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로봇과의 사랑... 모두에게 건네는 선명한 위로

조영준 2024. 3. 1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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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351] 애니메이션 영화 <로봇 드림>

[조영준 기자]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스틸컷
ⓒ 영화사진진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이 이야기는 최근 개봉했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해성과 노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연이 아니라는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오랜 시간을 간직해 온 서로에 대한 감정을 모두 내려놓는다. 두 사람이 마지막 이별을 나누고 카메라는 노라를 따르고, 커다란 슬픔 속에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영화가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택시를 타고 떠나는 해성 역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자신의 감정 앞에 솔직하지 못했던, 현실의 다른 문제를 핑계 대며 제 마음을 지키지 못했던 순간들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으리라. 달리 말하면,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순간의 모든 죄책과 사랑을 자신에게로 돌렸을 것이다. 어쩌면 곁에 아서가 있었던 노라보다 훨씬 더 큰 슬픔 속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로봇 드림>의 주인공인 도그는 맨해튼의 이스트빌리지 한 주택에서 살고 있는 고독하고 외로운 인물이다. 창 밖의 다른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데 그의 집은 적막하기만 하다. 게임을 하고 TV를 돌려봐도 그의 표정에 주름 하나 바뀌지 않을 정도로 무료하기만 한 날들. 우연히 TV를 통해 외로운 이들을 위한 반려 로봇 광고를 보게 되기 전까지 그의 삶은 무채색에 가까웠다. 도그는 바로 로봇을 주문한다.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기대로 가득 찬 그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떠오른다.

행복한 날을 보내던 도그와 로봇에게도 이별의 순간은 다가온다. 어느 여름날 향했던 해수욕장에서다. 즐거운 물놀이 끝에 로봇은 고장이 나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도그 혼자서는 무거운 그를 혼자 움직이거나 옮길 수 없고, 주변에는 도와줄 사람도 없다. 혼자 집으로 돌아와 뜬눈으로 밤을 새고 동이 트자마자 바다로 향하지만 휴장이 된 해수욕장에는 입장할 수 없다. 뉴욕시 공원 관리 부서에도 요청을 해보지만 기각, 늦은 밤 숨어 들어가는 일도 실패. 도그와 로봇은 불가항력적인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각자의 자리에 생각지도 못했던 큰 슬픔, 행복의 크기에 준하는 정도의 커다란 반동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스틸컷
ⓒ 영화사진진
02.
이 영화 <로봇 드림>은 미국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사라 바론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다. 스페인의 영화감독인 파블로 베르헤르는 1980년대의 뉴욕시를 배경으로 두 존재를 옮긴 채로 관계의 속성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도그와 로봇이 나누는 우정과 사랑, 서로에 대한 이해가 그 중심에 있다. 불가항력적인 이별 속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대상을 연결하는 것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문화들이다. 국제 무역센터의 두 건물과 브루클린 다리 등을 배경으로 한 뉴욕시 전경은 물론, 이제는 사라져 버린 유선 전화와 라디오, 롤러스케이트 등의 물성은 지금보다는 조금 더 감정적 관계에 의존했던 때의 감성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프레임 속에 놓이게 되는 대상을 사람이 아닌 동물로 그려내고 있는 부분도 의미가 크다. 극 중의 뉴욕시를 동물만이 살고 있는 공간으로 바꿔놓은 것은 이 작품이 무성 영화의 2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장황한 대사가 놓이는 대신 의인화된 동물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그들의 감정이 표현되고 따르게 되는 과정은 이해가 아닌 공감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각각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이야기 속에서 활용되고 있는 부분은 보편적이지만 적절한 자리에서 용이하게 활용된다. 가령, 도그라는 캐릭터는 모티브가 되는 개가 가진 발달된 청각과 후각으로 이야기의 중요한 자리를 이끌어 나간다.

03.
영화는 '로봇 드림(Robot Dreams)'이라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봇의 몇 번의 중요한 꿈, 상상을 따라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시작은 해변을 가른 철조망에 의해 이별하게 되면서부터다. (두 인물이 함께일 때는 꿈을 꾸는 장면이 놓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세 번의 상상이다. 바다를 통해 해변에 상륙한 토끼와 관련한 꿈이 한 번, 처음 내리는 눈을 보고 자신의 몸이 얼어가는지도 모르고 꾸는 꿈이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거리를 걷고 있는 도그를 우연히 목격한 뒤에 꾸는 꿈까지 총 세 번.

