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으면 직접 걸어볼 수도 있는 진도 바닷길

정명조 2024. 3. 1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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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에 쫓긴 뽕할머니의 흔적, 회동마을과 모도 잇는 길...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

[정명조 기자]

▲ 신비의 바닷길  축제 둘째 날 새벽에 모도까지 바닷길이 뚜렷하게 열렸다.
ⓒ 정명조
바다가 갈라진다. 천천히 바닷길이 드러난다. 뭍과 섬이 이어지거나, 섬과 섬이 이어진다. 지금은 알려진 곳만 해도 여럿이다.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에 '바다갈라짐' 정보가 나온다. 물때에 맞춰 찾아가면 바닷길을 걸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조개를 캐고, 바다풀을 뜯을 수도 있다.
프랑스 대사 삐에르 랑디는 진돗개를 좋아했다. 1975년 진도 회동마을에 들렀다. 썰물 때 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프랑스로 돌아간 뒤 '한국판 모세의 기적'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
 
▲ 삐에르 랑디 상  프랑스 대사가 ‘한국판 모세의 기적’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
ⓒ 정명조
진도군은 1998년 바닷길이 보이는 언덕에 삐에르 랑디 공원을 만들었다. 그의 청동 흉상도 세웠다. 그런데 2010년 도둑이 흉상을 훔쳐 갔다. 여섯 토막으로 잘라 단돈 20만 원을 받고 고물 장수에게 팔았다. 흉상이 다시 세워졌고, 지금은 바다를 등지고 잘 서 있다.

바다가 열리는 진도에 갔다. 2000년에 명승으로 지정된 '진도의바닷길'이 있는 곳이다. '신비의 바닷길'로도 알려졌다. 회동마을과 모도 사이 바다가 길이 2km, 폭 10~30m로 갈라진다.

뽕할머니의 전설, 용왕이 바닷길을 열어주다

많이 알려질수록 그럴듯한 이야기가 더해진다. 신비의 바닷길도 마찬가지다. 모세의 기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자, 뽕할머니의 전설이 만들어졌다.
 
▲ 뽕할머니 상  호랑이가 나타나자, 마을 사람들이 섬으로 피하고 할머니만 마을에 남았다.
ⓒ 정명조
제주도로 귀양 가던 사람이 표류하다가 회동마을에 들어와 살았다. 어느 날 호랑이가 마을에 나타났다. 사람들이 앞바다에 있는 섬으로 몸을 피했다. 급하게 떠나느라 뽕할머니를 빼놓고 갔다.

혼자 남은 할머니는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고 밤낮으로 빌었다. 기도를 들은 용왕이 바닷길을 열어 주었다. 할머니는 가족을 만났으나,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가 죽은 자리에 제단을 쌓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바다가 열리면 회동마을과 모도 사람들이 바닷길에서 만나 바지락을 캐고 낙지를 잡으며 즐겁게 보냈다. 이 풍습이 축제로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올해는 3월 11일부터 3일간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열렸다.

신비의 바닷길을 걷다

회동마을에 갔다. 진도북놀이, 진도아리랑, 서화, 서예와 같은 진도무형문화재 체험 부스가 사람들을 유혹했다.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북놀이 체험을 하고 가라는 외침에도 그들은 미소만 지으며 지나쳤다.
 
▲ 식전 공연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이 진도북놀이 공연을 펼쳤다.
ⓒ 정명조
식전 행사로 진도군립민속예술단 공연이 있었다. 북 치는 사람이 화면에 크게 잡혔다. 손놀림이 화려하다. 신명 나게 북을 쳐 댔다. 그에 맞춰 관객들은 엉덩이를 들썩들썩, 발을 까닥까닥, 고개를 흔들흔들하며 즐거워했다.

개막식이 끝난 뒤, 송가인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그의 팬클럽 어게인 회원들이 분홍색 옷을 입고 나타났다. 비가 오려고 하자 비옷과 핫팩을 나눠주기도 했다. 송가인은 고향에서 끼를 마음껏 발휘했다. 걸쭉한 말투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해 질 무렵이 되자 물이 느리게 빠져나갔다. 사람들이 뽕할머니 상 주위로 몰려들었다. 모도 쪽 바닷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동두레농악단이 흥을 돋웠다. 성질 급한 사람들이 장화를 신고 뽕할머니 상 앞 물속으로 들어갔다. 모도 쪽에서 먼저 드러난 바닷길과 회동마을에서 들어간 사람들이 길게 이어졌다. 한 시간쯤 지나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닷길에 들어선 사람들이 서둘러 물 밖으로 나왔다. 바닷길은 닫히고, 바다는 다시 조용해졌다.
 
