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플힙템]3000억대 명품시계 주무른 '이 남자'… 가품 딱걸렸어

이민지 2024. 3. 14.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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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매일 10~20개 명품시계 감정
감정사, 학원이나 자격증 없어 독학해야
교묘해진 짝퉁, 명품거래 늘수록 더 많아져

“20년, 7만3000개. 3650억원.”

20여년간 중고 명품 플랫폼 구구스에서 명품 시계만 감정해 온 노영옥 센터장을 설명하는 숫자들이다. 그는 하루도 빠짐 없이 출근해 매일 10~20여개의 명품시계를 감정해왔다. 추산하면 그가 만져본 시계만 7만3000여개가 넘는다. 명품시계 한개 가격이 5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단순 계산으로 3650억원 어치의 시계가 노 센터장의 손을 거쳐 간 셈이다.

노영욱 구구스 시계 센터장이 지난 6일 진행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구구스]

최근 서울 강남구 구구스 본사에서 아시아경제와 만난 노 센터장은 "예전에 기술 하나는 있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해서 배운 것이 시계 일"이라며 "처음엔 수리로 시작했는데, 수십 년 동안 시계만 보고 살다보니 전문적인 감정사로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노 센터장은 시계를 들여다볼 시간인데 밝은 곳에서 앉아있는 자신이 어색한 듯 긴장한 얼굴이었다.

노 센터장이 시계 감정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구구스에 입사하고부터다. 종로 고급시계점에서 오랫동안 시계 수리를 맡았던 노 센터장은 2005년 마흔아홉의 나이에 시계 수리 사원으로 구구스에 들어갔다. 명품 시계 진품과 가품을 구별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는데,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선 중고 명품을 취급하는 회사에 입사해야한다고 여겼다. 그는 "시계 감정일은 전문적인 학원이 없어 배울 수 있는 길은 독학뿐" 이라며 "공식적인 자격증도 없기 때문에 많은 제품을 보고 만져보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보석의 경우 감정을 할 수 있는 전자식 기기들이 있지만, 시계 감정 업무에 사용되는 기기는 현미경 한 대뿐이다.

명품 소비자가 늘면서 구구스에 입고되는 중고명품도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구구스 시계 카테고리 거래액은 38.1%나 신장했다. 명품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가품은 더 교묘해지는 추세다. 가품이 가장 많은 브랜드는 단연 '롤렉스'다. 이 중 '드림 워치(차고 싶은 시계)'로 꼽히는 '서브마리너'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초창기 롤렉스 가품은 스틸을 사용해 외관만 봐도 확연히 차이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품과 동일하게 세라믹으로 베젤(시계 테두리)을 만들고 보증서도 제공하고 있다. 섬세한 감정이 필수적인 이유다.

노 센터장은 "외관은 따라 할 수 있어도 무브먼트(시계 동력)를 베낄 수는 없기 때문에 기계 속까지 들여다보고 있다"며 "'파텍필립', '바셰론 콘스탄틴' 등 초고가 브랜드 제품들도 정교하게 나오고 있지만, 감정사한테는 다 티가 난다"고 말했다. 구구스에 따르면 입고 제품 100개 중 1~2개는 가품으로 판명된다.

일부 소비자는 중고 명품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개인적으로 중고거래를 통해 명품 시계를 구매한다.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해서다. 가품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우선 보증서를 꼼꼼히 체크하는 것이다. 보증서가 없다면 마크, 인쇄체 번짐의 유무, 크라운(3시 방향 버튼)의 위치를 살펴봐야 한다. 기계식 시계(오토매틱)의 경우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태엽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노 센터장은 "오랜 기간 오버홀(완전히 분해해 점검·수리하는 것)을 하지 않은 시계의 크라운을 감을 때 발생하는 소음과는 달리 짝퉁은 감기는 태엽 소리와 느낌이 매우 둔탁하다"고 설명했다. 중고 명품 플랫폼에서 구매를 시도한다면 제품 물량이 많아지는 가을을 노려보는 것이 좋다.

명품 시계는 잘 관리하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쿼츠(일반 건전지) 시계는 배터리에서 누액이 나올 때까지 방치하는 것이 최악이라고 한다. 제품 부식을 촉발해 사용하지 못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오토매틱 시계의 경우 오버홀은 5년마다 진행하는 것이 좋다. 와인더를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를 가장 느리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 센터장은 "자성(자석의 힘) 걱정을 많이 하는데 그보다도 속도를 빠르게 돌리면 태엽이 마모돼 오차가 심해진다"며 "자성은 냉장고나 TV, 가방 자석 등에 가까워질 때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설명했다. 표면을 깍아 윤기를 내는 작업인 폴리싱은 제품당 2~3회가 적당하다. 금의 무게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노 센터장은 내년이면 70세에 접어든다. 그는 후배 감정사들에게 최대한 많은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이 마지막으로 구구스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노 센터장은 "앞으로 짝퉁 이슈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감정사가 직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옆에서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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