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라이프톡] “공천 그림 그리는 분”
국민의힘 이혜훈 후보가 천기를 누설했다. 서울 중·성동을 후보로 공천된 이 후보는 1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갑자기 출마하게 된 사정을 설명했다.
“갑자기 공천 그림을 그린다고 알려진 분이 불러서 ‘우리 후보가 사퇴했으니 당을 위해서 나오라’고 했다.”
통상 정치판에서 ‘공천 그림 그리는 분’이란, 공천 과정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숨은 실력자’란 의미다. 아무리 조심스러운 표현이라고 해도 이런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언급하는 것은 천기누설에 해당한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모두 공천과 관련해선 ‘국민의 눈높이’ ‘민심’ ‘객관’ ‘공정’ 등 온갖 좋은 말로 포장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사실 공천 과정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현실은 ‘하향식 공천’이기 때문이다. 지도부의 의지에 따라 공천 물갈이가 이뤄진다. 공천관리위원회가 ‘시스템 공천’한다고 말하지만 복잡한 절차 속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
그런데 공천은 ‘상향식 공천’이어야 맞다. 실력자가 내리꽂는 공천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추켜세우는 공천이 진짜 민주주의다.
정당들도 이를 알고 있다. 그래서 반민주적 ‘하향식 공천’을 하지 않는 듯 보이기 위해 ‘시스템 공천’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시스템이니까 사람이 간여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니 ‘그림 그리는 분’을 인정하면 절대 안 된다.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은 늘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유권자들은 다 안다. 이혜훈이 누설한 천기가 사실은, 몰라서 비밀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비밀이라는 것을.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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