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테는 관대하면서… 배우자한테는 왜 엄격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남들과 최대한 다툼을 피하고자 하며 큰일이 아니고서야 웬만하면 화를 내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화가 날 일은 하루에도 수 없이 많다. 직장에서 상사는 자주 이해할 수 없는 업무 지시를 하고, 후배 직원은 몇 번을 설명해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친구의 여행 다녀온 자랑을 꾹 참으며 실컷 들어줬건만, 나의 다음 달 여행 계획에는 “거기 다녀왔는데 진짜 별로던데”라며 내 말을 딱 끊어버린다. 이처럼 화가 날 만한 일들이 종종 있음에도 우리는 남들과 그렇게 많이 다투지 않는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크게 화를 낸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늘 배우자가 있다. 참 속상한 일이다.
◇어째서 우리는 남들에게는 관대하면서 배우자에게는 이렇게나 엄격할까?
우리는 부부관계가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이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많이 다투는 게 현실이다. 어째서 배우자와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질러가면서 다투는 것일까? 역설적으로 배우자와 목숨걸고 싸우는 이유는 배우자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대하는 바가 별로 없기에 남과는 잘 다투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직장 동료나 친구에게 무슨 그리 큰 기대를 하겠나. 하지만 우리는 배우자에게는 참 많은 기대를 한다. 내가 말하면 철석같이 알아들어야 하고, 심지어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눈빛만 보고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 “아니, 당신은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당연히 그건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말하지 않은 것 까지 죄다 이해해야 한다는 마법 같은 기대를 하는 관계는 아마 부부 사이밖에 없을꺼다.
◇부부가 얼마가 멀고 가까운지는 소통을 얼마나 잘 하고 있느냐로 결정된다
갈등이 있는 부부를 대상으로 치료를 진행할 때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이야기는 배우자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호소이다. “이 사람은 제가 아무리 이야기 해도 전혀 알아듣지를 못해요!” 배우자와 소통이 되지 않는 게 속이 터질 만큼 가장 답답하다고들 한다.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 부부는 점차 서로에게 벽이 있다고 느끼게 되고, 그 단절의 벽은 점점 높고 견고해진다. 이 상태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부부는 몸은 한 집에 있지만 서로 정서적인 교류가 사라지는 이른바 ‘정서적 이혼 상태‘에 까지 이르게 되기도 한다. 이들은 평소에 거의 대화가 없이 서로 투명 인간처럼 지내다가도 갈등이 생기면 격한 감정반응과 날 선 말들을 쏟아낸다. 부부는 ‘우리는 서로 참안 맞구나’’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으며, 서로 성격 차이가 있다고 호소한다.
◇부부관계에 가장 중요한 소통, 3가지 단계가 있다
그렇다면 소통을 잘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보통은 소통을 잘 하는 방법을 말을 잘 하는 방법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살펴보면 소통이란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소통을 잘하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통은 3가지의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말하기, 듣기, 이해하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말하기보다 듣기가, 듣기보다 이해하기의 순서로 중요하다. 부부관계에서 오해가 없도록 자신의 뜻을 솔직하고 현명하게 전달하도록 말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 자기 이야기만 실컷 떠드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 만큼 피곤한 일은 없다. 반면 내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마음이 참 가벼워진다. 부부관계에서의 소통도 마찬가지로 듣는 것이 항상 먼저이고 말하기는 그다음에 나와야 한다. 우리의 다툼은 듣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모든 다툼은 항상 말하기에서 시작된다.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 단계인 이해하기이다. 우리는 때로 누군가가 내 마음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경험, 이해받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 기분을 느낄 때면 마음속을 꽉 틀어막던 것이 풀어지며 덜컥 울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상대방의 감정까지 깊게 이해하며 진정한 마음으로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공감‘이라고 부른다.
결국 부부가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말하는 것을 잘 챙기되 진정으로 듣고(경청), 진심으로 이해하는 노력(공감)이 필요하다.
◇말하기, 듣기, 이해하기를 잘하기 위한 조언
각 소통의 단계에서 알아야 할 것은 많지만 여기서는 각 단계별로 도움이 될 방법 한 가지씩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먼저 말하기에서 기억해야 할 점은, 배우자에게 말할까 말까 고민되는 상황에서 칭찬은 하고 상처가 될 말은 삼키자. 애석하게도 많은 경우는 이와 반대로, 잘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 칭찬은 하지 않고 잘못된 것은 날카롭게 지적하며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앞으로는 사소한 것이라도 배우자에게 감사해야 할 상황이라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고맙다, 잘했다고 꼭 말로 표현해 보자.
두 번째로 듣는 방법을 위한 조언은 ‘상대방이 말을 끝낼 때까지 들어주기‘이다. 다툼이 있는 부부 대화의 특징은 입은 있는데 귀가 없다는 것이다. 즉, 서로 자신의 말을 하기에 바빠 상대방의 말을 쉴 새 없이 끊어버린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난 뒤, 배우자에게 이제 내가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들어줘 하고 요청해 보자. 이 방법 만으로도 많은 다툼이 줄어드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의 마지막 단계의 이해하기에 대한 조언으로, 부부는 이 단어를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 좋겠다. ‘저 사람이 오죽하면 저럴까.’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부부는 서로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고 잘 지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배우자가 내게 큰 목소리로 자신의 답답함을 토로할 때는 오죽하면 저 사람이 내게 이렇게할까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물론 이는 혼자서만 해서는 어렵고, 내가 이런 마음으로 노력할 테니 당신도 함께해 달라고 배우자에게 요청해 본다면 좋겠다.
부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게 아니라 배우자가 원하는 것을 주려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든 노력이 바로 소통이다. 부부관계로 어려움을 겪는 부부가 서로 소중한 사람임을 한 번 더 떠올리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모든 부부들께 기분 좋은 날이 더 많아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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