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학전 33년
“열정만 가득했던 20대를 이곳에서 보냈다. ‘기본에 충실하라’는 김민기(사진) 선생님의 가르침을 얻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 영화를 하고 있으면서도 이 기억은 잊을 수 없다. 배우라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자 초심이다. 학전이 없어진다는 것이 슬프지만 내 안에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14일 서울 종로구 학전블루 소극장을 찾은 배우 황정민은 행복한 미소로 학전에 대한 기억을 쏟아냈다. 쫄딱 망했던 ‘지하철 1호선’ 첫 공연 현장, 티켓 부스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갑작스러운 폭우에 관객들과 청소를 했던 황당한 상황들까지 생생하게 소개했다.
‘작은 연못’을 부를 땐 두 손으로 마이크를 꼭 쥐고 정성을 다해 노래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가수 권진원과 듀엣으로 불렀다. 그는 커튼콜까지 자리를 지켰고, 전 출연진과 ‘아침이슬’을 함께 부르며 학전에 이별을 고했다.
‘김민기 트리뷰트’로 꾸며진 ‘학전, 어게인 콘서트’ 마지막 공연 풍경이다. 콘서트를 기획한 가수 박학기는 “이번만큼 보람 있고 행복한 공연이 없었다. 유명하신 많은 분이 불평불만 없이 함께 해주셨다.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날 공연에선 노찾사, 알리, 정동하가 ‘철망앞에서’ ‘바다’ ‘백구’ ‘상록수’ ‘천리길’ ‘내 나라 내 겨레’ 등 김민기의 명곡들을 재해석했다. ‘공장의 불빛’과 ‘아름다운 사람’을 노래한 권진원은 “김민기 선생님의 노래엔 어떤 고결함과 숭고함이 느껴진다. 신기하게도 선생님이 쓴 노래엔 사랑이란 가사가 없다. 노랫말엔 없지만 그 누구보다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신 분”이라고 말하곤 울컥했다.
학전은 지속적인 재정난과 김민기 대표(72)의 건강 문제 등의 이유로 창립 33주년 기념일인 15일, 폐관하기로 했다. 행사는 따로 없다. 학전을 통해 성장한 예술인과 그 뜻을 이어받은 후배들이 모인 릴레이 공연 ‘학전, 어게인 콘서트’에 올라 각자의 추억을 나누는 것으로 대체했다.
공연은 지난달 28일부터 20회로 이어져, 총 3000명 관객이 함께했다. 가수 나윤선·동물원·데이브레이크·루시·박창근·시인과 촌장·유리상자·자전거탄풍경·장필순·크라잉넛·한상원밴드, 배우 방은진·설경구·이정은·장현성·황정민 등이 릴레이로 참여했다.
암 투병 중인 김민기 대표는 박학기를 통해 “모두 다 그저 감사하다”는 덤덤한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학전은 다음 달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을 맡는다. ‘공연예술인들의 터전 역할을 해달라’는 김민기 대표의 뜻을 잇되, 학전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독자적 공간으로 7~8월 재개관할 예정이다.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와 어린이극 등 기존 사업은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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