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막말 대잔치', 청소년 유권자 볼 낯이 없다
[신정섭 기자]
▲ 지난 3월 11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관위 외벽에 대형 홍보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 |
ⓒ 연합뉴스 |
정치인들의 막말이 점입가경이다. 이달 들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 살펴봐도,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충남 서산태안)의 '이토 히로부미는 인재' 발언부터, '난교 예찬' 논란을 불러일으킨 장예찬 국민의힘 부산 수영구 국회의원 후보의 2014년 페이스북 글, 김준혁 민주당 경기 수원정 국회의원 후보의 2019년 유튜브 방송 중 "(박정희 대통령은) 밤마다 여자애들 끼고 시바스리갈 처먹고" 등의 막말, 정봉주 민주당 서울 강북을 국회의원 후보의 2017년 유튜브 방송 중 'DMZ 목발 경품' 발언, 도태우 국민의힘 대구 중남구 국회의원 후보의 2019년 유튜브 방송 중 '5.18 북한개입설' 주장 그리고 조수연 국민의힘 대전 서구갑 후보의 "백성들은 봉건적 조선 지배를 받는 것보다 일제 강점기에 더 살기 좋았을지 모른다"는 2017년 페이스북 글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런 설화(舌禍)는 단순한 '말실수'라기보다는 본인의 철학이나 소신, 역사관을 드러낸 경우가 잦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여야가 각각 상대를 악마화 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선명하고 자극적 언사로 관심을 끌려는 '의도된 전략'으로 보인다. 막말의 '진앙'은 네거티브라는 얘기다.
문제는 이렇게 막말을 내뱉거나 왜곡된 역사관을 버젓이 신념으로 포장하는 정치인들이 공천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당 지도부 또는 공천관리위원회가 관련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다면 나중에라도 공천을 취소해야 마땅하지만 아직까지 그러지 않고 있다.
잇따른 막말, 정치적 무관심 불러와
어른 시민으로서, 교단에 서는 현직교사로서 부끄러워서 아이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을 정도다. 올해 고3 학생 열에 셋이 투표권을 갖는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이번 4월 총선에서 2006년 4월 11일 이전에 태어나 투표가 가능한 고교생 유권자는 총 13만4346명으로, 전체 고3 학생 39만1541명의 34.3%에 이른다. 참고로, 만 18세 유권자가 처음 투표권을 행사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이들의 투표율은 67.4%였다.
정치인들의 '막말 퍼레이드'는 유권자를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든다. 무관심을 넘어 '정치 혐오'를 불러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학교 밖 아이들을 포함한 청소년 유권자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정당정치와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볼썽사나운 여야 정쟁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정치에서 관심을 거둔다.
투표권을 가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이렇다 할 '유권자 교육'도 없다. 게다가 교사는 페이스북 게시글에 '좋아요'도 누르지 못하는 '정치적 금치산자'이기 때문에 교실에서 정치나 선거 이야기를 꺼내기도 쉽지 않다.
국회의원 선거가 존재하는 이유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국회의원 선거는 왜 존재하는가? 국민이 더 잘 살 수 있게 좋은 법을 만들어낼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일꾼'을 뽑기 위한 것 아닌가. 공천이 거의 마무리돼 가고 있는 지금, 여야는 오로지 과반 의석 혹은 제1당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혈안이 돼 있을 뿐, 선거 이후 국민의 삶의 질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한 마디로, 온갖 선언과 수사(rhetoric)만 난무할 뿐 정책 대결은 실종됐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를 빌미로 공수표를 남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이슈 역시, 비록 국민 다수가 찬성한다고는 하나, 치밀한 준비나 대안 마련 없이 '의사는 정부를 이길 수 없다'며 무조건 밀어붙이고 있는데, 그 이유가 겨우 40% 초반으로 끌어올린 대통령 국정 지지율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내년에 본격 시행할 예정이었던 늘봄학교 정책을 졸속으로 1년 앞당겨 학교 대혼란을 일으킨 것도 총선을 앞두고 '표퓰리즘'으로 무리수를 둔 결과라는 지적이 많은 게 사실이다. 또한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모·부성 보호 제도와 관련해 발의된 법안 220건 중 실제 개정된 법안은 7건(3.2%)에 불과했는데(선거가 없었던 지난해에는 단 1건도 처리되지 않았다), 그래 놓고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여야가 경쟁적으로 저출산 해소 공약을 내놓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정치권의 이런 현실을 청소년 유권자에게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그래도 소중한 한 표는 꼭 행사해야 한다"고 말해야 옳은가. 아니면 "투표 포기도 권리이니 뽑고 싶은 후보자가 없으면 기권해도 된다"고 말해야 하는가? 정치권이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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