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화이트 데이’ 시들…초콜릿 원료 코코아값도 급등
‘화이트 데이’인 14일 오전 11시. 세종시 나성동의 한 편의점 입구에 선물 세트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사탕·쿠키 등을 모아 포장한 뒤 1만~2만원에 내놨다. 낱개 상품가격을 더하면 1만원 미만인데 웃돈을 붙여 파는 식이다. 직장인 이모(32)씨는 “화이트 데이까지 챙길 여유가 없는 데다 너무 비싸 돈값을 못한다”며 “같은 돈으로 연인과 맛집에서 식사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서울 명동의 한 베이커리도 들어서자마자 한가운데 진열대를 화이트 데이 선물로 가득 채웠다. 케이크 종류까지 섞여 있어 3만~4만 원대 제품까지 있었다. 한 달 전 ‘밸런타인 데이’ 때 남은 것으로 보이는 초콜릿 선물 세트도 눈에 띄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시 매장에 다시 들렀지만, 선물 세트는 거의 그대로 쌓여있었다. 매장 직원은 “선물이 예전만큼 안 팔린다. ‘OO 데이’ 때마다 재고를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고 털어놨다.
남성이 사랑하는 여성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날로 굳어진 3월 14일 화이트 데이를 비롯한 ‘OO 데이’ 특수가 예전만 못하다. 고물가 추세가 장기화하며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진 데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실속형 소비가 늘어나면서다.
특수가 예전만 못했던 지난해 11월 11일 일명 ‘빼빼로 데이’가 대표적이다. 유통업계에서 빼빼로 데이는 밸런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와 함께 ‘3대 데이’로 꼽히며 매출이 급증하는 시기다. 하지만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마케팅 기간(11월 1∼11일) 관련 상품 매출이 1년 전보다 CU는 8.2%, 세븐일레븐은 5%, GS25는 2.6% 각각 줄었다. 당시 불어닥친 한파에다 빼빼로 데이가 주말이었다는 점이 매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지만, 소비 열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통계를 분석해도 먹거리 소비에 지갑을 닫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가구당 월평균 실질 소비지출(물가 영향 제외)은 1년 전보다 2.1% 늘었다. 그런데 식료품·비주류 음료(-3.4%), 의류·신발(-4.2%) 등 지출은 오히려 줄었다. 먹고, 마시고, 입는데 쓰는 지출에 유독 깐깐해졌다는 의미다.
‘OO 데이’ 특수 효과를 누리는 과자류 물가 상승세가 두드러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 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스낵 과자(6.7%), 아이스크림(10.8%), 파이(8.9%) 물가 상승 폭이 전체 물가상승률(3.6%)의 2~3배 수준이다. 과자류의 원재료인 설탕(14.1%)과 밀가루(7.2%) 등 물가가 급등한 영향을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콜릿의 주원료인 코코아값까지 급등세다. 14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미국 뉴욕상품거래소 기준 12일(현지시간) 코코아 선물 가격이 t당 7049달러(약 930만원)를 기록했다. 한 달 새 20% 가까이 올랐다. 올해 초와 비교하면 60% 이상, 1년 전과 비교하면 대비 150% 이상 폭등했다. 세계 코코아 생산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서아프리카 지역의 기후 변화로 작황이 나빠진 게 원인으로 꼽힌다.
이미 역대 최고치지만 앞으로 코코아값 상승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아프리카 생산국에서 코코아 종자를 개량하거나 비료, 약을 쓸 여력이 없어서다. 카카오 씨앗이 나무로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는 5년이 걸린다. 블룸버그는 최근 “싼 초콜릿 시대는 끝났다”고 전망했다.
세종=김기환·이우림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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