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노인 모시는 고령사회, 이혼 사유까지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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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규현 기자]
기대 수명이 길어지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혼 상담소를 찾는 60대 이상 고령층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여성(23.1%)보다 남성의 상담(51.5%)이 더 급증하고 있다니, 나 역시 같은 세대 남성으로서 마음이 복잡해진다(한국가정법률상담소, 2023년도 상담통계). 얼마나 결혼 생활이 힘들면 황혼기에 이혼까지 하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서로 뜻이 맞지 않는 부부가 여생을 옥신각신하면서 피곤하게 사느니, 차라리 갈라서서 각자의 삶에 충실하고 싶은 심정일 것으로 이해한다. 어쨌든 20~30년 이상을 함께한 황혼 부부라면 부부의 연을 끊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터이다. 그런데 내 주변에도 황혼 이혼을 고려하는 지인이 있고, 별거에 들어가 사실상 결혼 생활을 중단한 또 다른 지인 부부도 있다.
▲ 황혼 이혼 상담이 늘고 있다고 한다(자료사진). |
ⓒ 픽사베이 |
이혼을 고려 중이라는 먼 지인은 주말 부부였는데, 퇴직을 하고 연로하신 모친을 함께 모시게 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고 한다. 모친의 노환이 깊어지고 돌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부부 사이도 멀어져 부인이 친정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는 다른 형제들도 70대 고령이라 부담을 나누기엔 어려운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부인마저 시어머니를 모시는 데 지쳐 친정으로 간 뒤 돌아오지 않아 힘들어 하고 있었다. 거동은 불편하지만 정신이 온전한 모친을 요양원으로 모시기도 여의치 않단다.
부부 관계도 나빠진 데다 부인이 친정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자 다시 합치기 힘들 것 같다며, 이혼까지 고민 중인 상황이다. 노인이 노인을 모셔야 하는 고령사회(유엔에 따르면 65세 이상 비율이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한국은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지 17년 만인 2017년에 고령사회로 들어섰다)의 안타까운 현실이 황혼기 이혼까지 불러오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또 다른 지인은 직장 은퇴 전에도 성격 차이로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은퇴 이후 집에서 부인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잦은 의견 충돌로 관계가 악화되면서 결국 따로 살게 되었다고. 별거 뒤 장례식이나 결혼식과 같은 집안 대소사 때만 부부로서 함께 하고, 일상생활은 따로 생활한다고 했다. 명절 때 자녀도 어머니와 아버지를 따로 번갈아 찾아뵙는다니, 그 심정이 어떨까 싶다.
별거가 길어지면서 지인은 혼자서 사는 생활에 익숙해져 굳이 부인과 합쳐 싸우면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자녀가 결혼할 때까지만 법적인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이후에는 이혼을 생각하는 듯해 지인 부부를 잘 아는 나의 마음도 심란해진다.
▲ 예전에 어머니가 고향 본가에서 사용하시던 옷장과 즐겨 보시던 텔레비전이다. |
ⓒ 곽규현 |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위기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위의 경우처럼 나도 연로하신 부모님을 어떻게 잘 모실까 하는 문제로 어려웠던 경우가 있었다. 아버지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돌아가시자, 어머니가 본가에서 홀로 계시기 힘들어하시고 때마침 건강도 나빠지셨던 적이 있다.
그때부터 어머니를 어떻게 모실지 형제들이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찾아야 했다. 궁리 끝에 당시에 몸이 좋지 않아 직장일을 쉬고 있던 형님이 본가로 내려가서 2년 정도를 모셨다. 형님이 다시 직장에 나가게 되면서 사정이 여의찮아서 결국 어머니를 우리집으로 모시고 왔다. 아내도 어머니를 모시고 오자는 내 의견에 동의를 해 주어 무척 고마웠다.
하지만 당시 아들딸도 고등학생이라 예민한 데다 아파트에서 모시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시골 본가에서 자유롭게 사시다가 폐쇄적인 아파트 생활에 힘들어 하셨다. 아내도 시간이 흐르자 지치는 모습이 보여 안쓰러웠다.
원래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자는 생각이었으나 상황이 녹록지 않아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했다. 시골로 다시 가고 싶어 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어쩔 수 없이 본가로 내려갔다. 요양원도 생각해 봤으나 연세에 비해 인지 능력이 좋으신 어머니가 요양원에는 가지 않으려고 하셨고, 자식된 마음에서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싶지도 않았다.
