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약속, 기막힙니다

정창수 2024. 3. 1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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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진행 중 사업에 민간투자 등 포함해 부풀리기... 위협받는 '재정건전성'

[정창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5일 경기 광명시 아이벡스 스튜디오에서 '청년의 힘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열린 열일곱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선거노믹스

올해는 한국을 포함한 70여 개 국가에서 전국 단위 선거가 열리는 '슈퍼 선거의 해'다. 동시에 전세계가 '선거노믹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돈을 풀고 세금은 깎아주는 것이 주된 방식이다. '선거노믹스'(electionomics, 일렉셔노믹스)는 일단 올해 선거가 있는 국가 대부분에서 관측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올해 대통령의 민생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업무보고를 대신하면서 본격화하고 있다. 1월 4일부터 3월 14일 전남까지 현재 스무 번의 민생토론회가 열렸다. 보통 연초 업무보고는 대통령실에서 받거나, 부서를 방문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올해는 전국을 순회하면서 진행하는 전국적 행사가 돼버렸다.

방문한 지역의 특징을 보면 스무 번 중 호남 1번, 대전·충청 2번, 강원 1번, 부산·울산·경남 3번, 대구 1번을 제외하면 열두 번이 수도권이다. 정치적 고려가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부분이다. 수도권도 경기북부와 남부 등 여당 지지도가 높은 곳은 없고, 서울(3번)과 서울과 가까운 지역들(인천, 광명, 하남, 성남 2번, 의정부, 수원, 고양, 용인)이다. 호남에선 14일 한 차례 민생토론회가 열렸지만, 개최 전까지만 해도 '구색 맞추기, 호남홀대론'이 제기됐다. 불리한 곳은 가지 않고 총선 격전지를 가는 것으로 본다면 야당이 관권선거라고 비판할 소지가 있는 행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부는 정치적 고려가 없는, 그야말로 민생토론회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지난 13일에도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부처업무보고에 민생 목소리를 담아서 하나하나 해결해 주는 쪽으로 좀 바꿔보자"면서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재원이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민생토론회를 통해 나온 약속 이행 재원이 '928조 원'이나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대통령실은 "대부분 자발적인 민간 투자, 또는 민자사업으로 진행되고 있고, 중앙 재정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전체 투자 금액을 봤을 때는 중앙 재정이 투입되는 것은 10% 정도, 그 미만으로 보고 있다"(3월 7일 대통령실 관계자 브리핑)고 반박하고 있다. 

모순되는 정책 공약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7일 인천광역시청에서 '대한민국 관문 도시 세계로 뻗어나가는 인천'을 주제로 열린 열여덟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생토론회에서 발표한 주요 정책은 세 가지다. 감세와 개발과 개혁 정책이다. 그런데 이 정책들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기조와 크게 어긋난다. 

우선 '감세'는 재정건전성 기조와 상반된 정책이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의 경우에는 부자감세와 급조됐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미 이전에 진행된 5년간 85조 원 규모의 감세와 경기부진으로 2023년도에 56조 원이나 세수가 부족해진 데다 이를 메우려고 지난해와 올해 133조 원씩이나 국채를 발행했거나 할 예정이다. 

'개발'은 사회간접자본과 개발제한구역 해제가 있다. 각 지역에 공항을 짓고 철도를 놓고 그린벨트를 해제한다는 것이다. 사회간접자본의 경우엔 과잉 건설로 경제성이 부족하기 떄문에 이후에 재정 부담을 가져올 것이다. 특히 그린벨트 해제는 수도권 집중 강화와 환경 파괴라는 측면에서 매우 우려된다. 박정희 정권이 가장 잘한 정책이라고 찬양하는, 보수-진보 공히 동의하는 몇 안 되는 제도가 그린벨트인데, 이것이 이제 사실상 사문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많다.

'개혁'은 의대 정원 증원과 늘봄학교 등 정책이다. 방향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높기 때문에 진행되는 사업들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구체적 실행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들은 예산안 통과나 법적 규정 때문에 국회에서 여야간 합의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단 계획만 늘어놓고 있어 정치적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부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패배할 경우 입법을 통한 국정과제 실현은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900조원와 45조원의 행간... 진짜 걱정은 총선 이후
 
 3월 14일 경향신문 1·3면에 실린 <대통령이 쏟아낸 '총 901조 사업‘ 재탕·민간투자 빼면 '45조' 규모> 기사.
ⓒ 경향신문 PDF
 
반전이 있다. <경향신문>이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이 정리한 '대통령 민생토론회 약속 이행관련예산'을 분석한 결과, 실제 증액 규모가 45조 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마저 실제 집행 실적에 따라 재정 투입 규모가 결정되는 융자지원금 등을 포함한 것이어서 실제로는 이보다 더 작아질 것이다. 

정부가 이미 기존에 진행 중인 사업에다가 증액, 신규사업 민간투자 등을 다 포함시켜 마치 새로 시작할 것처럼 부풀린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가장 큰 액수를 차지하는 622조 원짜리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이다(수원 민생토론회서 발표). 민간투자를 정부 사업인 것처럼 이야기한 것이다. 동시에 민주당은 이것이 정부의 생색내기인 점을 알면서도 퍼주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 예산안은 신규 예산이 매년 1% 남짓이다. 정부 기획 능력의 부족도 있지만 사회구조가 고도화되고, 이미 대부분의 사업을 하고 있으며, 방식을 변경하고 있기 때문에 신규 사업의 필요성이 적은 것이다. 

정부여당의 생색내기와 야당의 무능과 편승도 문제지만 진짜 심각한 것은 다른 데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 15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반도체관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세 번째, 민생을 살찌우는 반도체 산업'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공방 와중에 타당성 부족으로 시작도 안 한 사업이 문지방을 넘을 수 있다. 또한 이미 시작했더라도 불요불급, 즉 당장 필요하지 않아서 후순위로 밀린 사업들이 정치의 힘으로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야당도 자신들이 내세우는 감세-개발사업이 많다. 내로남불인 셈이다.

따라서 국민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물론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매번 반복되기 때문이다.

걱정은 '위협받는 재정건전성'이다. 국가부채는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미래엔 인플레이션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해 부담이 줄어든다. 오히려 고금리 시대에는 현재에 부담을 준다. 올해 예상 국채발행이 1195조 원이다. 1000조 원이면 국고채 금리 3.5%시 35조 원이다. 올해 R&D 예산이 26조 원이고, 국방예산이 59조 원이다. 미래투자 재원보다도 많고 국가안보를 지키는 예산의 반이 넘는다.  

한 가지 교훈이 있다. 김대중 정부는 IMF외환위기 때 예비타당성 제도 도입으로 토건을 억제하고, 적극적 과학기술지원 정책으로 IT부흥을 이끌었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위기를 대규모의 재정투입으로 극복했지만, 4대강 등 토건사업 중심의 경기부양을 주로 하다가 제조업에서 첨단산업으로의 산업구조 개편시기를 놓쳤다. 그 결과, 지금의 구조적 위기가 온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하려는가. 이명박 정부의 '시즌2'인지, 아니면 그마저도 역행하려는지. 대규모 R&D 예산 삭감을 보면 우려가 더욱 커진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창수씨는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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