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용접·철도... 힘 좀 쓰는 언니들의 노동 분투기

김홍규 2024. 3. 1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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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정연 글, 황지현 사진, <나, 블루칼라 여자> (2024, 한겨레출판)를 읽고

[김홍규 기자]

▲ <나, 블루칼라여자> 책 표 책 <나, 블루칼라 여자>는 남초 현장에서 일하는 10명의 여성 노동자 이야기를 담았다.
ⓒ 한겨레출판
 
부산 신항에서 화물차 운전을 하는 김지나씨, 특수 배관 용접을 하는 김신혜씨, 콘크리트 바닥에 먹을 튕겨 도면을 그리는 김혜숙씨, 대형 건물 공사장에서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 목수 신연옥씨, 아파트 건설 현장 자재 정리·세대청소팀 작업반장 권원용씨, 26년째 레미콘 운전을 하는 70대 정정숙씨, 철도 차량 정비원으로 철도를 수리하는 하현아씨, 공장에서 자동차 시트를 제조하는 황점순씨, '철물점 아저씨'처럼 주택 전반을 수선하는 주택 수리 기사 안형선씨, 목조 주택을 짓는 20대 빌더 목수 이아진씨. (책, 4~7쪽 정리)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가 쓰고 황지현 포토그래퍼가 사진을 찍은 책 <나, 블루칼라 여자>에 등장하는 주인공 10명이다. 이들은 모두 남성이 훨씬 더 많은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다. 책은 2023년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연재된 인터뷰 기사를 정리한 것이다.

'블루칼라'와 '여성', 이중 차별을 받는 이들

한국에서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는 이중 차별을 받는다. '블루칼라' 노동자라는 지위와 '여성'이라는 존재가 받는 중첩된 차별이다.

첫째는 여러 현장에서 직접 몸을 움직여 일하는 블루칼라 노동자를 대하는 사회적 편견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우대하는 문화가 아직도 강하다. '막노동'이라는 말, 일본어 '도카타(どかた)'에서 유래한 '노가다'라는 표현은 현장 노동자를 낮춰 부르는 대표적 표현이다.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 자신의 육체에 작별 인사를 하고 잠자코만 있으면 된다. … 영혼은 육체에 있는 그 무언가를 단어일 뿐 …" (니체,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옮김, 2024, 59쪽, 페이지2북스.)
 
육체노동을 비하하는 한국 문화는 블루칼라 노동자 직업 선택을 꺼리는 것을 넘어 임금과 각종 노동 조건 차별을 만든다. 니체(Nietzsche)는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영혼, 정신은 육체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말했다.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에게'라고 대상을 콕 집었다.

'생성형 인공 지능' '기술'을 지나치다 싶게 강조하는 국가에서 '기술'을 가진 사람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현상은 모순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자녀나 학생들에게 블루칼라 직업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를 진지하게 다루는 경우는 많지 않아 보인다.

둘째,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가 받는 차별은 한국 사회에서 사는 '여성'이라는 존재에서 출발한다.
  
▲ 성별 임금 격차 OECD에서 2023년 발표한 <고용 현황> 자료에 들어 있는 ‘성별 임금 격차’ 그래프를 한국을 중심으로 편집했다.
ⓒ 김홍규
 
위 그림은 OECD에서 2023년 발표한 <고용 현황> 자료에 들어 있는 '성별 임금 격차' 그래프를 한국을 중심으로 편집한 것이다. 한국 자료는 2022년 기준이다. OECD가 밝힌 41개 국가 가운데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는 우리나라다(OECD, 2023, <고용 현황>, '성별 임금 격차', OECD 홈페이지 2024년 3월 14일 검색).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적은 벨기에는 1.2%에 불과하다. 유럽 27개 나라 평균은 10.2%다. OECD 전체 평균도 12.1%이다. 한국은 31.2%이다. 다른 나라보다 압도적으로 성별 임금 격차가 크다. 두 번째로 큰 이스라엘도 25.4%다.
 
"… '남성이 대다수인 이른바 '남초 직군'에서 일하는 여성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 '백래시'가 심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그 최전선에 있는 여성들은 안녕한지 궁금했다." (책, 6쪽)
 
글쓴이 박정연은 책 <나, 블루칼라여자>의 출발을 이렇게 말했다. 남녀 차별이 존재하고, '백래시(backlash)'가 기승을 부리는 사회에서 남성이 훨씬 더 많은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가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페미니즘(feminism)' 학과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feminist)'를 공격용 언어로 사용되는 한국이다. 남성이 많은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의 '안녕'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여자고, 어리다는 이유로 장벽을 좀 느꼈습니다. 저를 팀원의 한 명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냥 아빠가 일하는 현장에 따라온 열여덟 살 꼬꼬마 여자애로 봤죠." (책, 220쪽)
 
나무로 집을 짓는 20대 빌더 목수 이아진씨 말이다. '어린 여성'만 이런 취급을 받지 않는다. 책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심지어 70대 노동자에게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편견의 파편이 날아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사람만 바뀐 채 반복적으로 거의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같은 실수, 똑같은 초보 노동자의 행동에도 '여자라서~'가 어김없이 쫓아다닌다.

벽을 넘는 방법, 다른 듯 같은

그들은, 그녀들은 어떻게 뒤틀린 시선의 벽을 넘었을까? 책에는 개인 성향에 따른 다양한 대응 방법이 나온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바꾸지는 못 하지만, 그냥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하고 그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설명해줘야죠." (책, 26쪽)
 
"여성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 여자가 여자의 권리를 위해 계속 얘기를 해야 합니다."(책, 28쪽)
 
부산 신항에서 컨테이너를 나르는 25톤 트럭을 운전하는 김지나씨가 한 이야기다. 구체적 방법은 다르더라도 책 <나, 블루칼라 여자>에 나오는 10명의 여성 노동자가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책 주인공들은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한다. 잘못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자리를 단단하게 잡았다.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책, 141쪽)
 
26년째 레미콘 운전 노동자로 일한다는 70세 정정숙씨가 여성 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다른 아홉 명 노동자들도 비슷한 바람을 밝혔다. 차별과 혐오를 딛고 '당당하게' '살아남아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들처럼.
 
"제가 호주에서 학교를 다닐 때 체육대회를 하면 친구들이 목수가 일할 때 입는 형광 조끼를 입고 코스튬을 하기도 했어요. 큰 트럭을 끄는 게 로망인 친구들도 있었고, 방과 후 학교에서 목수 수업을 듣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책, 224쪽)
 
빌더 목수 이아진씨가 한 호주 학교 이야기는 한국 교육과 그 일에 몸 담고 있는 내가 돌아보고 고칠 것들을 만나게 한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 기관인 교육청과 학교에서 '진로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대학 진학을 '정해진 길'로 학생들에게 대놓게 요구한다. 그것도 모자라 직업 간 차별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거나 특정 대학 진학과 '인서울'을 부추기는 때도 있다.

이런 잘못된 교육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학교 안팎에서 우리 삶을 지탱하기 위해 애쓰는 블루칼라 노동자, 여성 노동자들에 관한 편견을 심는다. 그들을 '그림자'나 '유령'으로 인식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미래 선택지에서 아예 제외하게 만든다.

'인간 존엄성 존중'과 '평등'이라는 헌법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교육'일 수는 없다. 우리 교육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인지 심각하게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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