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시장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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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동네 시장에 가보니 피로에 절어 있던 몸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원래 시장은 사람과 물산의 집결지인 동시에 동네 마실 투어의 주요 포인트 역할도 한다.
대형마트의 규모와 편리함에 눌려 전통시장의 위기가 늘 거론되지만, 시장에서 느끼는 로컬의 매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관광지로 변모한 일부 대형 시장에선 바가지요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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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동네 시장에 가보니 피로에 절어 있던 몸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입구엔 어김없이 대형 찜기에서 수증기를 내뿜는 만둣집이 자리 잡았고 떡볶이 순대 닭강정이 시선을 끌었다. 한창 바쁜 낮시간대를 지나 차분해진 저녁의 시장은 환하던 불빛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없는 게 없는 시장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집 근처에 전통시장이 있는 건 행운이다. 시장에 가면 숨어 있는 국밥 맛집 하나쯤 있기 마련이고, 배달 앱에서 자주 주문했던 불족발집이 시장에 터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하루 장사를 마무리할 시간에 가면 그날 팔다 남은 떨이 메뉴들을 값싸게 살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원래 시장은 사람과 물산의 집결지인 동시에 동네 마실 투어의 주요 포인트 역할도 한다. 대형마트의 규모와 편리함에 눌려 전통시장의 위기가 늘 거론되지만, 시장에서 느끼는 로컬의 매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요즘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시장들은 주변 모습과는 다르다. 관광지로 변모한 일부 대형 시장에선 바가지요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과 외지인들이 몰려 이른바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 배짱 장사를 하는 곳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음식량에 비해 턱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거나, ‘메뉴 바꿔치기’ 상술로 손님을 속이는 경우를 보면 일부의 일탈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신용카드를 아예 받지 않고 현금 결제만 종용하는 행태들도 많다. 하지만 이미 명성을 얻은 시장들은 그 유명세 때문에 더 유명해져 사람들이 기꺼이 줄 서서 기다리는 ‘오픈런’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로컬 시장의 이미지가 넉넉함과 편안함보다는 가격 경쟁과 질 낮은 상품으로 소비되는 셈이다.
그래서 최근 온라인에서 주목받은 상반된 시장의 모습들은 흥미롭다. 한쪽은 외국인이 많이 찾아오는 서울 종로의 광장시장이고, 반대편은 청량리역 인근의 경동시장이다. 경동시장에서는 5인분쯤 되는 많은 양의 순대를 4000원에 팔아 화제가 됐다. 시장에서 대표 분식 메뉴인 순대를 저렴한 가격에 판다고 입소문을 탄 건 그만큼 시장이 시장다움을 잃어버린 사례들이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시장 고유의 특징을 무시하고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운 면도 있다. 경동시장은 도매 위주의 시장이고, 광장시장은 서울 도심의 관광지와 가까운 이점이 있다. 다만 요즘처럼 물가가 하도 올라서 과일 하나 사 먹기도 겁나는 시대에 최후의 안전판이 될 것으로 믿었던 시장에서조차 소비자를 우롱하는 상술만 판을 친다면 그 배신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동네 시장을 돌아다닐 때마다 하루가 멀다고 치솟는 물가가 실감이 된다. 전통시장이어서 그런지 뉴스에 대문짝만 하게 나온 가격까진 아니지만 지갑 열기가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시장에서 만나는 주변 풍경은 언제나 편안하고,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맛집들까지 열심히 탐방하고 나면 가성비뿐만 아니라 심리적 만족감까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요즘 ‘로코노미’(로컬+이코노미) ‘할매니얼’(할머니 입맛을 선호하는 밀레니얼세대) ‘뉴트로’(신 복고풍의 유행) 등 쏟아지는 신조어들은 전통시장을 향하고 있다. 시장을 체험하는 것 자체가 2030세대에게 새롭고 아주 멋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다. 그만큼 전통시장을 찾는 젊은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데 중요한 건 유명해지는 것보다 시장 고유의 역할을 잘 지켜내는 거라고 믿는다. 잠깐의 유명세는 수명이 짧지만, 시장은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 곁에서 오랫동안 함께 있어야 하니까.
백상진 뉴미디어팀장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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