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후보'마저 부정... 정치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박진도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연합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맞잡은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왼쪽부터 윤희숙 진보당 대표, 이재명 대표, 더불어민주연합 윤영덕, 백승아 공동대표, 용혜인 새진보연합 상임대표. |
ⓒ 공동취재사진 |
정치의 계절이다. 공천을 둘러싸고 눈살 찌푸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왜, 이들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싸울까? 정치를 잘해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위해서? 언감생심, 기대할 걸 기대해라.
나는 서울대 교수, 국회의원, 장관, 부총리, 미국 대사 그리고 나중에는 총리를 역임한 분을 안다. 아마 누군지 대략 짐작이 가겠지만, 세상에서 좋다는 건 다 해봤는데 무엇이 가장 좋으냐고 개인적으로 물으니 국회의원이란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과도한 특권과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오죽하면 염라대왕도 우리나라에 와서 국회의원 한번 해보는 게 소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겠나. 이렇게 좋은 자리이니 공천 받기 위해, 똘마니 노릇을 마다하지 않고, 의정활동은 뒷전이고 지역구 관리에 아까운 시간을 빼앗기고, 정파를 나누어 싸운다.
여론조사나 인터뷰를 보면 경쟁사회보다는 서로 돕는 사회를, 물질의 풍요보다는 마음의 풍요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돈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여가를 즐기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기후변화와 불평등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잘 알고, 그것이 개선되기를 바란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소비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마음뿐이다. 생각뿐이다. 실제 행동은 마음과는 다르다. 죽기 살기로 경쟁하면서 돈벌이에 여가를 즐길 틈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없다. 고된 일상은 소비(물질)로 보상받으려고 한다.
왜 마음처럼 안 될까. 왜 생각처럼 살지 못할까.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경제성장주의 때문이다. 성장주의는 경쟁과 불안을 먹고 산다. 성장주의는 경쟁이 효율을 가져온다고 신봉한다. 경쟁에는 반드시 뒤처진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늘 남보다 뒤처질까 불안하다. 일자리를 읽거나, 가난뱅이가 되거나, 아파도 병원에 못갈까 두렵다. 사회안전망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사회에서 불안은 공포가 된다. 공포가 경쟁사회의 원동력이다. 공포심이 사라지면 경쟁도 약해지고, 사람들은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할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고 튼튼하게 짜는 게 중요하다.
오랫동안 경제성장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살다 보니, 사람들은 성장 중독에 빠졌다. 경제가 성장하면 무조건 좋은 일, 즉 "성장=좋은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경제가 위축되면 사회 전반에 불안과 공포가 확산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러한 현상을 'GDP 맹목적 숭배'(GDP-fetishism)라고 하였다. 그러나 GDP는 경제성장의 지표로서도 불완전할 뿐 아니라 행복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아니고,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사람들은 GDP 증대만으로는 우리의 삶(행복)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제성장에 매달린다.
성장 중독, 일중독과 소비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제 인간'은 지금의 경제 시스템에 잘 적응하면 그런대로 살아가겠지만 결코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더욱이 이런 경제 시스템에서는 낙오한 사람의 삶은 매우 불행할 수밖에 없다. 공포심이 사라지면 경쟁도 약해지고, 사람들은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할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고 튼튼하게 짜는 게 중요하다.
성장주의와 성장 중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같은 사회 경제 시스템에서 개인은 쉽지 않다. 경제 인간은 경제의 수레바퀴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경제가 과거처럼 더 이상 고도성장을 할 수 없고, 성장을 해도 우리의 삶이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 불평등위기, 지역위기가 경제성장주의의 산물이라는 것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개인에게 이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면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회구조에 자신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 일회용 사용하지 않기, 쓰레기 분리배출 제대로 하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을 열심히 실천한다. 요즈음에는 플로킹(조깅하면서 쓰레기 줍기)이 대유행이다. 모두 환경보호에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이런 활동으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기후변화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돈벌이를 위해 지구 한계를 훨씬 넘어 자원을 약탈하는 경제 시스템이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먼 산만 쳐다볼 수 없으니 일회용 사용하지 않기나 쓰레기 줍기라도 하는 것이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자각한 시민을 조직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많은 활동가가 헌신적인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 시민의 참여가 저조하다. 역시 정치가 제구실해야 한다. 정치권이 성장주의 너머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시민사회와 일반 국민과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 현실은 우리의 바람을 역주행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성장주의를 심화하고 있다. 국민들이 성장 중독에 빠져 성장을 외치면 표를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민생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앞세워, 지상철도·고속도로 지하화, GTX 연장 및 조기 완공, 가덕도 신공항, 새만금 신공항, 달빛 고속철도, 김포시 서울 편입, 메가시티,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건설, 원자력 발전소 신규 건설 등 수십조 원, 수백조 원이 들어갈 공약들을 재원 대책 없이 남발하고 있다. 수혜 지역은 집값이 오르고 땅값이 들썩인다. 하지만 재원 대책이 없으니 선거 끝나면 대부분은 공약(空約)이 되고, 이른바 수혜 지역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런 정책은 환경을 대규모 파괴하고, 토건 자본과 정치인의 배만 불릴 뿐 국민의 삶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못된 정치가 인구의 수도권 집중과 지역의 위기를 가속하여 우리를 더욱 불행하게 할 것이다.
