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씨앗'이 돼버린 집...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DM'을 아시나요? 다이렉트 메시지(Direct Message)의 약자인 디엠은 인스타그램 등에서 유저들이 1대 1로 보내는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4월 10일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대변하기 위해 국회로 가겠다는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DM 보내듯 원하는 바를 '다이렉트로' 전달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오마이뉴스>는 시민들이 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을 진솔하게 담은 DM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이동현]
▲ 홈리스행동이 보내는 DM |
ⓒ 오마이뉴스 |
"창문 없는 서울역 근처 고시원에 사는데 7, 8월 여름 두 달간은 연일 폭염에 많은 날을 낮에는 서울역 대합실, 밤에는 열대야를 피해 상대적으로 선선한 지하도에서 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있어도 성능저하로 유명무실한 에어컨, 그조차도 전기요금 문제로 드문드문 틀어주는 관리인, 폭우로 인한 습하고 꿉꿉한 냄새로 들끓는 벌레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저에게는 극복하기 보다는 피해야 하는 재난이었습니다."
지난해 9월, 서울지역 기후정의행진 참가 선포 기자회견에 참여해 발언한 한 홈리스행동 회원의 이야기입니다. 그 후 두 달여가 흐른 뒤 전국이 빈대로 비상이 걸렸습니다. 같은해 11월 3일, 정부는 '빈대 확산 방지 정부 합동대책본부'를 구성했고, 11월 7일부터는 '빈대 현황판'까지 만들어 빈대 발생 현황을 수시로 점검하였습니다.
정부나 지자체 모두 빈대 문제를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 증가에 따른 유동 인구 확산으로 진단하였고, 유동 인구 모니터링과 방제, 방역에 전력하였습니다. 12월 이후로 빈대 문제는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았습니다. K-방역의 승리입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 빈대 관리 자율점검표 한 쪽방지역에 붙은 서울시의 '빈대 관리 자율점검표' |
ⓒ 홈리스행동 |
번지는 주거 빈곤
주거실태조사(2022년)에 따르면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비율은 2006년 268.5만 가구(16.6%)에서 2022년 83.4만 가구(3.9%)로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83.4만 가구의 문제만 해결하면 우리 사회 주택 문제의 큰불은 끄게 되는 걸까요?
최저주거기준은 '주거기본법'에 따라 "최소한의 주거수준에 관한 지표"로 국토교통부 장관이 설정하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최저주거기준은 '주거기본법'이 제정되기 이전부터 '주택법'에 근거해 설정돼 있었고, 지금도 당시의 기준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최저주거기준이 적용되는 주거는 '주택'으로 한정됩니다. 즉, 위에서 언급한 최저주거기준 미달 83.4만 가구에 '주택'에서 살지 않는 가구들은 제외되어 있습니다.
'주택'에서 살지 않는 사람도 있냐고요? 꽤 많습니다. 2022년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오피스텔을 제외한 '주택이외의 거처' 거주 가구는 57만2279가구로 182만9932명이 집이 아닌 곳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구원 수 기준 전년보다 4만1632명, 2.3% 증가한 수치입니다.
집 아닌 곳 들 중에서도 특히 더 취약한 곳에 사는 이들은 어땠을까요?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된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2022년)에 따르면, 주택 이외의 거처 중에서도 고시원, 숙박업소의 객실, 판잣집 등 취약 거처 거주 가구는 44만3126가구로 2017년 36만9501가구보다 약 20%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의 최저주거기준은 이런 비주택, 비적정 거주 가구의 문제를 하나도 파악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최저주거기준은 ①최소 주거면적 ②필수적인 설비 ③구조·성능 및 환경기준으로 구성돼 있는데 위 미달 가구 현황은 면적과 설비 기준 미달 현황만을 측정한 수치입니다. 최저주거기준의 '구조·성능 및 환경기준'은 "양호한", "적절한", "안전한" 등과 같이 추상적이어서 이를 기준으로 측정이 불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조·성능 및 환경기준'은 구조의 강도, 내열·방화·방열·방습, 방음·환기·채광·난방, 소음·진동, 자연재해로부터의 안전한 위치 등 주거의 '질'을 이루는 핵심입니다. 따라서 최저주거기준은 이들을 측정할 수 있도록 구체화 되고, 모든 주거를 대상으로 적용해야 하며, 미달 가구 해소를 위한 정책으로 연계되도록 개정되어야 합니다.
