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플랫폼법은 한국에 비극”…해외석학의 경고
“한국 ‘뉴 코리아 디스카운트’ 겪을 수도”
“한국 이전에 중국에서 디지털 플랫폼 규제를 단행했다. 이 규제의 목적은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경쟁이 위축되는 결과가 나왔다. 벤처캐피털 투자가 줄었고, 신규 비즈니스 진입도 줄었다. 중국의 공룡 테크 기업들에 대한 투자도 줄었다. 한국 역시 준비 없이 플랫폼 규제를 도입한다면 산업 혁신을 죽이는 비극이 될 것이다. 한국이 ‘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겪을 수도 있다.”
대니얼 소콜 서던캘리포니아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13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공정위가 플랫폼법 도입으로 인해 발생할 부작용을 명확하게 분석하거나 파악하지도 않고 정부부처 간 주도권을 쥐기 위해 무리하게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본다. 이는 플랫폼 생태계를 위축시키고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에 대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부정적 평가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콜 교수는 “한국이 앞장서서 정보기술(IT) 분야에서의 규제 실패 사례를 만들 필요는 없다”면서 “섣부른 플랫폼법 도입은 한국 기업들이 추구할 수 있는 수익 기대를 낮춰 전반적인 기업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소콜 교수는 반독점, 기업법, 지배구조, 규정준수, 데이터 보호, 기업가정신, 혁신, 플랫폼 전략 등을 연구하는 전문가다. 2016~2020년 5년 동안 가장 많이 인용된 독점금지법 교수 10위 안에 드는 석학으로 불린다.
소콜 교수는 14일 서울대에서 ‘플랫폼 시장의 경쟁 촉진과 규제: 중국의 사례’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2021년 2월 중국에서 시행된 ‘플랫폼 경제를 위한 반독점 지침’(플랫폼 심사지침)과 후속 인터넷 플랫폼 분류 지침이 산업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했다. 이 지침에 따라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트댄스, 디디, 메이투안, JD 등 6개 플랫폼 기업이 초대형 플랫폼 사업자로 분류돼 강한 규제를 받았다.
소콜 교수는 플랫폼 심사지침 영향을 받은 41개 산업과 영향을 받지 않은 127개 산업 등 총 168개 산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중국 6대 플랫폼 기업의 벤처캐피털(CVC) 투자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플랫폼 심사지침 시행 이전 1년 동안은 6대 플랫폼 기업의 CVC 투자가 월평균 20.84% 증가했다. 그러나 플랫폼 심사지침 시행 이후에는 이런 투자가 월평균 1.14%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플랫폼 심사지침 시행 이후 월간 투자 건수와 새로 진입하는 스타트업 수에도 부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플랫폼 심사지침 시행 영향을 받은 41개 산업과 영향받지 않은 127개 산업을 비교한 결과 월간 투자 건수는 26.73%, 새로 진입하는 스타트업 수는 18.72% 감소했다. 플랫폼 심사지침 시행 이후 그 영향을 받은 플랫폼 및 산업의 시장 경쟁력이 약화했다는 뜻이다. 스타트업들은 플랫폼 심사지침 시행 영향을 받은 플랫폼과 비슷한 산업으로의 진출을 기피하고, 다른 산업으로의 진출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플랫폼 경쟁이 활성화될 거라는 중국 정부의 예상과 달리 규제가 시장을 위축시킨 것이다.
소콜 교수는 공정위가 중국 과거 사례나 현재진행형인 유럽의 DMA(디지털시장법)의 효과에 대한 분석 없이 섣부르게 플랫폼 규제안을 꺼내든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유럽에서 시행한 플랫폼 규제가 경쟁을 실제로 촉진했는지에 대한 증거는 없다”면서 “한국은 유럽과 달리 상당히 역동적인 경제구조를 갖춘 곳이다. 규제가 없었다면 혁신을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인데도 유럽 시장에 적용한 규제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공정위가 유럽의 DMA 시행 결과와 효과 등을 천천히 살펴봐야 한다”면서 “실증적으로 플랫폼 규제가 산업에 어떤 일을 일으키는지 분석하고, 규제 도입의 실질적인 득실을 따져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플랫폼법이 자칫 국가안보에도 위협을 가하는 약점이 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로 인해 정부가 기업을 이용하는 개인들의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또 기업 규제를 강하게 하는 국가를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미국이 안보 위협을 이유로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에 대한 규제에 들어간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소콜 교수는 “한국은 주변에 강대국들이 많아 국가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다. 플랫폼법 도입에 있어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도 역시 분석해야 한다”면서 “구글 등 미국 플랫폼 기업을 직접 제재하겠다고 나설 경우 잠재적으로 한미 FTA 위반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굳이 일으킬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 플랫폼법이 도입되면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것은 중국 기업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규제 사각지대를 노린 중국 기업들이 시장을 빠르게 장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콜 교수는 “규제 도입으로 기존 한국 기업들이 경쟁하기 어려워진다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기업이 반드시 생긴다”면서 “현재로서는 플랫폼법 도입으로 한국 시장에서 가장 많은 득을 얻을 기업은 중국 기업들이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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