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인들 위축,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선필 2024. 3. 1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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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신임 이사장

[이선필 기자]

 지난 2월 29일 한국독립영화협회 신임 이사장으로 추대된 백재호 감독.
ⓒ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 영화인들의 산실이자, 영화 운동사의 주축이 되어 온 한국독립영화협회(아래 한독협)에 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 2월 29일 진행된 총회에서 백재호 감독이 만장일치로 새 이사장으로 추대된 것. 1982년생인 백재호 감독은 배우로 영화계 입문했다가 프로듀서 및 감독으로 꾸준히 외연을 확장해오며 현장 경험을 두루 쌓아왔다.

그의 취임을 두고 사실상 세대교체라는 평가가 강하다. 1980년대, 1990년대 영화 운동의 주축이자 한독협 태동의 중심이던 1세대를 이을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이라며 독립영화계 안팎에선 기대감이 감지되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백재호 신임 이사장은 "실제로 이것이 세대교체인지는 고민해볼 지점들이 많다"고 운을 뗐다. 조직 내에서 세대교체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세대 교체 아닌 세대 조화

"다른 영화 직능 단체에 비해 비교적 젊은 인물이 이사장이 된 것은 긍정적 메시지겠지만, 전임 이사장이었던 고영재 대표(2015년부터 2023년까지 한독협 이사장직을 맡았다)가 초기 이사장직을 수행하신 김동원 감독님과 같은 세대로 묶이는 게 맞나 싶다. 고 대표님도 애초에 독립영화 운동을 하던 분이 아니었으니까. 아마 1.5세대 대지는 2세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생이 영화 관련 단체 대표가 된 게 처음이니 그런 평가가 나오는 것 같은데, 고 대표가 처음 이사장직을 수행했을 때도 40대였잖나. 굳이 따지면 저는 3세대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세대 교체라는 말에 백재호 이사장이 신중한 이유는 아무래도 여전히 단단한 결속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998년 탄생 이후 26년의 역사가 있지만, 한독협은 신규 회원이 크게 늘지 못하고 사실상 정체기를 맞이했다. 상업영화 중심의 산업구조 강화 및 코로나19 팬데믹도 한몫했겠지만, 젊은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한독협의 역할이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한 까닭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백 이사장은 "함께 목소리 내고 일할 사람들이 부족하기에 선배 영화인들이 더욱 물러나면 안 된다"며 말을 이었다.

"세대교체가 됐다고 생각하고 선배들이 스스로 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할까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그래서 총회 때 당부드렸다. 선배 영화인들 방생된 게 아니라고, 오히려 더 도와주셔야 한다고(웃음). 현재 운영위원분들도 예전부터 하셨다가 다시 일하시는 분도 꽤 있다. 저처럼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그런 분들 덕에 더 질러볼 수 있게 된다. 어떤 부담스러운 자리에선 저 대신 선배들이 나서주셔야 할 때도 있고.

물론 변화를 바라기에 절 추천하신 것도 있다는 걸 잘 안다. 현재 독립영화 쪽 정책이나 제작 환경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 이번 정권 들어서 특히 말이다. 저도 독립영화를 하며 힘든 시절을 겪었고, 박근혜 정권도 겪었다. 근데 지금은 더욱 독립영화가 위축되고 있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 저처럼 잃을 게 없는 사람이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한다(웃음)."

