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에서 ‘찬사’로…쿠팡 ‘계획된 적자’ 입증
쿠이마롯.
국내 유통업계를 한마디로 정의한 신조어다. 쿠팡이 전통의 유통 강자들을 제치고 1위 자리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쿠팡의 지난해 연간 매출은 31조8000억원. 이마트(29조4722억원)와 롯데쇼핑(14조5559억원)을 넘어섰다. 기준을 영업이익으로 바꿔 순위를 매겨도 1위는 똑같다. 쿠팡은 지난해 617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창립 후 첫 연간 흑자다. 반면 이마트는 지난해 연간 적자(-469억원)를 기록했다. 롯데쇼핑(5084억원)도 쿠팡 뒤에 서 있다.
쿠팡 직원들 입에선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나온다. 쿠팡은 실적 발표 때마다 비판의 화살을 맞았다. 로켓배송 사업 모델로는 ‘돈 못 버는 성장’만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였다. 증권가도 ‘매출이 아무리 늘어도 이익을 못 낼 것’ ‘(로켓배송이 아닌) 새로운 사업 모델이 필요하다’ 등의 부정적인 리포트를 줄줄이 발표했다. 쿠팡은 ‘계획된 적자’라며 흑자전환을 자신했지만 시장 의구심은 여전했다. 하지만 쿠팡은 연간 흑자전환으로 결국 계획된 적자를 입증했다. 로켓배송 시작 10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손가락질을 ‘찬사’로 바꿔낸 쿠팡의 성장 전략을 살펴본다.
국민 4명 중 1명이 와우 회원
유통·커머스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3가지다. 일단 ① 상품 구색(Selection)이 다양해야 하고 ② 가격(Price)이 저렴해야 한다. 또 문의 대응과 배송 등 ③ 서비스(Service)도 확실해야 한다. 문제는 3가지 키워드가 ‘트레이드오프(Trade-off)’ 관계라는 점이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서비스 질을 높이려면 인력을 추가 고용해야 한다. 통상 인건비가 늘면 상품 판매 가격은 상향 조정된다. 반대로 판매가를 낮추려면 운영비용을 절감해야 한다. 재고를 단일화하거나 서비스 인력을 감축할 수밖에 없다.
쿠팡은 업계의 ‘오랜 공식’을 깼다고 강조한다. 영문 홈페이지 곳곳에서 “트레이드오프를 부쉈다(Broken)”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창업자 김범석 쿠팡Inc 의장도 최근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쿠팡은 사업 확대 과정에서 트레이드오프 구조를 깨고 고객들의 ‘와우 경험’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주장만 있는 건 아니다. 수치가 뒷받침한다. 쿠팡의 로켓배송 SKU(판매 상품 종류 수)는 600만개를 훌쩍 넘어섰다. 로켓배송을 앞세운 서비스 질 역시 국내 유통업계에 충격을 불러왔다. 늘 ‘최저가’를 외칠 만큼 가격도 경쟁력 있다. 3가지 키워드를 모두 잡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트레이드오프를 깬 것은 ‘출혈’의 결과물이다. 쿠팡은 저렴한 판매 가격을 유지하면서 물류센터 등 인프라 확보에 수조원을 쏟아부었다. 당장 돈은 안 되지만 판매 상품 종류를 늘리고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었다. 쿠팡 재무제표 속 ‘투자 활동으로 인한 현금 유출액(Investing Activities)’ 항목에서 인프라 투자 규모를 엿볼 수 있다. 로켓배송 출시 이후인 2015년부터 2023년까지 누적 투자 활동 현금 유출액은 5조1612억원(2022년과 2023년은 3월 6일 환율 적용)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쿠팡은 2014년 7곳에 불과하던 물류센터를 현재 100여곳으로 늘렸다. 연면적 기준으로는 약 112만평 규모다. 축구장 500개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 과정에서 적자폭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누적 적자만 6조원 수준. 그런데도 피투성이 쿠팡은 한 가지 믿는 구석이 있었다. ‘록인 효과(Lock-in)’다. 록인 효과는 ‘고객을 가둔다’는 의미다. 학계에서는 일명 ‘자물쇠 효과’ ‘잠금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정 생태계를 조성해 재화나 서비스 이용 시 다른 선택을 제한하게 종속시켜 재구매를 촉진시키는 현상을 뜻한다.
