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는 길에 유명인들을 만날 줄이야... 운수대통했다
2023년 4월부터 42일 동안 스페인(바르셀로나, 산세바스티안, 빌바오, 마드리드, 세비야, 그라나다), 포르투갈(포르투, 리스본), 모로코(마라케시, 페스, 쉐프샤우엔, 탕헤르)의 12개 도시에서 숙박하며 여행했습니다. 단체관광 마다하고 은퇴한 부부 둘이 보고 듣고 느꼈던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김연순 기자]
▲ 몬세라트산 꼭대기의 수도원에서 내려오는 노란 케이블카 |
ⓒ 김연순 |
목이 따끔거리고 코가 막혀 숨쉬기가 어렵다. 입도 바싹 타고 온몸이 쑤신다. 감기 몸살이다. 여행 기간이 길어지며 피로가 쌓여 그런지 며칠 전에도 몸살이 났었다. 가지고 간 약은 다 먹어 이젠 없다. 남편은 아침 일찍 나가 약국을 찾아 감기약을 사 왔다. 우리 돈으로 무려 2만 원. 비싼 약 먹고 좀 쉬어서 괜찮아졌는데 다시 며칠 움직이니 감기가 도진 것 같다. 따끈한 수프를 먹고 오전 내내 누워 쉬었다. 내리 쉴까 하다가 그러기엔 아쉬워 점심 무렵 일어났다. 계획했던 몬세라트에 가기로 했다.
에스파냐 광장 근처 플라사 데 에스파냐역에서 몬세라트행 기차를 탔다. 약 한 시간 걸려 몬세라트 역에 내리니 저 멀리 어마어마한 바위산이 보인다. 기괴한 바위산의 모습은 가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바위산 끝자락에 손톱만큼 작게 수도원이 보인다. 저 수도원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케이블카도 있고 산악열차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하며 둘 다 타보기로 했다. 올라갈 땐 케이블카, 내려올 땐 산악열차를 타는 걸로 정하고 편도 티켓을 구매했다. 가격 차이는 별로 없다.
▲ 몬세라트수도원 광장 |
ⓒ 김연순 |
몬세라트 수도원은 1236미터 높이의 몬세라트 산 중턱에 자리해 있다. '몬세라트'는 톱니 모양의 바위산을 뜻한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본래 십자군 전쟁 당시 무슬림 세력의 공격을 피해 은신해 있던 위프레도 백작의 은신처였다고 한다. 11세기 경 그의 증손자 리폴 신부가 수도원을 지었고 나폴레옹 전쟁 당시 파괴되었다가 19세기~20세기 무렵 재건을 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 성 조르디 상으로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의 작품 |
ⓒ 김연순 |
광장 한쪽으로 길게 벽이 둘러쳐 있다. 거대한 외벽은 여러 개의 아치가 있고 아치와 아치 사이에는 하나씩 흰 조각상이 있다. 크게 뚫려 있는 아치를 통해 하나 가득 보이는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파랗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흘러간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계단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평화가 일렁인다. 머릿속에 저장한 장면이 사진보다 오래간다고 했던가, 파란 하늘을 품고 연이어 늘어선 커다란 아치들은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그 어느 장면보다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 몬세라트 수도원의 아치 벽 |
ⓒ 김연순 |
넋 놓고 경치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건다. 젊은 두 명의 관광객이 사진을 찍어 달란다.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두어 컷 찍어주고 내가 보기에 더 좋은 곳을 배경으로 또 두어 컷 찍어 주었다. 확인하더니 매우 흡족해한다. 그러더니 이번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내민다. 그것으로도 찍어 주었다. 갑자기 폴라로이드로 우리 부부를 찍어 주겠단다. 몇 번 사양하다가 응했다. 몬세라트 산 꼭대기에서 폴라로이드 필름 사진이 생기다니, 고맙고도 신기했다. 여행 잘하라고 서로 인사 나누고 헤어졌다.
