고 함초 특유의 향이 은은하게 느껴집니다."

6형제의 아버지는 목사이고 형제들도 신심이 깊다. 그래서인지 6형제에게 소금은 더 각별하다. 강주등 대표는 마태복음 5장 13절 이야기를 꺼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그는 "우리 형제가 여기까지 오는데 2009년 TV프로 덕을 참 많이 봤다. 프랑스 게랑드 소금 그 이상의 가치를 구현해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신의도 염전의 일출 모습.
ⓒ 신안군
 
신의도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염전이 많다. 현재 신의도 주민 160가구가 염전을 운영한다. 이런 특징을 살려 CJ제일제당은 2010년 신의도 소금 생산주민 80여 명과 공동으로 신의도 천일염 주식회사를 설립해 운영해오고 있다. 염전은 3월 하순부터 10월 말까지 가동된다.

목포에서 신의도 하의도까지 연륙된다

신의도에는 6~7세기 백제 고분이 많다. 상태서리, 자실리 일대의 나지막한 안산 일대에 60여 기가 밀집되어 있다. 널찍한 돌로 시신과 부장품 공간을 마련한 수혈식 석곽묘다. 그런데 60여 기라는 규모가 매우 이례적이다. 안산의 아래쪽에서 중턱으로 올라가면서 무덤이 널려 있다.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것은 서남해의 여타 섬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신의도 상태서리 백제고분군. 신의도에는 60여 기의 백제 고분들이 밀집해 있다.
ⓒ 신안군
 
이 고분들은 2000년대 초 정식 발굴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청동기시대 고인돌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 6~7세기 백제 고분으로 밝혀졌다. 백제 고분이 밀집되어 있다는 것은 그 무렵 신의도가 백제의 영향권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고분의 주인공에 관해선 백제 중앙정부가 파견한 수군 병력이거나 이들을 도운 신안지역의 해상세력일 것이란 견해가 있다. 60여 기 무덤의 주인공들은 1500년 전 위로는 군산지역에서부터 아래로는 진도 사이의 해상로를 통제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신의도가 백제시대 때부터 중요한 해양 요충지였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유적이다. 
 신의도와 하의도를 잇는 삼도대교(2017년 개통).
ⓒ 신안군
 
신의도 바로 옆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하의도다. 하의도 관광객들은 신의도에 들르고 신의도 관광객들은 하의도에 들른다. 지금은 배를 타야 신의도에 오갈 수 있지만 앞으로 자라도~장산도, 장산도~신의도를 잇는 교량이 건설되면 목포에서 차를 타고 신의도, 하의도까지 들어갈 수 있다. 이미 자라도까지는 5개의 교량(압해대교, 천사대교, 중앙대교, 신안제1교, 자라대교)이 건설되어 있다. 자라도~장산도 다리는 올해 착공에 들어간다. 장산도~신의도 교량은 현재 신안군이 정부에 건설을 요청해놓은 상태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강원석 강주일, 《꿈을 키우는 육형제 소금밭》, 프로방스, 2010 김재은, 〈전남 신안군 증도와 신의도의 천일염전과 생태문화자원 활용에 대한 연구〉. 《한국도서연구》 58호 한국도서(섬)학회, 2017. 문안식, 〈백제의 해상활동과 신의도 상서고분의 축조 배경〉, 《백제문화》 제51집, 공주대학교백제문화연구소, 2014 백준상 〈6형제 소금밭, 이제 고급 소금으로 승부합니다〉, 《유기농생활 오가닉라이프》 2016년 7월호, 매거진플러스 최영미, 〈소금 공부, 신의도 여행 : 뜨거운 태양 아래서 체험하며 즐기며〉, 《슬로매거진 달팽이》 2019년 7월호, 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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