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배 전 대사 "북·러 밀착 계속될 것…고도의 외교력 필요한 때" [푸틴 집권 5기]
이석배(69·사진) 전 주러시아 대사는 33년 외교부 근무 경력 중 28년을 러시아와 동구권에서 보냈다. 2019년 5월 주러시아 대사로 부임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던 2022년 8월 퇴임했다. 이 전 대사에게 15~17일 치러지는 러시아 대선과 한·러 관계 전망에 대해 물었다. 그는 지난 8일 전화인터뷰에서 “지금이야말로 (한국에게) 고도의 외교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대선 정국, 어떻게 보나.
“푸틴이 당연히 대통령이 될 텐데 선거를 왜 하느냐는 시각도 있지만, 러시아는 ‘관리민주주의’ 국가여서 헌법 절차에 따른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내부 지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또 선거로 지방 정치 엘리트들과의 결속을 확인해야 한다. 전쟁이 3년째로 접어들었지만 정치 엘리트 간 결속이 단단해 보이고 상당수 국민은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듯하다. 서방 언론은 알렉세이 나발니 사망으로 푸틴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거라 봤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서방과의 대치가 계속될 거고 푸틴은 당선 이후 전쟁에 주력할 거다.”
-서방과 러시아 내 인식차가 크다.
“서방에선 푸틴을 ‘21세기 차르’라고 하지만, 러시아 국민이 볼 때는 꼭 그렇지는 않다. 러시아는 정교회에 기반한 메시아적인 메시지가 강한 나라이고, 서유럽과 미국을 도덕적으로 파탄 난 나라로 본다. 러시아는 강대국 의식이 강하다. 소련이 붕괴되자 미국은 러시아를 유럽·대서양 공동체에 합류시키려 했지만 러시아는 내일 당장 쪽박 차더라도 미국 밑에 있을 수 없는 나라다. 러시아를 서방의 시각으로만 보면 제대로 된 외교를 하기 힘들 거다.”
-러시아의 전시 경제 전망은.
“서방은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했을 때부터 고강도 제재에 들어갔고, 우크라 전쟁 이후 더욱 강화했다. 러시아가 오래 못 견딜 거라고 봤지만, 현재 러시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높고 거의 완전 고용체제를 이뤘다. 러시아 해외 자산 약 3000억 달러(390조원) 규모가 동결돼 있지만 경제가 힘들지는 않다. 앞으로도 수년간은 전시 경제로 운영하지 않을까 싶다.”
-미·러, 중·러 관계는.
“전쟁이 언제 종결될지 몰라도 미국과의 대치, 미국의 러시아 제재는 계속될 거다. 제재가 해제되려면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내놓아야 하는데 그럴 리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아태 지역에서 새로운 군사, 경제안보 블록을 구축하고 있다고 본다. 기존 다자 협력 체제를 오커스(AUKUS, 미·영·호주 외교안보 3자 협의체)나 쿼드 플러스(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쿼드의 확장)로 대체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동서 냉전식 대치가 지속될 거다.
러시아와 중국과의 공조는 계속될 거다. 공통으로 견제해야 하는 미국이 있기 때문이다. 동해에서 중·러 합동 군사 훈련을 계속할 듯하다. 러시아의 전통적인 세력권인 중앙아시아와 북코카서스에선 관세 동맹, 군사·안보 협력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통해 러시아가 주도적 역할을 계속할 거다.”
-북·러 관계는 어떻게 될까.
“러시아와 북한 밀착은 계속될 거다. 북한에 군사기술을 이전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인데, 당장 핵 기술이나 미사일 기술을 이전하진 않을 거라 본다. 러시아가 미국과 동등한 지위에서 협상하고 있는 게 군축 분야이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인데 스스로 그런 지위를 포기할까. 그러기엔 러시아가 잃는 게 많다.”
-한국과의 관계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만 해도 한·러 우호관계는 진화했고, 러시아가 북한보다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로서는 러시아와 관계가 이렇게 악화되는 걸 방기해선 안 된다. 외교가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전쟁 이후 한국 외교가 고난도 방정식으로 바뀌었다. 한미 동맹 강화와 동시에 러시아, 중국 관계를 관리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고도의 외교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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