▲ 바지락 캐는 사람들   바닷길이 열리자, 사람들이 바지락을 캐며 웃음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 정명조
 
▲ 바닷길을 걷는 사람들  축제 둘째 날 저녁에도 모도까지 바닷길이 이어졌다.
ⓒ 정명조
축제 둘째 날에는 새벽과 저녁에 바닷길이 뚜렷하게 열렸다. 사람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바지락을 캐고, 미역을 뜯고, 낙지를 잡았다. 물이 들어오고 있다는 경고 방송이 나올 때까지 바닷길에서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모도에 건너가다
 
▲ 회동마을 해돋이  축제 마지막 날 회동 앞바다에서 해가 나오고 있다.
ⓒ 정명조
축제 마지막 날 아침 모도에 갔다. 임시로 운항하는 배를 타고 10분 만에 다다랐다. 모도 선착장에서 오른쪽으로 난 '소망의 길'을 걸었다. 능선을 따라 만든 2km 정도 되는 산책길이다. 동행한 문화관광해설사는 네 계절 내내 언제라도 와볼 만한 곳이라고 자랑했다. 그의 모도 사랑이 끝이 없었다.
 
▲ 모도 남쪽  두룩섬이 썰물 때면 모도와 이어진다.
ⓒ 정명조
 
▲ 소망의 길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소망의 길 옆에 유채꽃 단지를 만들었다.
ⓒ 정명조
소망의 길 옆은 유채꽃 단지다. 진도군에서 만들었다. 꽃이 활짝 피면 볼만할 듯하다. 남쪽 끝으로 가면 두룩섬 두 개가 있다. 썰물이면 섬이 이어져 건너갈 수 있다고 한다. 그 너머로 무저도, 대삼도, 구자도와 같은 섬들이 절경을 이룬다.
 
▲ 회동마을 앞바다  모도에서 바라본 회동마을 앞바다에 김 채취선과 관리선이 떠 있다.
ⓒ 정명조
 
▲ 모도 동쪽 바다  멀리 보이는 곳이 해남 어란진이다. 이순신 장군이 벽파진으로 가기 전에 머물던 곳이다.
ⓒ 정명조
능선에 들어서면 섬 양쪽으로 시야가 확 트였다. 왼쪽은 회동마을이고 오른쪽은 해남 바닷가다. 행사가 열리는 회동마을 앞바다에는 김 채취선과 관리선이 점점이 떠 있다. 가장 높은 곳에 뽕할머니 사당이 있다. 모도 사람들도 해마다 이곳에서 따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봄 햇살을 받으며 걷다 보면 숲길이 나온다.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가 우거져서 햇빛이 들지 않을 정도다. 시원한 그늘을 걸으며 땀을 식힐 수 있다. 짧지만 명상에 잠기기도 좋은 구간이다.

북쪽 끝은 모도 가족 공원이다. 뽕할머니 가족이 회동마을을 바라보고 서 있다. 바다가 열릴 때 바닷길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다. 제대로 체험하려면 배를 타고 와 이곳에서 바닷길을 걷기 시작하면 좋다고 한다.

소망의 길은 걷기도 쉽고, 전망도 좋고, 한가롭다.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안타까울 정도다. 모도에 많다는 황구렁이를 보러 따뜻한 날에 다시 찾아야겠다.
 
▲ 다시래기  초상 치를 때 마을 사람들이 상제들과 함께 노는 민속극이다.
ⓒ 정명조
모도에서 나왔다. 회동무대에서는 씻김굿을 한창 하고 있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씻겨서 저승에 가도록 비는 굿이다. 소리꾼과 악사의 가락이 잘 어울렸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징 소리가 유난히 가슴을 울렸다. 출연자는 짧은 시간이 주어져서 아쉽다고 했지만 한 시간 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주었다.

다시래기 공연이 이어졌다. 초상을 치를 때 마을 사람들이 상제들과 밤을 지새우며 노는 민속극이다. 극 내내 온통 웃음바다였다. 눈 먼 남편과 만삭인 아내와 떠돌이 중이 춤과 노래와 몸짓으로 관객들을 웃겼다. 그들이 부리는 익살에 상주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무대에서는 공연이 이어지고,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신비의 바닷길 축제'에 신비로움과 함께 민속문화예술도 빛났다. 바다 갈라짐은 물론 바닷가에서 펼쳐진 공연도 신비에 가까웠다. 열린 바닷길 말고도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많아 눈과 귀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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