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시스템 공천의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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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동안의 공천 기간이 끝나간다.
이번 공천의 특징 중 하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시스템 공천'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뒤늦게 시스템 공천을 시작한 국민의힘은 순조롭게 공천을 진행한 듯했다.
교체 대상이라던 중진의원들은 시스템 공천의 억압에도 번번이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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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동안의 공천 기간이 끝나간다. 이번 공천의 특징 중 하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시스템 공천’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신탁(神託)이나 해치와 같은 상상의 동물을 대신해 우리 정치권이 ‘시스템’이라는 기준을 내세운 것은 사람의 사적 이해관계에 좌우되지 않는 공정한 공천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 위함이다. 수식과 계산법에 따라 결정되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존경받는 원로를 모셔와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야 국민들이 공천 결과를 존중하고 지지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 공천은 얼마나 성공했을까.
준비해왔던 시스템대로 공천이 진행되자 민주당에서 파열음이 터져나왔다. 국회 의정 활동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용진 의원이 하위평가를 받았다고 공개하면서다. 박 의원의 하위평가 소식은 시스템의 정상 작동을 의심케 했다. 뒤이어 의원들이 이례적으로 하위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자신 있게 커밍아웃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이들이 끝까지 의심을 놓지 못했던 것은 비명(비 이재명)이기에 공천을 받지 못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다른 목소리에 대한 존중이나 의정활동에 대한 폭넓은 이해 대신 얼마나 강성 목소리를 냈는지에 따라 의정 활동이 평가됐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역의원들이 대거 탈락한 경선 결과 발표 다음 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민주당은 당원의 당이고 국민이 당의 주인이란 사실을 경선을 통해서 증명했다"며 시스템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뒤늦게 시스템 공천을 시작한 국민의힘은 순조롭게 공천을 진행한 듯했다. 현역의원 상당수가 공천되면서 감동은 없었지만, 조용한 공천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갈수록 사정이 나빠졌다. 교체 대상이라던 중진의원들은 시스템 공천의 억압에도 번번이 살아났다. 국민의힘이 공천 잡음이 적었던 것은 시스템의 승리라기보다는 공관위 조정 능력의 승리였다. 지역구 재배치 등으로 사실상 컷오프도 거의 없었다. 장동혁 국민의힘 사무총장이 "기계적으로, 계산기로 공천을 할 것 같으면 공관위는 필요 없다"고 언급한 게 화제가 된 것도 이 탓이다.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면 '재배치' 받을 자격도 없다며 벼랑으로 내몰렸다.
두어 달의 시스템 공천이 지난 뒤 경외의 대상이 되어야 할 ‘시스템’은 빛이 바랬다. 시스템은 교란당할 수도 있고, 왜곡될 수도 있으며, 멈추어 설 수 있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혁신 능력을 보였는지, 쇄신이라는 방향이 실현이라도 됐는지 의문을 갖게 했다. 대신 시스템 공천의 외침 속에서 잃어버린 것이 있다.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였다.
17~21대까지 내리 5선을 한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당내 후보 경선에도 붙이지 않겠다는 이른바 컷오프 결정을 받은 며칠 뒤 당의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그는 "공천에서 저를 배제하는 결정을 했다. 납득할만한 설명도, 정중한 요청도 없었다. 지난 20년간 헌신하며 당의 승리를 지켜냈던 결과가 이렇듯 허망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고통스러운 심경을 밝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죽을힘을 다해 달리겠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런 언질 없이 브리핑을 통해 컷오프 소식을 접하는 식으로, ‘끝’을 통보받는 말로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도 공천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언젠가 공천을 시스템 대신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에 넘기겠다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시스템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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