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제 통 안에서 '72년의 기적'…소아마비 폴, 세상 떠났다
소아마비에 걸린 뒤 70년 넘게 철제 인공호흡 장치(iron lung)에서 살아온 폴 알렉산더가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철제 폐 속에서 지내면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됐으며, 입에 펜을 물고 8년에 걸쳐 자서전을 써내며 빛나는 삶을 살았다.
13일(현지시간) NBC 등에 따르면 폴 알렉산더의 가족은 고펀드미(GoFundMe)의 알렉산더 치료비 모금 페이지를 통해 비보를 알렸다. 모금 활동가 크리스토퍼 울머는 “그의 이야기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널리 퍼졌다”며 “폴은 놀라운 롤모델이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알렉산더는 1952년, 6살의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려 전신이 마비됐다. 이 해는 미국에서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유행하며 6만건이 넘는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한 해였다. 호흡이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악화하자 알렉산더는 인공호흡기의 일종인 ‘철제 폐(iron lung)’에 들어가 치료받게 됐다. 이 기계는 목 아래 신체를 철제 용기에 넣고 음압을 간헐적으로 걸어 폐를 부풀게 하는 인공호흡 장치다.
상태가 악화돼 철제 폐 밖에서는 자가 호흡을 할 수 없게 됐지만, 소년 시절 그는 학업에 대한 열정을 결코 놓지 않았다. 입에 붓이나 펜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으며, 철제 폐 밖에 있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는 훈련을 하면서 끝내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4~6시간을 철제 폐 밖에서 보낼 수 있게 된 그는 1978년 텍사스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1984년 법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변호사 시험까지 합격했다. 알렉산더는 마비된 몸을 지탱하는 특수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하고, 사무실이나 집에서는 철 폐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변호사 활동을 이어갔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호흡이 힘들어진 그는 다시 철제 폐로 돌아왔다. 그는 입에 도구를 물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8년에 걸쳐 자서전을 출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최근에는 틱톡 계정을 만들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는 틱톡에서 “나는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은 목표와 꿈이 있다”며 “소아마비와 이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수백만 명의 어린이에 대해 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에도 불굴의 삶을 산 알렉산더는 생의 끝자락에 또다른 바이러스에 직면했다. 그는 지난달 말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으며, 퇴원 후에도 먹고 마시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알렉산더는 지난 11일 댈러스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알렉산더의 오랜 친구 대니얼 스핑크스는 “그는 웃는 것을 좋아했다”며 “이 세상의 밝은 별 중 하나였다”고 AP에 말했다. 크리스토퍼 울머는 “폴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리는 일을 정말 좋아했다”며 “그는 주변을 전염시킬 정도로 활기차고 즐거운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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