이야기 속에서 로봇의 꿈은 여러 가지 역할을 부여받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상황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가는 심리를 표현하는 일이다. 이는 극 중에 대사가 놓이지 않는 극의 특성과도 연결된다. 대사를 활용하는 대신 꿈의 장면으로 대신 놓는 것이다. 처음 장면의 꿈에서는 기다림이 주는 행복한 감정만이 놓인다. 혼자가 되고 나서 처음 꾸는 꿈이기도 하고, 헤어짐으로부터 아직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두 번째 꿈에서도 그 행복의 감정은 이어진다. 가장 행복했던 지난여름의 노래 'September'를 통해서다. 하지만 이번 꿈에서는 오랜 기다림 끝에 피어오르는 두려움이 반영된다. 다른 로봇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도그의 모습이 따라붙는 이유다. 이제 마지막 꿈속에는 커다란 기대와 바람이 놓인다. 지체 없이 뛰쳐나가 도그와 재회의 포옹을 나누는 일이다.

모두 알고 있듯이 이 꿈들은 현실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면서 그 의미를 더욱 증폭시킨다. 꿈속에서는 로봇을 도와줬던 토끼들이 현실에서는 다리를 잘라 자신들의 배를 수리하는 용도로 쓰고, 행복한 시절의 노래를 부르며 도그의 집으로 향했던 상상 속 자신의 모습과는 달리 두 번째 꿈 바깥에는 쏟아지는 눈 속에서 얼어가는 비정한 현실이 놓인다. 마지막 장면도 다르지 않다. 도그를 발견하고 바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과 달리 로봇은 되려 자신의 모습이 들킬까 두려워하며 제 모습을 감춘다. 이렇게 서로 상응하는 꿈과 현실의 장면은 오와 열 양쪽 모두에서 각각의 의미를 지니며 베틀의 날실과 씨실이 피륙을 짜내듯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스틸컷
ⓒ 영화사진진
04.
도그와 로봇의 이야기는 분명 우정과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놓여 있는 장면들에 대해서도 시선을 놓지 않는다. 두 인물이 처음 해수욕장을 향해 가는 버스 장면에서 로봇이 발견하게 되는 또 다른 로봇의 모습이 첫 시작이다. 안정적인 관계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신과 달리 주인으로 보이는 대상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는 다른 로봇을 처음 목격하고 로봇은 이상한 마음이 되어버린다. 곧 잊어버리게 되긴 하지만 이 장면의 폭력은 세 마리 토끼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타인(로봇)을 해치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고물을 주우러 다니는 원숭이는 해변에 묻힌 로봇을 발견하자마자 고물상에 팔아버리고, 고물상의 악어는 그를 웃음과 함께 고철 더미에 폐기해 버린다.

혼자 남은 도그를 오리와 연결시켜 놓은 장면도 로봇의 심리를 이양시켜 온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연을 날리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도그와 오리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가까워진다. 지금까지의 다른 모든 순간에 로봇을 떠올리던 도그가 그를 생각하지 않은 유일한 순간일 정도로 깊은 감정이다. 하지만 오리는 온종일 기다려도 연락이 닿지 않고, 도그에게는 유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엽서 하나만이 남는다. 기약도 없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로봇의 마음을 도그도 조금은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05.
로봇은 피동의 존재다. 애초에 누군가가 광고를 보고 구매를 해야 의미가 될 수 있고, 고장이 나고 난 후에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이 이야기 속에서 '만드는 행위'는 그래서 힘을 갖는다. 영화의 가장 처음에서 로봇을 만드는 도그의 행위도, 너구리가 고물상에서 가져온 로봇의 일부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에서의 행위도 모두 숨을 불어넣는 행위다. 우정으로 보자면 처음의 정을 쌓기 시작하는 행동이며, 사랑으로 따지자면 구애의 행위에 해당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도그를 발견한 로봇이 상상에서처럼 실제로 뛰쳐나가지 못하는 것은 두 행위 사이에 놓여 있어서다.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가 없는 사랑이기에 로봇은 현재의 사랑은 가슴에 품고 과거의 사랑은 결코 지울 수 없는 추억 속의 음악 'September'와 함께 떠나보낸다. 피동의 존재였던 대상이 주체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최초의 순간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세 인물이 마지막 장면에서 형성하는 구도와 거의 흡사하게 느껴진다.

영화 <로봇 드림>은 현재가 아닌 1980년대를 배경으로 그리는 이야기며, 사람이 아닌 동물에 대입한 이야기다. 우정과 사랑 그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야기며, 짙은 로맨스만이 아닌 모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분명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지금 사랑을 잃어버린 모든 이들에게 선명한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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