나는 이런 정치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대형 인프라 투자는 이제 그만해라. 부끄럽게도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최고의 토건국가다. 내 돈 아니라고 인심 쓰듯이 막 쓰지 마라. 우리가 땀 흘려 번 돈으로 낸 세금이다. 나는 그런 곳에 돈을 쓰고 싶지 않은데, 왜 당신들 마음대로 하느냐. 만약 굳이 해야 한다면, 형식적인 환경영향평가나 사업타당성분석, 국회심의에 그칠 것이 아니라 공론화 위원회를 거쳐 국민 여론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민주주의의 위기다.
민주주의는 민중이 다스리는 정치다. 그러나 현실에 민중은 투표를 통해서 통치권을 위임한다. 국민은 투표권만 행사할 뿐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영국의 인민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큰 오해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단지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에 한정될 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서는 민중이 통치권을 위임하는 대상이 너무 좁다. 선거를 통해서 선출되는 사람들은 정치인, 법조인, 교수, 언론인, 의료인, 기업가, 관료 출신 등 잘난 사람들이다. 총선은 어차피 잘난 사람들 그들만의 잔치이다. 정치인, 법조인, 교수, 언론인, 의료인, 기업가, 관료 출신 등 잘난 사람만 국회의원이 된다. 세상의 주인인 노동자나 농민은 국회의원 한 석 얻기도 힘들다. 선거에 나오는 잘난 사람들은 우리 국민 전체의 0.01%(5천명) ~ 0.1%(5만명) 에 지나지 않는데, 민중은 이들 가운데서 국회의원을 뽑아서 권한을 위임한다. 따라서 여야를 막론하고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이 되는 사람들은 거의 100% 기득권자들이다. 여야가 초록이 동색인 사람끼리 다투니 정권 교체가 되어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가 비례대표제다. 비례대표제는 잘 운영하면 지역구 국회의원의 한계를 극복하고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국회의원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이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국회에 진출할 길을 열 수 있다. 그런데 비례대표 의석이 너무 적을 뿐 아니라 그나마 준연동형비례대표제니 위성정당이니 해서 형해화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더불어민주연합의 국민후보 추천의 파행에서 보듯이 여야 지도부나 보수언론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후보조차 못되게 한다.
엉터리 선거 민주주의를 버리고, 제비뽑기로 남녀, 세대, 직업, 지역, 사회적 약자 등을 대표하는 1천명 이상의 국회의원을 뽑는 게 좋겠다. 돈 많은 사람, 유명한 사람만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라면 누구나 뽑힐 테니 특정 집단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비용도 들게 없고, 뽑힌 사람이 잘났다고 뻐길 이유가 없으니, 특권을 누릴 이유도 없다. 특권만 폐지한다면 국회의원이 1천명이 넘어도 지금 국회의원들에게 쓰는 돈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정치가 제구실 못 하니 총선에서 여야가 누가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대세에 영향이 없다. 공수를 번갈아 가며 야구 시합을 하는 거와 같다. 우리 편 이기라고 열심히 응원하지만, 우리 편 이기면 잠시 기분 좋고 지면 잠시 기분 나쁠 뿐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도 투표권은 나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이니 행사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은 후보, 덜 나쁜 후보를 뽑을 수밖에 없다. 쓰레기 줍기로 기후변화를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쓰레기는 주워야 하듯이. 그러나 언제까지 쓰레기를 줍고만 있을 것인가?
시민사회가 더불어 민주당이 주도한 더불어민주연합에 비루하게 붙어 국회의원 몇 석을 얻고자 하는 것은 국민의힘과 민주당 등 보수 기득권 세력에 부역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이 부정하는 국민후보를 재선출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추천한 국민후보를 철회하고, 국민후보 추천위원회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 마땅하다. 선거는 4년마다 있다.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여 타협한다면, 장기적으로 정치개혁을 위한 동력을 상실할 뿐이고, 소탐대실이다. 차제에 거대 양당과의 관계를 올바로 정리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옳다.
경제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정치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어차피 이번 총선은 늘 그러했듯이 정치에 대한 혐오만 키우고 끝날 것이다. 정치에 혐오를 느끼는 실망한 깨어있는 시민은 내 삶을 행복하게 할 정치개혁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제 '반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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