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트럼프 "총리직 관둘 수도"…그뒤엔 '수퍼 기업' 압박
지난해 총선에서 예상 밖의 압승을 거둔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자유당(PVV) 대표가 13일(현지시간) "총리직을 포기할 의사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이날 보도했다. 빌더르스 대표는 강경한 반(反)이민, 반(反) 이슬람 기조로, "네덜란드의 트럼프"로도 불린다.
네덜란드는 분극화된 다당제로 정계가 꾸려져 있다. 총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그 당 소속 의원만으로는 원내 다수당이 될 수 없는 체제다. 빌더르스 대표도 연정을 구성해야 총리 후보로 추천이 된다. 그 전까지는 현 마르크 뤼터 총리가 총리직을 유지하는데, 후임 총리로 유력한 빌더르스가 총리직을 포기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빌더르스 대표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압승한 뒤 반 이민 정책을 현실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는 외려 네덜란드 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모양새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대표 기업 ASML이 "반 이민 정책이 계속된다면 네덜란드 밖으로 기업을 옮겨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면서다.
ASML의 직원 2만 3000여 명 중 약 40%가 외국인이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7일, 뤼터 총리와 회동한 뒤 "정치인들과 기업인들과의 생각에 상당한 괴리가 있다"고 기자들에게 털어놨다. 프랑스로 회사를 이전 또는 확장하는 안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빌더르스 대표는 비판이 커지자 꼬리를 내렸다.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나의 애국심과 국민을 위한 사랑은 크고 강하며, 나 자신의 자리보다 더 중요하다"고 적으면서다. 그는 연정 구성을 위해서라면 총리 직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고도 적었다. "나는 반이민 정부가 아니라, 보수 정부의 연정 구성을 원한다"고도 덧붙였다.
빌더르스 대표의 PVV 당은 하원 150석 중 37석을 확보했을 뿐이다. PVV를 포함한 총 15개의 정당이 골고루 의석을 나눠가졌다.
제2당인 중도좌파 녹색당·노동당 연합(GL/PvdA)은 25석을 가져갔고, 제3당인 자유민주당(VVD)은 24석, 신사회계약당(NSC)는 20석을 차지했다. 제2당인 GL/PvdA는 일찌감치 "PVV와 손잡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총리 후보로 추천되면 임명까지의 과정은 어렵지 않지만, 총리 후보가 되는 과정이 더 험난하다. 연정을 구성하는 정지 작업이 쉽지 않아서다. 2021년 총선 때도 뤼터 현 총리 역시 연정 구성에 애를 먹었다. 실제로 연정 구성에 성공해 총리 후보가 되기까지 299일을 진땀을 빼야 했다.
연정 구성은 어렵다고 해도, 지난 11월 선거는 네덜란드의 극우 돌풍이 거세졌음을 증명한다.
AFP통신은 최근 몇 개월 사이, 유권자들 사이에선 PVV에 대한 지지율이 오히려 올라갔다고도 보도했다. 빌더르스 대표가 총리직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배경에도 지지율에 대한 자신감이 녹아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보수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내 의지엔 변함이 없으며, 더 많은 네덜란드 국민의 지지와 함께 언젠가는 내가 총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적었다.
그의 총리직 포기 의사는 연정 구성을 위한 디딤돌일 뿐, 총리직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님을 확실히 한 것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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