▲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상 정상까지 운행되는 푸니쿨라 |
ⓒ 김연순 |
입장권을 구매하고 이제 바실리카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정문의 정교한 조각상이 눈에 띈다. 예수와 열 두 제자다. 마치 성당에 들어서는 모든 이들을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입구 바닥엔 커다란 원형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람들이 원 앞에 줄을 서 있다. 이 원 안에 서서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단다. 우리는 일단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내부는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중앙의 제단 위로는 금빛 장식의 높고 둥근 돔 구조다. 긴 의자에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데 제단 위로 뭔가 움직임이 있다. 바로 그 유명한 '검은 성모상'이다. 사람들이 한 명씩 차례로 지나가다 성모상 앞에 멈추어 기도한다.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중에 안내 책자를 확인하니 성모상 한 손에는 예수가 안겨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구슬이 있다. 사람들은 그 구슬을 만지며 기도한다.
▲ 몬세라트 산 배경의 수도원 전경 |
ⓒ 김연순 |
▲ 몬세라트 수도원 성당 안에 있는 검은 성모상 |
ⓒ 김연순 |
검은 성모상은 880년 무렵 몬세라트 산 동굴 안에서 발견되었다.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정확한 유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교황 레오 13세는 이 성모상을 카탈루냐의 수호성물로 지정했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뭔가 꼭 바라는 게 있으면 몬세라트 수도원을 찾아 검은 성모상 앞에서 기도한단다.
▲ 몬세라트 수도원 성당 밖 초를 봉헌할 수 있는 동굴 |
ⓒ 김연순 |
내려올 때는 산악열차를 탔다. 산악열차는 높고 장대한 산을 S자 형태로 돌면서 내려온다. 산악열차를 타고 내려오다 보니 이 길을 내기 위해 수많은 나무들과 뭇 생명들이 훼손되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사람들이 편하게 오가는 대신 상처 입고 훼손되어 복구되지 못하는 생명체들도 있다는 게 마음 한쪽을 무겁게 한다.
▲ 카탈루냐 광장에서 라리가 우승팀인 FC 바르셀로나를 기다리는 시민들 |
ⓒ 김연순 |
불현듯 떠올랐다. 바로 어제가 FC 바르셀로나(라리가)가 우승을 거머쥔 날임을. 오늘 이 광장에서 축제가 열리는구나 싶었다. 카탈루냐 광장은 이미 흥분의 도가니다. 뭔가를 보려는 듯 사람들은 가로등과 길가의 동상, 가판대를 타고 올라가 있다. 주변 건물의 몇몇 창문들은 활짝 열린 채 사람들이 나와 서 있다. 흥분은 전염성이 강하다. 분위기에 빠르게 젖어든 나의 흥분도는 급상승했다. 어제 에스파뇰 홈구장에서 축구 보느라 맘 놓고 응원도 못했는데, 이 자리는 완전 반전의 분위기다.
▲ 라리가 우승팀 FC 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 광장을 지나며 축하 세리머니 하는 모습1 |
ⓒ 김연순 |
시간이 갈수록 함성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모두가 한쪽으로 시선을 두고 기다리는 건 바로 FC 바르셀로나의 축하 세리머니 버스 행진이다. 잠시 후 귀청을 찢을 듯한 함성과 함께 선수단이 탑승한 긴 오픈버스가 나타났다. 감격에 찬 선수들이 손을 크게 휘저으며 기뻐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는 시민들은 그야말로 감격에 겨워 소리치고 있다. 나도 심장이 쿵쾅쿵쾅거린다.
▲ 카탈루냐 광장에서 라리가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FC 바르셀로나와 환호하는 시민들 |
ⓒ 김연순 |
덧붙이는 글 | 제 브런치에 중복게재 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한동훈 15일 광주 방문에 '사복 경찰관 3백명' 투입 검토
- [단독] 임태훈 컷오프, 심사위원 '사퇴'... "민주당 김대중-노무현 역사 부정"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입니다, 대학병원은 붕괴 중입니다
- 무자격 심의위원, '바이든 날리면' 중징계 참여
- "손으로 쌀을 300번 씻어요" IT맨들이 만드는 막걸리
- 윤 정부와 국힘, 이승만의 진짜 '공'은 말하지 않는 이유
- 목숨을 건 충신 268명과 함께하는 조선 왕릉
- '난교'가 끝이 아니었다...장예찬 이번엔 "서울시민, 일본인 발톱의 때"
- 황의조 형수 재판부 "얼굴 안나와, 징역 3년"... 피해자측 "억장 무너져"
- [오마이포토2024] "카이스트 졸업생 '입틀막', 대통령 경호처장 처벌 받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