형제들이 상의한 결과, 본가 가까이에 사는 누나가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다. 고생한 누나에게도, 누나의 두 집 생활을 이해하고 도와준 매형에게도 고마웠다. 어머니는 보살핌을 받으시며 당신 뜻대로 본가에서 마지막 여생을 보내시다가 영면하셨다.
고령사회 시대에 노부모님을 모시는 문제는 앞으로 더 불거질 수도 있다. 상황에 맞게 부담을 나누어 가진다는 생각으로 합심해 지혜를 모아야 형제간 우애에도, 부부간에도 금이 가지 않을 듯하다.
아울러 국가에서도 초고령사회(통계청은 2017년 고령사회가 된 우리나라의 초고령사회 진입을 2026년으로 예상하고 있다)를 대비해 살던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노인들에게 재가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고, 노인요양시설 서비스 질을 향상시켜서 노인들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개인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은퇴 뒤 가족에게 느낀 소외감... 이렇게 해결
한편 나 또한 은퇴한 이후 어려움이 있었다. 직장에 다닐 때와 달리, 은퇴를 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이것저것 집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갔다(관련 기사: '삼식이' 소리 피하려다 제2의 신혼을 삽니다 https://omn.kr/26qfq).
그간 나는 아들딸과 이야기를 그런대로 많이 하는 편이라서 자녀들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은퇴 이후 한두 달간 지켜보니 아들딸이 엄마인 아내를 대하는 것과 아빠인 나를 대하는 것이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아내한테는 정서적으로 아주 가깝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나누는데, 내게는 뭔가 형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아서 서운했다.
아들딸이 '엄마는 공감을 잘해 주고 이야기가 잘 통하는데 아빠는 공감을 안 해주고 무뚝뚝하다'는 말까지 했다는 걸 듣곤, 가족들에게서 소외되는 듯해 갑자기 우울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은퇴 후 우울 증세가 있던 차에 가족에게도 소외감이 들자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괜히 아내에게 짜증이 나고 아들딸과도 말하기가 서먹해졌다. 아내가 왜 갑자기 그러냐고 물어도 대답하기가 싫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내와 크게 싸우거나 꼰대 같은 아버지가 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결국 텃밭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머리를 식히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내가 좋아해서 아내와 결혼했고 우리 부부가 사랑해서 낳은 자식인데, 아내와 아들딸이 정서적으로 가깝게 지낸다고 소외감을 느낄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아내와 아들딸이 잘 지내고 즐거우면 그것대로 좋은 것 아닌가.
어차피 내가 이룬 가정이고 나로 인해 구성된 가족이므로 '우리 가족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마음이 전보다 한결 편해지면서 뭔가 뭉클한 깨달음 같은 게 가슴에 와 닿았다.
▲ 아내가 기록했던 가계부의 일부로 우리집 가정 경제의 역사가 담겨 있다. |
ⓒ 곽규현 |
이런 일을 겪으며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내와 가족에 대한 나의 마음이다. 특히 그동안 바쁜 일상으로 피상적으로만 생각해왔던 아내의 내면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고 물어봐 주려고 노력한다. 특히 아내는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30여 년 간 매일의 가정 경제를 가계부에 일일이 기록하며 알뜰하게 가정을 꾸려오고 있다. 아내의 노력으로 가족이 평온한 일상을 누려왔다.
아내와 나는 기본 가치관은 비슷하나 성격은 너무 달라서 서로 맞추려 노력하며 살아왔다. 일례로 아내는 순간적인 판단과 행동이 빠르며 일을 미루지 않지만, 나는 생각이 깊고 신중하며 행동은 여유롭다. 나는 느긋한 성격이라 혼자 외출할 때는 시간에 딱 맞추어 행동하지만, 아내와 같이 외출할 때는 아내의 빠른 행동에 보조를 맞추려 노력한다. 아내도 나의 성격을 알기에 일부분 이해를 하고 넘어간다.
그간 인생살이의 풍파를 오래 함께 헤쳐 나온 아내보다 내게 더 귀중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걸 자꾸 기억하려 한다. 내 인생의 영원한 반려자로 남은 여생을 아내와 같이할 것임을 가슴속에 깊이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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