"신규 회원 늘리고, 제 목소리 낼 것"

온건한 어투였지만, 백재호 이사장은 그간 세월호 참사, 영화계 성폭력 문제, 이명박-박근혜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적극 목소리를 내어 온 행동파 영화인이다. 만장일치 추대 또한 조용하면서도 강한 그의 면모를 알고, 힘을 실으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백 이사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 산업이 침체하면서 독립영화 쪽은 더욱 큰 타격을 받은 게 문제"라며 "신진이든 기성이든 독립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간 한독협에선 독립영화 관련 정책이 신설되든 바뀌든 나아지거나 덜 나빠지도록 나름 역할을 분명히 해왔다. 서울독립영화제를 운영하면서 신진 영화인들도 꾸준히 발굴했고, 영화인 처우 개선에도 독립영화인들의 의견을 개진해왔다. 제가 협회에 가입한 이후엔 인디그라운드가 생기면서 독립영화 유통 및 배급 대안을 연구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환경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 우린 더욱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을 써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함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고, 예전처럼 한독협 자체로 활기가 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한독협 존재 의의를 놓고 나오는 여러 갈래의 제안 내지는 비판을 백재호 이사장도 잘 알고 있었다. 회원 수는 수년째 200명 수준으로 정체돼 있고, 지난해 영화계 정책 개악 이슈에서도 한독협의 역할이 미미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백 이사장은 "꾸준히 성명서를 내거나 각 분과 단위로 연대해왔는데 결국 싸움의 방법 문제 같다"며 고민 지점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올해 영화 관련 지원사업을 동시에 깎아버렸다. 마치 각개격파 당하는 느낌이었다. 영화인들이 서로 예산을 따기 위해 경쟁하도록 만든 셈이다. 독립영화인들도 전방위적 공격이 들어오니까 극영화, 다큐, 제작 등으로 나눠서 연대를 했다. 그 와중에 이 정권은 예술인들이 배부른 소릴 한다고 프로파간다를 한다. 경제가 어려운데 영화가 무슨 소용이냐며 말이다.

지금의 젊은 독립영화인들도 협회에 굳이 가입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 같다. 과거엔 큰 이슈에 같이 큰 목소리를 내는 게 한독협이었는데, 오히려 협회 활동을 하면 자기 작업에 부담인 것처럼 받아들이기도 하는 것 같고. 일각에선 독립영화를 만들면 자동으로 회원이 된다고 생각하시기도 하더라.

제가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웃음). 협회 회원임이 좀 자랑스러울 수 있게, 회원 간 소속감도 들 수 있게 여러 사업을 해보려 한다. 그리고 이 정권은 왜 이렇게 독립영화를 미워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서 독립영화가 왜 절실히 필요한지 정책 연구와 함께 공부할 지점이다. <오마이뉴스> 독자분들께도 독립영화를 많이 봐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독립영화가 어렵고 힘들어서 응원해달라는 게 아니라 삶에 굉장히 좋은 자극이 될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9일 한국독립영화협회 신임 이사장으로 추대된 백재호 감독. 왼쪽엔 한국독립영화운동 1세대이자 초대 한독협 이사장인 김동원 감독.
ⓒ 한국독립영화협회
 
백재호 이사장은 이 대목에서 자신의 첫 독립영화 기억을 꺼내놓았다. 배우를 꿈꾸기 전인 고등학생 때 비디오테이프로 봤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여전히 강렬하게 그의 뇌리에 남아 있다. 이 영화를 만든 류승완 감독도, 지금은 세계적 영화인이 된 박찬욱, 봉준호 감독도 모두 독립영화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백재호 감독 또한 그랬다. 신인 배우 시절, 제법 큰 소속사와 계약했지만 당시 소속사 사무실 근처에 있던 압구정 스폰지하우스와 명동 중앙시네마에서 온갖 독립예술영화를 섭렵하던 때가 있었다.

"당시 CGV 같은 멀티플렉스에선 볼 수 없는 영화들이 그런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더라. 종로 씨네코아, 중앙시네마, 스폰지하우스가 제 활동 영역이었다. 당시 스폰지하우스 대표가 운영하는 카페가 압구정에 있었는데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독립영화와 연이 생기기 시작했지."

이 얘기로만 밤을 샐 수도 있을 기세였다. 분명한 건 창작자의 개성과 고유성을 담은 이런 독립영화들이 누군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가 삶을 확장한다는 믿음, 예술이 삶을 풍족하게 한다는 그 믿음을 그에게서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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