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정상화하라" 트럭시위까지…내홍 겪는 제약사들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내홍에 휩싸였다. 정기 주주총회에 즈음해 지배구조 문제와 조직 직제 개편, 신사업 추진 등 현안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양상이다.
14일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본사 앞에서는 ‘유○○씨 유한재단 이사장 복권하라! 유한양행을 정상화하라!’ 등의 문구를 띄운 트럭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시위를 위한 모금에는 300여 명의 직원이 참여했다고 알려졌다. 이 회사 전체 임직원 1900여 명 중 6분의 1가량이다. 다만 회사 측은 “실제 몇 명인지, 누가 참여했는지 확인된 바 없다”고 말했다.
논란의 불씨가 된 것은 회장직 신설이다. 유한양행은 15일 정기주총에서 회장·부회장 직제를 신설한다는 내용으로 정관을 변경할 계획이다. 이 안건이 통과되면 28년 만에 회장직이 부활하는 셈이다. 이전까지 회장은 창업주인 고(故) 유일한 박사와 측근 연만희 고문 2명 뿐이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회사가 질적·양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직제 유연화를 위해 회장·부회장을 신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과시 1969년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고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조하던 유한양행의 경영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일부 임직원은 이를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전 유한양행 대표)이 회사를 사유화하기 위한 시도”라고 주장하며, ▶이 의장 사퇴 ▶유일한 창업주의 손녀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의 유한재단 이사직 재선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유일링 이사는 이날 중앙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어떤 행위를 ‘회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라고 포장하기는 쉽지만 새로운 직책을 만드는 것은 수직구조를 늘리고, 권력이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저의 (재단 이사회) 복귀 여부는 유한양행의 경영구조 정상화에 비하면 덜 중요한 일”이라며 “관찰자로서 주주총회에 참석할 것이며 발언 계획은 없다. 저의 책무는 유한양행 사람들이 길을 잃고 창립자의 정신에서 멀어지려고 할 때 그것을 짚어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견제와 균형을 강조한 유일한 박사의 창업정신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이를 수호해야 하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28일 경기도 화성시 라비돌호텔에서 열릴 한미사이언스 주총에서는 이사 선임 건을 두고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대표 측과 장·차남인 임종윤·임종훈 한미약품 사장 측 간 격돌이 예상된다. 어머니와 두 아들은 한미약품그룹의 OCI그룹과 통합 건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 절차상 사소한 문제 제기도 차단하기 위해 예년과 다르게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가 아닌 본점 소재지 화성에서 주총을 여는 등 양측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제약업계는 최근 불거진 갈등에 대해 1세대 제약회사들의 성장통(痛)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대 중반 고 강신호 동아제약 명예회장과 차남 강문석 전 동아제약 부회장의 ‘부자의 난’도 이런 범주에 든다. 경영권 다툼뿐 아니다. 지난해 GC녹십자와 일동제약 등이 경영 쇄신을 이유로 임직원 감축에 나서면서 직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익명을 원한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창업주나 오너 일가 중심의 의사결정 아래서 국내 사업을 주로 해온 제약사들이 2015년 한미약품의 국내 최대 규모의 기술 수출 이후 연구개발(R&D)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며 “최근 국내 제약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신약 개발, 해외 시장 진출을 시도하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보수적 조직문화 개선, 세대교체, 경영구조 전환 등을 시도하며 여러 갈등이 동시에 표출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성장통을 겪으며 제약·바이오업계의 외형과 내실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지난해 신약 기술 수출 등에서 약진한 유한양행과 한미약품·종근당 등 대형 제약사들은 매출 ‘1조 클럽’을 넘어 ‘2조 클럽’에 도전하고 있다. 보령·JW중외제약 등 1조 클럽 가입을 앞둔 중견 제약사들도 줄을 섰다. 동시에 경영권이나 지배구조에 큰 변화를 추진할 때는 내부 소통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유한양행과 한미약품의 사례에서 보듯 장기적으로 체질 개선을 하려면 내부 이해관계자들 간 소통을 잘 해야 잡음 없이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은경·최선을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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