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Z세대의 핫플! 에디터의 오픈 채팅방 표류기

2024. 3. 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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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채팅방’이 다인 줄만 알았던 오픈채팅방은 어느새 젠지들의 신대륙이 됐다. 덕질도, 취미도, 쇼핑도, 정보 교환도, 모든 걸 해결하는 이 세계에 이제 막 닻을 내린 에디터의 ‘챗방’ 표류기.

인터넷 커뮤니티의 시대는 이렇게 저무는가? 소울드레서, 여성시대, 더쿠, 인스티즈, 디미토리 등 온라인 세상의 커뮤니티엔 지금 이 순간에도 방송, 연예, 정치, 사회 분야의 각종 이슈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지만, 언젠가 후배 에디터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커뮤니티엔 고인 물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소드(소울드레서)’만 해도 연령대가 높은 게 느껴지거든요.” 여성 회원에게만 가입을 허용하고 게시판에 글을 쓰기까지 엄격한 ‘등업’ 과정을 거쳐야 하는 폐쇄적인 카페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생각해보니 이건 그럴싸한 현상인 듯했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 아이돌에 대한 글이 올라올 때나, 요즘 젠지에게 인기 있는 패션 브랜드에 관한 글이 올라올 때 사람들의 반응은 지금 우리 사이에서 핫한 무언가를 논하는 분위기보다 ‘나는 잘 모르지만 그렇다더라’의 온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일상이나 고민을 나누는 자유게시판에서마저 언젠가부터 개강, 종강, 시험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출퇴근과 야근에 몸부림치는 회사원들의 신세 한탄과 결혼, 육아 관련 키워드가 점령했다. 이쯤에서 드는 합리적 의심. 정말 젠지들은 커뮤니티를 떠난 걸까? 오픈채팅방, 그러니까 그들의 언어대로 ‘챗방’에 정착한 걸까?

생각보다 젠지들의 ‘챗방’ 점령률은 어마어마했다. 카카오톡 앱의 ‘오픈채팅’ 탭을 누르자, 수많은 채팅방이 쏟아졌다. 실제로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를 대상으로 향후 6개월 내 이용할 의향이 있는 커뮤니티를 조사했는데, 이에 Z세대의 과반수가 ‘오픈채팅방’이라 답했다. 연령이 올라갈수록 오픈채팅방 대신 기존 대형 포털 사이트 기반의 카페형 커뮤니티를 선택하는 이들의 비율이 높았다. 이 단편적인 수치만 보더라도 Z세대에게 오픈채팅이 얼마나 익숙한 소통 창구가 됐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오픈채팅방 첫 입성의 순간, 어떤 방부터 들어가볼까 탐색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취미, 중고 거래, 재테크, 동네, 정보 교환 등 특정 키워드를 기준으로 정렬된 오픈채팅방 그리고 실시간 인기 순위를 매겨놓은 오픈채팅방까지, 셀 수 없이 다양한 오픈채팅방 사이에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주옥같은 ‘짤’의 향연이라 풍문이 무성했던 ‘고독한 박명수’ 방이다. 불필요한 대화 없이 그저 사진만 주고받으면 되니 초보 ‘오픈채팅러’에게 이보다 편한 방은 없을 거다. 출근 시간을 막 넘긴 오전, 〈무한도전〉 속 유명한 박명수의 짤이 하나둘 창 위에 띄워진다. ‘어우 타이어드(피곤)하네요’, ‘돈 벌기 참 힘들다’… 마치 대화를 하는 듯 절묘한 짤들에 절로 웃음이 난다. 그렇다. 젠지의 트렌드를 뒤늦게 쫓아온 이 지각생에게도 진입 장벽 없이 열려 있는 건 오픈채팅방의 큰 메리트다. 오픈채팅은 여느 대형 커뮤니티처럼 회원 가입을 한 뒤 시간과 정성을 들여 등업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바로 활동이 가능하니까. 그럼에도 아직 오픈채팅방이 낯설게만 느껴진다면, 인사나 대화도 필요 없는 고독한 채팅방부터 입문하는 것도 좋은 묘수가 될 것이다. 맛깔 나는 티키타카에 ‘아유… 하기 싫어’ 짤을 보내 대화에 끼니 자신감이 생긴다. 내친김에 아이돌 팬들이 모여 소통하는 한 오픈채팅방에 호기롭게 입장했다. 근데 웬걸, 입장하자마자 나타난 방장의 한마디에 비상이 걸리고야 말았다. “프 껴주세요.”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알고 보니 오픈채팅방에 입장할 때 랜덤 캐릭터 프로필과 오픈채팅용 프로필을 따로 설정할 수 있는데, 랜덤 프로필이 아닌 오픈채팅 프로필로 설정해야 하는 게 이 방의 룰이었던 것. 황급히 프로필을 갈아 끼우고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지켜보자, 각자 자신의 최애 그룹 근황이나 세계관을 서로 소개하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흥미로운 건 ‘우리 오빠’, ‘나의 최애’만 최고라 여기고 다른 팬덤을 배척하는 과거 팬 문화는 이제 최애, 차애를 떠나 K팝 자체를 즐기는 문화로 진화했다는 점이다. 티저 영상을 띄워놓고 이 그룹의 세계관은 어떻게 전개될지 함께 의견을 나누는 사뭇 진지한 분위기에 금세 빠져들었다. 팬들이 모이는 방은 물론 아이돌 팬덤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디나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채팅방은 아이돌 방과 사뭇 다른 분위기인데, 각종 페스티벌과 공연 소식을 공유하며 티케팅 노하우를 물어보거나, 아예 공연에 함께 갈 동행인을 구하기도 한다. 워낙 다양한 밴드의 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이 모인 방이라 그런지 서로 좋아하는 곡을 추천해주기도 하는데, “시끄럽지 않고 잔잔한 음악을 좋아해요. 추천해줄 만한 앨범 있나요?”라고 취향을 덧붙이니 귀신같이 취향 저격하는 노래들만 추천해준다. 덕분에 이 방에 들어온 뒤로는 ‘요즘 뭘 듣지?’ 하는 고민이 한결 줄었다. 이런 게 오픈채팅방의 재미라면, 조금은 알 것 같기도?

