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르포]싱가포르 독점공연 후폭풍 ‘스위프트 디플로머시’
티켓판매액만 1조원 세기의 이벤트
아시아선 싱가포르 6회 편중
서울·홍콩·방콕 등 팬들 항의 빗발
아세안국가 "싱가포르 정부 개입"
문화 중심지 건설 국가 전략 부상
‘스위프트노믹스(Swiftnomics)’는 세계적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34)가 눈덩이처럼 만들어 내는 '경제효과'를 뜻하는 신조어다. 코로나가 종식된 지난해 봄부터 시작돼 올해 말까지 2년간 이어질 그녀의 세계 투어 ‘에라스 투어(The Eras Tour)’는 150여회 공연의 티켓 판매액만 약 1조원, 미국 경제에 끼치는 효과만 5조 원에 달할 정도로 웅장하다. 단순히 일개 가수의 공연이라고 표현하기엔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세기적 이벤트라는 얘기.
그녀의 6번째 해외투어인 이번 투어는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5개 대륙의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데, 아시아에선 단 두 개 도시 일본 도쿄(2월)와 싱가포르(3월)만 포함됐다. 일본에선 2회뿐인데 싱가포르 공연은 무려 6회로 편중돼 배정된 것이 특징. 당연히 세계적 스타의 공연을 원하는 아시아 각국 팬들의 아우성이 빗발쳤다. 서울은 물론 홍콩 마닐라 쿠알라룸푸르 팬들의 항의가 특히 거셌다는 후문.
특히 테일러 팬이 가장 많은 필리핀과 태국의 불만이 높았다. 방콕은 세계적 관광지이며, 필리핀의 경우 과거엔 가까운 홍콩 공연으로 위안으로 삼았지만, 이번엔 홍콩까지도 제외된 것. 어쩔 수 없이 동아시아의 열성 팬들은 대개 값비싼 표(R석 50만원)를 구해 비행기티켓은 물론 값비싼 호텔까지 추가로 지불해가며 싱가포르 공연장에 집결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약 30만 명의 테일러 팬들이 지난주 싱가포르를 찾았고 이들이 창출한 경제효과가 약 5000억 원을 넘어 GDP 0.2% 상승효과가 있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 이후 관광산업에서의 반전의 계기를 찾는 싱가포르는 이번 ‘스위프트노믹스’로 싱글벙글한 표정이다. 공연 기간 중 항공과 호텔 요식업 등에서 30% 이상의 수요가 폭증이 이뤄진 것이다. 반면 이웃한 아세안 국가에선 이러한 독점공연이 “싱가포르 정부의 개입” 때문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확 커진 스포츠·엔터=논란이 커지자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는 7일 “이번 공연을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개최할 수 있도록 양측이 합의한 것”이라고 시인했다. 한마디로 입도선매 방식으로 싱가포르 정부가 위약금까지 물어가며 동남아 다른 도시의 공연 물량까지 빼앗아왔다는 얘기다. 다만 이러한 행위가 정당한 계약의 연장일 뿐 이웃 국가에 대한 적대 행위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세안 나라들이 이 뉴스에 분노했고,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최근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등 이른바 전시(MICE) 산업에서 가장 뜨거운 나라가 중동의 카타르와 동남아의 싱가포르다. 카타르는 최근 월드컵과 아시안컵의 잇따른 개최로 국가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하며 인근 두바이와 사우디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싱가포르는 최근, 홍콩의 추락을 계기로 동아시아 최고의 금융 및 서비스 중심 국가로 발돋움한 모양새다. 전통적인 항만과 항공 등 재미없는 교통도시 이미지를 첨단 콘텐츠를 활용해 완벽하게 벗어난 것이다. 싱가포르는 과거엔 스포츠는 F1 자동차 경주대회에 집중 투자를 벌였는데, 이제는 문화 콘텐츠 분야로 크게 확대한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 직전을 포함해 한국의 케이팝 스타들이 가장 빈번하게 찾은 도시가 바로 싱가포르였다.
올해 1월에는 영국의 세계적 밴드 콜드플레이가 6차례 아시아 공연을 펼쳤는데 4차례가 싱가포르였다. 오는 4월엔 한국의 대형스타 아이유(IU)가 5만 좌석의 초대형 공연도 두 차례나 열린다. 일련의 초대형 최첨단 콘서트를 통해 “세계 최고의 공연은 무조건 안전하고 편리한 싱가포르에서 열린다”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인접국 공연 계약에 위약금을 물고서라고 끌어오는 게 남는 장사라는 판단이 나온 배경이다.
◆문화상품도 전략 무기=결과적으로 지역 독점 공연계약이 불러온 후폭풍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외교 문제로까지 확대 발전되기엔 아직은 애매하다. 민간 부문의 콘서트 계약을 놓고 싸우기엔 정부 사이엔 협력할 안건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국의 타위신(Thavisin) 총리는 “이렇게 해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무리해서라도) 이 쇼를 태국으로 가져왔을 것”이라고 웃어넘겼다. 동시에, 싱가포르가 먼저 상도의를 깼기 때문에, 관광산업에서 아세안 1위를 노리는 태국의 반격이 나올 것이란 전망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감정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와 시민은 이번 ‘테일러 스위프트’ 6회 공연에 일종의 문화적 자부심과 우월감까지 느끼는 수준이 된 것이다. 공연 기간 도시국가 전체가 축제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반면 싱가포르의 과잉 투자와 주변국을 깔보는 공격적 태도에 불쾌감을 느낀다는 아세안 국가들의 언론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국민 소득(1인당 8만 달러)은 여타 아세안 국가의 4배가 이상의 격차가 난다.
미국이 배출한 세계적 스타였기에 싱가포르의 무리한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러 나라의 팬을 고려해 세심하게 접근하지 않고 콘서트의 안전과 수익성만 따졌다는 얘기다. 만일 케이팝 콘서트가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면 동남아 전체에서 한국과 해당 가수에 대한 혐오감이 높아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싱가포르 에드윈 통(Edwin Tong) 문화부 장관은 현지 언론에 “광범위한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이러한 대규모 공연을 통해 싱가포르를 전략적 가치를 지닌 문화 중심지로 건설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했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건은 문화상품도 한 나라의 전략무기로 쓸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확인한 게 성과다. 특히 ‘케이팝’이라는 세계적인 문화상품을 가진 한국의 엔터기업과 정부가 조심스럽게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돈만 고려하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는 얘기다.
정호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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