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태평양 오가는 해외법인장에 속타는 협력사

최일권 2024. 3.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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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협회에선 최근 국내 한 반도체장비업체 최고경영자(CEO)와 윤진식 신임 회장의 만남이 적잖은 화제가 됐다.

이 회사 대표는 최근 열린 지역별 간담회에 지난달 말 취임 후 처음 참석한 윤 회장을 만났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미국에 가야 하니 비자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호소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지형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선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가 필수인데, 수년째 해결이 안 되자 상견례 성격이 강한 첫 만남에서 '민원 돌직구'를 던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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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협회에선 최근 국내 한 반도체장비업체 최고경영자(CEO)와 윤진식 신임 회장의 만남이 적잖은 화제가 됐다. 이 회사 대표는 최근 열린 지역별 간담회에 지난달 말 취임 후 처음 참석한 윤 회장을 만났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미국에 가야 하니 비자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호소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지형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선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가 필수인데, 수년째 해결이 안 되자 상견례 성격이 강한 첫 만남에서 ‘민원 돌직구’를 던진 셈이다. 협회 내에선 "얼마나 간절하면 첫인사도 없이 그랬겠냐"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 회사 CEO는 전 세계적으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반도체 장비 업체를 이끌고 있다. 그는 통화에서 왜 그랬는지를 설명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미국 새너제이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마이크론 같은 메모리반도체 고객사들과의 접점을 넓히고 실리콘밸리 신규 고객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곧바로 난관에 부닥쳤다. 제품을 팔거나 기술지원할 전문직은커녕 현지법인을 이끌 법인장이 비자 문제에 발목 잡혀 제대로 업무를 보지 못한 것이다. 외국인 전문직 비자인 ‘H-IB’를 받아야 하는데, 미국 정부가 "인력이 필요하면 투자기업이 현지 채용해 교육하라"며 발급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새너제이 법인 사무실에는 현지에서 채용한 서너 명의 직원들만 지킬 뿐, 미국서 활발히 뛰어야 할 법인장은 여행비자로 태평양을 오가는 상황이 됐다. 그는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우리 기업의 미국 전문직 비자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기업들의 요구는 최근 들어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미국이 제조업 부활을 내세우며 첨단공장 투자 유치에 나서자 우리 기업 진출도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지난해까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화학, 한화큐셀, 한국타이어 등 주요 대기업의 투자액은 418억달러(약 55조원)에 달했다. 협력사들까지 포함하면 투자 규모는 더욱 크다.

공장 가동에서 중견 협력사들의 역할은 필수다. 기술지원으로 공정을 안정화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납품 이후 AS까지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력 비자 문제는 온전히 중견 협력사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됐다. 장비업체 CEO는 "현지 업력이 없으니 주재원 비자(L1)는 꿈도 못 꾸고 H-1B가 있어야 안정적인 영업활동을 할 수 있는데,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최근 우리나라를 찾은 세라 허커비 샌더스 아칸소 주지사를 만나 비자 문제 협조를 당부했다. 샌더스 주지사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역임했다. 주지사에게 비자 문제를 언급한 건 미 대선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것이다. 윤 회장은 "주지사를 통해 당뿐 아니라 상·하원에 전파되면 결국 미 의회 내 공감대 형성에 기여하지 않겠냐"라고 했다.

전파를 통한 공감대 형성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진 미지수다. 미 의회에는 한국 전문직 종사자에게 취업비자를 발급하는 내용의 한국동반자법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10년 이상 발의와 폐기가 수차례 반복돼 왔다. 더군다나 법안에 찬성하는 의원 숫자가 갈수록 줄어든다고 한다. 미국에선 일자리를, 국내에선 두뇌 유출을 우려해 양국 당국이 소극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투자한 기업들이 제대로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한 골든타임은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

최일권 산업IT부장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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