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은 신앙의 기초 체력… 소설로 키워라”
“소설의 이야기에는 매듭 같은 게 있어서 이를 잡아당기면 온 우주가 열리며 아주 잠깐 놀라운 비밀을 드러낸다.… 매듭이 풀리는 건 순간이다.… 신기한 건 조금 전까지 ‘나라고 느꼈던 나’가 ‘전혀 다른 나’가 된 듯 느껴진다.”
독자가 소설에 빠져드는 순간은 ‘한순간 뇌리에 꽂히는 강렬한 문장’을 발견했을 때다. 신간 ‘소설 읽는 그리스도인’(샘솟는기쁨)의 저자 이정일(61) 작가도 그랬다. 프랑스 만화가 장 자크 로니에의 소설 ‘영혼의 기억’을 읽던 그는 한 문장을 읽다가 ‘소설에 몰입할 때 느끼는 희열의 순간’을 경험했다. “마음에 막연히 있던 어떤 문장이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다.
이 작가는 ‘이야기의 매듭’을 당긴 이 한 문장을 시작으로 이번 책을 완성했다. 책 역시 ‘마음에 끌린 소설 속 문장이 개인의 삶과 신앙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를 지난 12일 경기도 남양주시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에서 만났다. 이 작가는 “1년여간 이곳을 다니며 이번 책의 원고를 완성했다”고 했다.
그간 그는 문학과 기독교 신앙의 상관관계를 밀도 높은 글로 풀어내는 데 천착해왔다. 이번엔 문학 중에서도 소설에 집중한 이유를 묻자 “사소한 기쁨을 나누는 게 왜 중요한지를 알리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작가는 “우리 사회는 거대 담론을 다루는 데 익숙하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라며 “하나님 나라와 정의, 진리와 소명 등을 말하지만 정작 일상을 논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설은 사소한 일상 이야기 그 자체라 읽다 보면 현재와 순간, 지금과 오늘 같은 일상과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상을 뒤흔든 유명 소설 역시 일상을 다뤘다.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는 한 어부의 5일간의 일상 이야기다.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고난의 시기 희망을 찾아가는 이들의 일상을 그렸다.
그가 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건 ‘나다운 나로 살자’는 것이다. “남이 만든 세계가 아닌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려면 남들과 다른 나만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하나님은 각자의 삶에 가장 적절한 것을 선물로 주셨다. 이를 삶에서 펼쳐내야 하는데 남의 생각에 따라 살 때가 얼마나 많으냐”고 되물었다. 그는 “성경의 나다움은 나를 없애는 게 아니라 나다운 나를 드러내는 과정”이라며 고린도후서 4장 16절의 ‘속사람’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속사람을 문학적으로 바꾸면 ‘내 안의 나’로 표현할 수 있다.
단문과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이들이 점차 느는 요즘에 “문해력은 신앙의 기초 체력”임을 주장하는 것도 인상 깊다. 이 작가는 “이전엔 글자의 뜻과 맥락, 행간을 이해하는 게 문해력의 전부였다면 지금은 여기에 감정도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문해력을 갖춘 이들은 “성경을 볼 때도 남다르다”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례로 성경에서 모세가 40년간 광야에서 지낸 대목을 감정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전직 왕족인 그가 홀로 양 떼를 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란 접근이 가능하다. 곧 문해력이 성경 인물인 모세의 일생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모세의 명암을 자신의 삶과 비교해볼 기회도 제공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침묵’ ‘데미지’ ‘천국의 열쇠’ ‘데미안’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 속 명문장이 간단없이 이어진다. 그는 “따뜻하되 희망을 주고 성찰의 계기를 주는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다. 다만 “‘데미지’가 이런 소설은 아니지만 다윗이 간음했을 때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 소개했다. 이처럼 성경 본문과 소설을 같이 읽으면 풍부한 묵상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소설을 읽을 때 “핵심이나 의미 파악보다는 작품 자체를 읽으며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 작가의 바람은 한국교회에 더 많은 독서모임이 생기는 것이다. 그는 “성경공부나 QT(말씀묵상) 모임에선 속내를 노출하기 힘들지만 소설 독서모임에선 다르다. 허구의 이야기라 생각을 말하는 데 부담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예측불허의 삶 가운데 불확실한 혼돈을 이겨내는 힘은 단단한 신앙에서 나온다”며 “의미나 정보 교류가 아닌 감정 교류 위주의 독서모임을 하며 이런 신앙을 길러내는 성도가 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양주=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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