김범석 의장도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이를 강조했다. 김 의장은 “쿠팡의 성과는 최근 몇 분기 사이에 특별한 무엇을 진행해 이뤄낸 결과가 아니다”라며 “지난 수년 동안 쿠팡이 상품 구색과 낮은 가격, 빠른 배송 속도 측면에서 고민하고 투자했던 것이 성과로 돌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록인 효과는 멤버십 회원 수에서도 드러난다.
쿠팡 유료 멤버십 ‘로켓와우’ 회원은 지난해 1400만명을 기록했다. 2022년(1100만명) 대비 약 27% 증가한 수치다. 단순 계산 시 국민 4명 중 1명이 로켓와우 회원이다. 1인당 고객 매출도 지난해 4분기 41만1600원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대비 3% 개선된 수준이다.
운영비용 절감해 수익 개선 성공
물류센터를 확보한 뒤에도 비용 부담은 지속됐다. 하루 만에 물건을 가져다주는 로켓배송의 구조적 문제가 걸림돌이 됐다. 로켓배송은 3~4일 만에 물건을 배송하는 일반 택배사보다 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또 쿠팡의 경우 대형 화물보다 소형 화물 비중이 큰데, 물건 분류 시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소모돼 부담이 컸다. 이는 고스란히 인건비 등 운영비용으로 돌아왔다. 물류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이 흑자전환을 가로막는 장애물 중 하나였던 셈이다.
쿠팡은 물류 체계 개선에 전사적 역량을 쏟아부었다. ‘자동화 물류 시스템’ 구축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이어졌다. 지난 2년 동안 집행한 투자 규모만 봐도 물류 체계 개선 의지를 엿볼 수 있다. 2015년 이후 쿠팡의 투자 활동 현금 유출액(누적)은 5조1612억원. 이 중 2022년과 2023년에 쓴 비용만 약 2조6000억원 정도다. 지난해 준공한 대구 풀필먼트센터(대구 FC)는 자동화 물류 시스템 구축의 결과물이다. 아시아권 물류센터 중 최대 규모인 대구 FC에는 무인 운반 로봇(AGV)과 소팅봇(Sorting Bot), 무인 지게차(Driverless Forklift) 등이 적용됐다.
쿠팡이 가장 공들인 건 ‘상품 전달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PTG(Person to Goods) 방식이 활용됐다. 직원들이 수많은 선반 사이를 오가며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찾아다니는 형태였다. 쿠팡은 대구 FC에 적용된 1000대의 AGV를 활용해 이를 GTP(Goods to Person) 방식으로 변경했다. 로봇이 바닥에 부착된 QR코드를 따라 이동, 직원에게 상품을 전달하는 구조다. 주문량이 많은 공휴일을 포함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에 로켓배송 등 고객 경험을 향상하는 핵심 자동화 기술이다. 동시에 쿠팡은 기존 물류센터들의 자동화 시스템 구축에도 집중하고 있다.
