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뚝'…美교수는 왜 10년 전부터 일·가정 양립을 외쳤나[K인구전략]

정현진 2024. 3. 15. 06: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튜어트 프리드먼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 교수
저출산 경고 책 '베이비 버스트' 출간 10주년
재출간 기념 와튼스쿨 팟캐스트 인터뷰
"일과 삶, 상충관계라는 사고 벗어나야"

10여년 전인 2013년 10월 미국의 저명한 조직 심리학자가 저출산이 빠르게 심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펜실베이니아대 글로벌 경영대학원(MBA)인 와튼스쿨 학생을 대상으로 1992년과 2012년 설문 조사한 결과 '자녀를 가질 계획이 있다'는 답변이 80%에서 40%대로 반토막 났기 때문이다.

연구를 진행한 스튜어트 프리드먼 교수는 일과 가정에서 남성과 여성이 새로운 선택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상황을 재앙이나 위험을 예고하는 조기 경보를 의미하는 '탄광의 카나리아'에 비유했다. 연구 내용을 담아 출간한 책의 제목은 출산율 급감을 의미하는 '베이비 버스트(Baby Bust)'였다.

스튜어트 프리드먼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 교수(사진출처=와튼스쿨 홈페이지)

이 책은 올해 1월 출간 10주년을 맞아 다시 세상에 나왔다.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는 물론 미국, 유럽 등 전 세계가 저출산 우려가 커진 시점이다. 프리드먼 교수는 최근 재출간 기념으로 진행된 와튼스쿨 비즈니스저널 팟캐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책 출간 이후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고 있다"며 "출산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어 미래가 두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1984년부터 와튼스쿨에서 강의해온 프리드먼 교수는 '와튼 리더십 프로그램'과 '와튼 일과 삶 통합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인기 교수 대열에 오른 인물이다. 와튼스쿨 휴직 기간 중 포드자동차에서 일하면서 조직 문화 혁신을 이끌어 생산성 향상을 이끌었으며 백악관과 유엔(UN), 미 노동부 등의 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그는 경영 전문 사이트 '싱커스50'이 선정하는 세계 최고의 경영 이론가 50인에도 선정됐다.

출산 계획 반토막 난 이유…20년 새 무슨 일이?

프리드먼 교수가 책 '베이비 버스트'에서 1992년 일명 'X세대'와 2012년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 출산 계획이 크게 떨어진 이유를 분석한 결과는 이렇다. 우선 두 세대의 남녀가 자녀를 낳아 부모가 되는 일이 덜 중요해진 건 아니라고 봤다. 여전히 부모가 되는 일은 삶에서 중요했지만 본인이 직접 임신-출산-양육을 계획하는 건 다른 문제가 됐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인식이 달라졌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프리드먼 교수는 두 세대를 비교해본 결과 남성이 20년 새 가정생활에 더 많이 참여하려는 욕구가 강해졌다고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다만 이들은 제대로 가정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학자금 대출이 있는 남성이 양육비를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녀 갖는 걸 주저하거나 커리어 성공을 위해 가정생활을 희생하면 파트너(아내 또는 여자친구)와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20~30대가 경제적인 이유로 자녀 갖기를 꺼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프리드먼 교수는 "남성들이 일과 가정생활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전보다) 좀 더 평등한 태도를 보였다"며 "가정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집안일을 똑같이 나누려 했다"고 말했다.

같은 기간 밀레니얼 세대의 여성은 앞선 X세대의 선배 여성들을 보면서 출산 의지가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프리드먼 교수는 "가정 내에서 관계가 평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 쉽지 않았고, 20년 전보다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고 상황을 판단했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는 여성에 출산 압박이 비교적 완화됐지만, 이전 세대의 워킹맘을 보니 그들처럼 일하면서 동시에 육아할 정도로 시간과 관심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남성과 여성의 일·가정 양립에 대한 인식 격차는 오히려 좁혀졌다고 그는 평가했다.

프리드먼 교수는 책 출간 이후 10년을 돌아보며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일과 나머지 삶의 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급격하게 바뀌게 했고, 사람들이 일 외의 삶을 더 인식하게끔 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일뿐 아니라 그 외의 삶에 대해 경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면서 한 번에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가 어렵고, 청년들은 사회적으로 단절됐다. 이로 인해 청년들이 부모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기에 더욱 어려워졌다고 우려했다.

"일과 삶, 상충관계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프리드먼 교수는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단어에 담긴 상충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 인물이다. 직장에서 성공하려고 가정의 행복과 개인의 가치를 희생하는 방식은 직원의 만족도나 행복감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으며, 일과 삶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오히려 성과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강의 내용을 담아 만든 책 '와튼스쿨 인생 특강(Total Leadership)'이 국내에서도 2013년에 출간되기도 했다.

프리드먼 교수는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보육과 가족 돌봄 관련 휴가 등 정책적 측면에서 일부 개선됐다고 봤다. 변화 속도는 더디지만 주 정부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했다. 다만 일·가정 양립을 위한 연방정부의 노력은 사실상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올해 11월 대통령 선거 등이 이러한 노력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리드먼 교수는 "올해 대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면서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대해 외치기 위해 정치적 활동이 꼭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민간 부문에서는 근로자들이 자신의 삶에 더 많은 유연성과 통제권을 바라고 있어 기업이 이러한 요구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가 빠르게 확산했고 근무 시간을 유연화하는 근무 제도도 속속 도입된 점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시점에 실제 유연 근무 환경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고 있고 이러한 변화에 대해 저항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Z세대를 비롯해 청년들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변화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리드먼 교수는

-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1984~)

- 와튼 리더십 프로그램 및 일·생활 통합 프로젝트 설립

- 전 포드자동차 리더십 계발 글로벌 총책임자

- 싱커스50 '세계 최고의 경영 이론가 50인', HR매거진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선정

- 국내 출간 저서 : 와튼스쿨 인생 특강(2013)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