집, 시장 아닌 공공의 영역으로 전환되어야
'집'은 인류의 재생산을 위한 필수재이지만 물려받거나 은행에 저당 잡히지 않는 한 노동 소득으로 범접할 수 없는 상품이 돼 버렸습니다. 거리와 쪽방, 고시원 같은 한계 거처에서 사람이 살고, 전세사기 피해자는 피해 인정자 수만으로도 1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집'은 보금자리가 아니라 불안의 씨앗이라고 재정의되어야 할 지경입니다.
집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장에 내던져진 집을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핵심적인 정책은 공공임대주택입니다.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주거로서만 역할 할 뿐 부동산 시장에 상품으로 팔려나가지 않는 공공임대주택의 확대가 관건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기 공공임대주택은 전체 주택의 4%, 영구임대주택은 1%에 불과합니다. 주거 문제에 극히 선별적으로 대응할 수준에 불과하여 전체 주거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오히려 삭감시켜 빈약한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더욱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멈추고 공공임대주택 확대로 정책 방향을 재설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공임대주택은 기본적으로 영구 거주할 수 있도록 재계약 횟수의 제한을 폐지해 입주자의 주거 안정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미 '공공주택 특별법'은 임대주택 유형마다 재계약 소득·자산요건을 심사하도록 하고 있어 일률적인 거주기간 제한 없이도 우선순위 필요에 따른 배분이 이뤄지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매입임대 거주기간 확대 요구 기자회견 2023년 10월 12일, <오래살자 임대주택 주민모임>이 매입임대주택 거주기간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 김윤영 |
주거를 중심으로 한 홈리스 정책 필요
주거취약계층 중에서도 거리, 쪽방, 고시원, 찜질방 등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의 상황은 더욱 절박합니다. 그러나 정당들의 총선 공약에 이들에 대한 정책은 단 한 줄의 언급도 없습니다. 아마 그 수가 적고, 지원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이 낮다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홈리스의 숫자가 적다는 것은 조작된 통념입니다. 앞서 제시한 국토교통부의 '주택총조사',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는 주거취약계층의 규모가 광대하고, 증가추세에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노숙인복지법'을 근거로 '노숙인 등'을 거리, 노숙인 시설, 쪽방에서 사는 사람으로만 제한하여 파악합니다.
전국 실태조사도 5년 단위로밖에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노숙인 등'의 수는 2017년 1만7532명, 2021년 1만4404명에 불과하며 그 수도 줄어드는 추세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런 실태 파악은 '노숙인복지법'과도 맞지 않는 것으로, 법률은 '노숙인 등'의 범위를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보건복지부는 '노숙인 등'의 규모를 파악할 때 국토교통부와 같이 주택 이외의 취약 거처인 비숙박용 다중이용업소, 고시원, 컨테이너, 창고, 움막 등의 거주자를 파악했어야 합니다. 조사 범위를 제약하여 문제의 크기를 줄이는 부정한 수법은 이제 멈춰야 합니다.
거리 홈리스는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없도록 운영되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 거리 홈리스에게 일시적으로 월세를 지원하는 임시주거지원 사업이 고시원비 상승 등 빈곤비즈니스를 부추기는 문제, 장애와 질병 등을 이유로 홀로 거주하기 힘든 이들에게 주거유지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주택의 공급 부족 등 홈리스와 관련된 주거정책들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개선할 점이 무척 많습니다.
3월 8일, 서울특별시의회가 '서울특별시 서울역광장의 건전한 이용 환경 조성을 위한 지원 조례'를 제정하며 거리 홈리스의 존재를 도덕의 문제로 왜곡하여 통제하려 하듯, 홈리스에 대한 혐오와 형벌화 조치들 역시 우리 사회가 주목하고 대응해야 할 주제입니다.
꼭 한 달이면 입법 권력을 재구성할 총선이 열립니다. 늘 보수 여야의 자리바뀜으로 끝났고 올해 역시 다를 바 없을 듯합니다. '투표'는 그런 결말을 맺더라도, 우리는 총선이라는 정치의 장을 그동안 소거됐던 목소리를 내고 그런 소리에 민감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고자 합니다.
3월 19일, 쪽방 주민 등 홈리스들은 동자동 쪽방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요구안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쪽방 주민들의 요구를 공약에 담지 않는다면 동네에 한 발짝도 들일 수 없다고, 더 이상 선거철 배경으로 주민들을 소비하게 두지 않겠다고 선언할 예정입니다. 이런 목소리를 귀담는 후보가 있다면 반갑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동현씨는 홈리스행동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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