효과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로켓배송과 로켓프레시·마켓플레이스·로켓그로스 등으로 구성된 ‘프로덕트 커머스’ 부문 연간 조정 에비타(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마진율은 6.5%로 나타났다. 0%대 마진율을 보였던 과거 대비 확실한 성과다. 에비타 마진율은 매출 중 에비타가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마진율이 높을수록 수익 창출 능력이 높다고 보면 편하다. 프로덕트 커머스 부문 전체 매출은 약 30조7998억원으로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호실적 배경에 자동화 시스템 등이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다. 송상화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지금껏 확보한 물류 네트워크와 저절로 돌아가는 차별화한 구조적 경쟁력이 핵심이자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3] 신사업도 ‘니즈’ 중심 마케팅
‘스포츠’ 분야 겨냥한 쿠팡플레이
쿠팡이 로켓배송을 시작하며 핵심 품목으로 삼은 것은 유아용품이었다. 특히 기저귀에 집중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온라인 구매 수요가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기면 기저귀 등 유아용품이 필요하다. 하지만 직접 물건을 사러 가기에는 제약이 많다. 온라인으로 구매해야 하는 상황. 만약 하루 만에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었다. 마케팅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김범석 의장은 2015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쿠팡의 하루 기저귀 판매량이 6만팩에 달한다”며 “엄마들이 상상하는 것, 원하는 것을 모두 이뤄드림으로써 단순히 상품을 구매하는 이커머스 기업 이상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니즈를 제대로 겨냥한다’는 쿠팡의 초기 마케팅 전략은 신사업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소비자가 필요성을 느끼지만 이렇다 할 ‘메기’가 없는 시장에 뛰어들었다. 쿠팡플레이로 OTT 시장에 진출한 쿠팡은 ‘실시간 스포츠’ 분야에 집중했다. 넷플릭스의 유일한 약점이자 국내 소비자들이 갈증을 느끼던 분야다. 기존 스포티비(SPOTV) 등 일부 스포츠 중계 플랫폼은 상대적으로 비싼 구독료(월 9900~1만9900원)와 불안정한 네트워크 환경으로 소비자들이 등 돌린 상태였다. 반면 쿠팡플레이는 로켓와우 멤버십(월 4990원) 가입자라면 별도 비용 없이 시청할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스포츠 분야를 먹어 삼켰다.
효과는 확실했다. 실시간 스포츠 중계에 힘입어 쿠팡플레이는 국내 OTT 최강 자리에 올라섰다. 앱 분석 서비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쿠팡플레이는 지난해 8월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기준 국산 OTT 1위를 기록했다. 이후 선두 자리를 유지 중이다. 지난 1월에는 국내 OTT 중 처음으로 MAU 800만명을 넘어섰다. 국내외 OTT 종합 순위로는 넷플릭스(1292만명)에 이어 2위다.
또 다른 신사업 쿠팡이츠도 최근 성장세가 가파르다. 배달 시장이 둔화세에 접어들었음에도 쿠팡이츠 사용자는 11개월 연속 늘었다. 2위 요기요(위대한상상)와의 MAU 격차도 30만명 안쪽으로 좁혔다. 배달 플랫폼업계는 로켓와우 멤버십과의 시너지가 통했다고 분석한다. 쿠팡이츠는 지난해 4월부터 로켓와우 회원을 대상으로 지정 식당에서 5~10% 할인을 제공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쿠팡에 따르면 쿠팡이츠 이용 멤버십 회원은 이전 대비 90% 가까이 늘었다.
쿠팡이츠와 쿠팡플레이 등 신사업에 힘입어 성장 사업 부문(Developing Offerings Segment) 매출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성장 사업 분야 매출은 약 1조533억원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26% 증가했다. 지난 1월 31일 인수한 명품 플랫폼 ‘파페치’ 실적은 반영되지 않았다.
“시장은 충분히 크고, 같이 나눠 먹을 수 있어”
에릭 차(Eric Cha)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는 “시장에서 중국 크로스 보더(국경을 넘나드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성장을 주목하고 있다. 이들의 성장이 실질적으로 (쿠팡) 사용자 이탈에 영향을 미치는지, 향후 쿠팡의 성장 범위를 제한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에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꽤 긴 답변을 내놨다. 요약하자면 “해왔던 일만 제대로 해낸다면 앞으로도 문제는 없다”는 것.
김범석 의장은 “쿠팡은 5600억달러 규모 소매 시장(온·오프라인)에서 아직 한 자릿수(Single-digit)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이 정도 규모 시장은 대형 중국 업체는 물론이고 새롭게 진입하는 신생 업체도 모두 승리(Many Winners)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고객은 늘 최고의 선택지(Best Selection)만을 찾는다. 이런 시장에선 언제든 손가락을 움직여 새로운 플랫폼을 이용할 수 있다. 매일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새로운 와우 포인트를 찾고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0호 (2024.03.13~2024.03.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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