몸풀기는 이 정도면 충분, 오픈채팅방의 범위를 좀 더 넓혀본다. 다음 행선지는 ‘취미’를 키워드로 찾은 필사 방이었다. 규칙은 단 하나. 새로 들어온 사람은 2시간 안에 자신이 필사한 글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각자 정해둔 루틴에 맞게 필사한 글을 올리면 되는, 조용하지만 자유로운 방이었다. ‘갓생’을 미덕으로 여기는 Z세대에게 취미 역시 숨 가쁘고 엄격하게 지켜야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었지만, “필사를 자주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강퇴하지 않아요. 다른 분들의 노력에 자극받아 쓰게 되는 모습을 기대합니다”라는 공지 글이 심심한 위안이 되는 게 퍽 신기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견문을 넓혀나가는 방 한편엔 ‘갓생’을 목표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취준방, 각종 지망생이 모인 방도 있다.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한 패션 스타일리스트 지망생이 모인 오픈채팅방에 들어가게 됐다는 후배는 무엇보다 지금 업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채용 정보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다고 했다. “단기 아르바이트부터 매거진이나 스타일리스트 팀의 어시스턴트 공고가 이곳에 올라오기도 하고, 자신들이 지망하는 회사나 팀에 대해 궁금한 점을 터놓고 나누는 분위기예요. 쇼룸과 대행사를 자주 드나드는 업계 특성상 갑작스럽게 생긴 변동 사항 같은 것도 이 방에 올라오니 자주 들어오게 되더라고요.” 한편 이렇게나 소통에 진심인 Z세대의 세상에 중요한 것이 또 있었으니, 바로 혼자만의 공간이다. 이 모순마저 참 재미있는데, 친구나 가족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말을 고백하는 ‘혼잣말 방’, ‘감정 쓰레기통 방’ 등이 매일 활발하게 돌아간다.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이의 말 못 한 고백, 관계의 끝에 서 있는 이의 간절한 마음,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내뱉는 말…. 내 안에 꽁꽁 숨겨뒀지만 어디에라도 꺼내고 싶은 아련하고 안타까운 말들이 이곳에 가득 피어난다. 뭐라도 남겨볼까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온 방에서 이름 모를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어느 밤, 괜한 청승에도 잠겨본다.

그래서 누군가 앞으로 기존의 온라인 커뮤니티보다 오픈채팅방을 더 자주 이용할 것 같냐고 묻는다면, 글쎄… 반반이라고 답하겠다.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여러 오픈채팅방을 ‘찍먹’ 중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익숙한 커뮤니티로 향하게 되는 관성과 원하는 채팅방을 직접 찾아 들어가야 한다는 귀찮음, 이미 채팅방 안에서 친해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알아서 적응해야 한다는 수고로움이 그 이유다. 대화가 활발한 방일수록 시도 때도 없이 ‘카톡’ 알림이 울리는 것도 피로하게 느껴졌다면, 결국 난 오픈채팅방과는 절대 친해질 수 없는 구시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오픈채팅방과 진득하게 친해지고 싶다면 문득문득 찾아오는 ‘현타’에 초연해지는 것이 좋을 거다. 한창 대화에 열중하다 “저도 공연에 가고 싶은데 시험 기간이라 엄두가 안 나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좀 나아질까요?”, “요즘 부쩍 걔 생각이 나는데, 톡 보내볼까요? 괜히 개강하고 만났다가 어색해질까 봐 고민돼요” 등 종종 아니, 생각보다 자주 Z세대의 절대적인 나이가 체감되는 순간이 찾아올 테니까. 하지만 나이는 숫자라고 했던가. 그 숫자를 넘어가면 지금의 ‘나’는 절대 모를, 미지의 무언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 옛날 콜럼버스가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 탐험을 이어갔던 것도 크고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를 만나기 위함이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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