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L 아니야?"…'파묘' 속 명당 이 호텔, 최민식과 남다른 인연 [GO로케]

백종현 2024. 3. 14.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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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에서 묫자리로 가는 산길 장면은 경남 대운산 자연휴양림, 강원도 배후령고개 등 전국 각지에서 나누어 촬영한 후 한 공간인 듯 연결해 완성했다. 사진 쇼박스

K-오컬트 영화 ‘파묘’가 전례 없는 흥행 기록을 쓰고 있다. 12일까지 829만 관객이 다녀갔다. 장르 영화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파묘’는 기본적으로 우리 땅과 민족정신에 관한 영화다. 민족혼을 흔드는 악귀, 일제의 잔재를 뿌리째 없애는 과정을 무덤을 파내는 의식에 빗대 그렸다. 악지(惡地)와 명당을 환히 꿰고 있는 풍수사(지관)가 주인공인지라, 공간을 살펴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범의 허리, 백두대간의 심장


'파묘' 속 묫자리는 세트에서 촬영한 뒤, 실제 백두대간의 산세를 합성해 완성했다. 사진은 설악산 부근 상공에서 본 백두대간의 설경. 중앙포토
강원도 어느 산머리, 백두대간의 심장부에 이른바 ‘험한 것’이 묻혀있다는 ‘파묘’의 설정은 퍽 의미심장하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예부터 우리네 민족정신과 정체성을 이해하는 상징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영화에도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대사가 복선으로 깔린다.

‘험한 것’이 묻힌 묫자리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짐작은 해볼 수 있다. 영화 속 묘비에 적힌 의문의 13자리 숫자는 강원도 고성의 향로봉(1286m)을 가리키는 좌표다. 향로봉은 실제로 백두대간의 허리로 자주 언급된다. 북으로는 금강산, 남으로는 설악산과 능선이 이어진다. 민통선 안쪽이지만, 2018년부터 걷기대회 행사에 한정해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물론 ‘악지 중에 악지’라든지, 험한 것이 묻혔다는 설정은 장재현 감독이 밝힌 대로 “영화적 상상력”이다.

금산 보석사의 은행나무. 1000년 이상을 산 거목으로 천연기념물로 등록돼 있다. '파묘' 속 거대한 나무를 모형으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참고한 장소 중 하나다. 김홍준 기자

묘지는 모두 가짜다. ‘대살굿’을 벌이고 묘를 파헤치는 대부분의 장면을 부산 기장도예촌 세트에서 촬영했다. 진짜도 있다. 하늘에서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굽어보는 장면이나, 묫자리로 가는 산길 등은 경남 대운산 자연휴양림, 강원도 배후령고개 등 전국 각지에서 촬영한 것을 하나로 연결해 완성했다.

음산한 분위기의 풍기던 고목나무도 실은 정교한 모형이다. 전국의 이름난 거목과 신목(神木)을 두루 참고해 제작했는데, 그중에는 천연기념물인 충남 금산 보석사의 은행나무(수령 약 1100년)도 있다. 보석사는 영화 속 ‘보국사’의 대웅전으로도 등장한다.

담양 경상마을의 신목.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다. 영화 '파묘'에서 무당 화림(김고은)의 회상 장면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사진 김재련씨 제공


무당 화림(김고은)의 회상 장면에 나오는 신령스러운 나무는 전남 담양 경상마을의 ‘당산나무’다. 수령 500년의 이 느티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신으로 여겨져 지금도 매년 정월 당산제를 올린단다. 경상마을 김재련(68) 이장은 “한국전쟁을 앞두고 나무가 통곡하듯이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고 귀띔했다. 무등산 자락을 한 바퀴 도는 ‘무돌길(51.8㎞)’ 6코스와 7코스의 경계에 경상마을이 틀어 앉아 있다.


풍수사가 점찍은 명당 호텔


호텔 '더 플라자'에서 본 서울시청과 세종로 일대. 도로변과 가까운 객실에서는 경복궁과 청와대 그리고 그 너머의 북악산까지 한눈에 내다볼 수 있다. 20층 2052호 객실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 “하, 이 호텔 자리가 좋네” "
주인공 김상덕(최민식)은 상위 1% 재벌가의 묫자리를 두루 맡아온 베테랑 풍수사다. “풍수는 종교이자 과학”이라고 믿는 그가 명당으로 추켜세운 호텔이 있다. 파묘를 요청한 재벌가 의뢰인이 머물던 숙소, ‘더 플라자’ 호텔이다. 서울시청 앞의 ‘더 플라자’는 세종로를 비롯해 경복궁과 청와대 그 너머의 북악산까지 한눈에 내다보는 장소다. 영화에는 경복궁을 가로막고 서 있던 조선총독부 청사(1995년 철거)의 환영을 객실에서 내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섬뜩한 공간으로 그려지지만, 풍수사의 극찬 덕분인지 개봉 뒤 “PPL이냐”는 우스갯소리도 따라다녔다.

더 플라자는 언론이 서울시청 앞 인파를 담을 때 가장 즐겨 찾는 장소기도 하다.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 촛불 집회 등을 상징하는 장면들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더 플라자 관계자는 “돈이 모이는 장소로 소문난 곳”이라면서 “기업 간 계약, 상견례 장소로 인기가 높아 풍수지리 테마의 패키지를 판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주연 배우 최민식과도 인연이 남다른데, 1999년 이곳(당시 서울프라자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더 플라자는 주요 언론이 서울시청 앞 인파를 담을 때 즐겨 찾는 장소기도 하다. 사진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시청 앞 시민들의 붉은 물결을 호텔에서 담은 모습이다. 중앙포토

극 초반 상덕(최민식)이 송림에서 값비싼 송이를 발견하는 장면은 부산 아홉산숲의 풍경이다. 금강송과 대나무로 빽빽한 숲을 이룬 이곳은 남평 문씨 가문이 400년에 걸쳐 가꾼 장소다. 2016년 개방한 뒤 명소로 거듭났고, 여러 영화‧드라마에도 등장했다. 8000원(어른 기준)의 입장료를 받는다. 숲 관계자는 “최민식 배우가 범을 쫓던 영화 ‘대호’도 이곳이 무대였다”고 말했다.

부산 기장군 아홉산숲의 금강송 군락. '파묘' 촬영지 중 하나다. 사진 아홉산숲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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