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Epi-Life]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음식을 먹는 일에 대해
김두용 2024. 3. 14. 07:00
원래 인간은 음식 먹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기 싫어합니다. 먹방이 대세인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할 것입니다. 제 말대로 해보십시오. 밖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하다가는 싸움이 날 수가 있으니까 집안에서 식구를 상대로 하시는 게 좋습니다.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식구를 빤히 쳐다보십시오. 아무 말 말고 1분만 지켜보십시오. 당장에 “왜 그래?” 하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좀더 지나면 짜증을 내며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밥 먹는데 왜 빤히 쳐다보고 그래.”
밥 먹는데 보는 거 아닙니다. 이건 전지구적인 식사 예절입니다. 그러니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음식을 먹는 일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영상이라는 매체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말이지요.
2024년 현재 우리 모두의 손에는 휴대폰이라고 불리는 고화질 동영상 촬영 겸용 카메라가 들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음식 먹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은 잘하지 않습니다. SNS에 ‘음식 영상’을 올리지 ‘음식 먹는 모습 영상’을 올리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음식 먹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은 대체로 직업적 의도에 따라 연출되는 것입니다. 맛칼럼니스트인 저 역시 음식에 대한 설명의 한 방법으로 음식 먹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음식 먹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 중에 가장 핫한 것이 유튜브 먹방입니다. 유튜브 먹방은 음식 먹는 사람을 카메라 바로 앞에 앉혀두고 찍습니다. 어떤 먹방은 눈 위로는 화면에 안 보입니다. 음식과 입과 손만 보입니다. 입안에서 음식물 씹히는 소리를 증폭시켜서 영상 위에 흐르게 합니다.
유튜브 먹방은, 맛칼럼니스트라는 직업 때문에 보기는 하지만, 저는 아직 적응을 못 했습니다. 보고 나면 오히려 식욕이 떨어집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먹어내는 유튜버를 보고 있자면 온갖 상념으로 제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유튜버의 건강 걱정이 제일 큽니다.
먹방 유튜버는 직업입니다. 그들은 평소에도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지는 않을 것입니다. 카메라 앞에서 맛있게 많이 먹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로 먹고사는 것이지요.
먹는 양이 적다뿐이지 제가 하는 일도 먹방 유튜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평소에 음식을 먹을 때에, 그러니까 카메라 없이 음식을 먹을 때에, 음식의 맛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재료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조리를 하는 게 적절하다는 둥의 말도 하지 않습니다. 저의 먹방 역시 먹고살려고 찍는 먹방입니다.
음식 먹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려고 애쓰는 직업인 중에 정치인도 있습니다. 이들의 먹방은 많이 먹는 먹방도 아니고, 음식에 대해 설명하는 먹방도 아닙니다. 유명인 사생활 공개 영상의 먹방도 아니고, SNS에 올려지는 과시용 먹방도 아닙니다.
정치인의 먹방은 대체로 재래시장 노점에서 찍습니다. 메뉴는 떡볶이·순대·오뎅(여기서 어묵이라 하면 맛이 안 납니다. 그냥 오뎅이라 합시다) 등을 먹습니다. 가끔은 식당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국밥과 칼국수 등을 먹습니다.
정치인도 사람인지라 평소에 떡볶이·순대·오뎅 등을 먹기도 하겠지만 대놓고 카메라 앞에서 먹는 음식으로 이 메뉴들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입니다. “여러분, 저는 서민 편입니다. 이렇게 서민적인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거 보세요.”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그렇게라도 서민의 삶을 느껴보면 국회에 가서 서민을 눈곱만큼이라도 조금 더 생각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는 않습니다.
정치인의 먹방이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불편한 것이 왕조 시대의 민정 시찰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는 것입니다. ‘높은 계급의 정치인’이 ‘낮은 계급의 시민’이 어떻게 먹고사나 둘러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유력 정치인 뒤로 보좌하는 사람들이 병풍처럼 서니까 더욱 그러합니다. 민주공화국의 정치인이라면 선출직 국가공무원 후보로서 국민께 어떤 먹방을 보여야 할 것인지 고민을 좀 하고 시장에 나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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