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자유의 몸’ 되나…사직서 효력 두고 갑론을박
정부 “약정 없는 근로계약만 해당” vs 법조계 “유추적용 가능”
국제노동기구 ‘강제노동 금지’ 적용 여부도 논란
오는 19일,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에 복귀해야 할 의무가 사라질지 관심이다. 전공의들은 민법에 따라 자동으로 사직 효력이 발생해 ‘자유의 몸’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반면, 정부는 전공의들이 해당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맞서고 있다.
14일 정부에 따르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서를 내고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92.9%에 달한다. 보건복지부가 서면 점검을 통해 확인한 100개 주요 수련병원의 이탈 전공의 수는 지난 8일 오전 11시 기준 1만1994명이다.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은 지난 2월19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했다. 의료계 일각에선 이들이 사표를 낸지 한 달째인 3월19일이 되면 사직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방재승 서울의대 비대위원장은 전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서울대병원에서는 전공의가 처음 사직서를 낸 게 2월18일이어서 한 달이 지난 3월18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근거는 민법 660조다. 고용기간의 약정이 없는 근로자의 경우, 사직 의사를 밝히고 1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정부는 전공의 수련계약서에 계약기간이 명시돼 있기 때문에, 이 법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1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통해 “민법의 660조는 약정이 없는 근로계약의 경우 해당하는 조항”이라며 “전공의들은 4년 등 다년으로 약정이 있는 근로계약에 해당돼 660조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법조계 의견은 다르다. 계약기간이 명시돼 있다고 해도, 그 기간 동안 근무를 강제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노동법 전문 김남석 변호사는 “계약기간이 명시돼 있어도 민법에 유추적용 될 것”이라며 “직접 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사직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정부 측의 주장은 무리한 해석인 것 같다. 그런 판례를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사직서 효력이 발생하면 다른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거나 겸직도 가능하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계약기간에 명시된 4년이 만료되기 전까진 다른 곳에서 근무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은 법률적으로 받아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공무원 신분이나 이해충돌에 해당하는 경우도 아닌데, 겸직 금지 의무에 해당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한 노무사도 “민법 661조에 따르면 고용기간의 약정이 있는 경우에도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근로자가 해약고지한 경우엔 계약이 바로 해지된다”며 “특히 강제 근로 금지 원칙이 있어 계약기간 동안 근무해야 한다는 의무가 발생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강제노동에 해당하는지도 쟁점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13일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제29호 ‘강제 또는 의무 노동에 관한 협약’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의견조회를 요청했다.
ILO 29조 협약은 모든 형태의 강제 노동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국민 전체 또는 일부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이나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강제노동 적용 제외를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이 정당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박 차관은 “한국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ILO 제29호 협약의 적용 제외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의료서비스 중단은 국민의 생존과 안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라면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국민의 건강과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정당한 조치”라고 했다.
화물연대 파업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 변호사는 “과거 화물연대 파업 때처럼 강제근로 금지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앞서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2022년 11월 화물연대 총파업 당시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정부에 대해 ILO에 의견조회를 요청했다. 당시 ILO 사무국은 ‘즉시 개입(immediately intervention)’이 필요하다고 보고, 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개입’이란 절차가 ‘의견 전달’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해당 사안에 대한 정부 입장만 전달하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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