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구 전 대사 "러도 한국 중요성 알아…원칙 지키며 공간 찾아야" [푸틴 집권 5기]

임주리 2024. 3. 1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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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타스=연합뉴스


이양구(65·사진)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는 36년간 외교 현장에서 뛰며 주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에서 경력을 쌓아온 유라시아 전문가다. 2016년 2월 주우크라이나 대사로 부임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취임한 해인 2019년 12월 퇴임했다. 이 전 대사는 러시아 대선 정국과 한·러 관계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지난 12일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가 원칙과 가치를 지키며 러시아와의 외교 공간을 찾는 일이 중요한 때”라고 말했다.

-러시아 대선 정국을 어떻게 보나.
“이변은 없을 것이다. ‘푸틴의 최대 정적’이라 불렸던 반체제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옥중 의문사 역시 큰 영향은 끼치지 못할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대도시 외에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적고, 참여도도 낮다. 나발니 죽음에 대한 분노와 반정부 움직임이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다만 잠재적인 불안 요소가 커졌기에, 장기적으로는 분명한 영향이 있을 거다.”

-푸틴 집권 4기와 집권 5기는 어떻게 다를까.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는 서방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는 신뢰를 완전히 잃었기 때문에 5기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외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 핵심은 ‘위기관리’가 될 것이다. 전쟁을 지속하며 경제 제재도 풀어야 하고, 서방과 신뢰도 다시 구축해야 한다. 푸틴이 재집권은 하겠지만 과연 앞으로 6년을 끌고 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처럼 후계자를 정하고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푸틴에게 최선의 시나리오일 수 있다.”

이양구 전 주우크라이나대사. 김경록 기자

-러시아 경제는 어떻게 전망하나.
“현재는 전시 경제 체제이니 수치는 좋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경제 성장의 모티브가 없다. 서방 기업들은 모두 철수했고, 경제 제재는 1만여 건이 넘는데 제조업 기반과 첨단기술이 없다. 중국, 인도, 튀르키예 등과의 협력으로 현상 유지는 할 수 있겠지만 최소 10년간은 경제 발전에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유화 자산을 민영화하는 등의 방법을 쓸 수는 있겠지만, 기득권층의 반발이 엄청날 거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은.
“지금의 전선이 군사적 균형점이라고 봐야 한다. 협상과 휴전이 어떻게 이뤄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결국 ‘한반도 모델’로 가지 않을까. 전쟁이 더욱 길어지면 모두 지쳐 자칫 중국만 키우게 될 수 있다. 푸틴의 변고나 러시아 내 쿠데타 등 이변이 없고서야 극적 변화의 가능성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진을 배경으로 발언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미·러, 중·러 관계는.
“중국과는 ‘적과의 동침’이다. 지금은 미국과 유럽 등 ‘외부의 적’이 있으니 밀착하고 있지만, 양국 사이에는 국경 분쟁 등 서방-러시아보다 더 큰 갈등이 내재해 있다. 인구·경제력에서 앞서가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러시아 내부에서는 ‘중국화’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상황이다. 앞으로 러시아 최고의 도전은 중국이 될 것이다. 미·러 관계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임에 성공한다면 획기적인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자신의 재임 기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대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지원을 끊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러 연대는 어떻게 전망하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한 자연스럽게 강화되겠지만, 전쟁이 마무리되면 약화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 입장에서 한국과 북한 중 택하라면, 한국이 중요해서다. 한국과 파트너십을 통해 경제 발전을 하는 게 궁극적으로 중국 견제 카드도 된다. 일단 우리는 한미일 공조를 강화해야 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까지 시야를 넓혀 협력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의 관계는.
“러시아는 한국의 중요성을 무척 잘 안다. 위협적이지 않으면서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국가라고 믿기 때문에, 우리와의 관계를 열고 생각할 거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등 원칙과 가치를 지키면서 공간을 찾아야 한다. 농업 분야를 비롯해 협력할 수 있는 비제재 부문이 꽤 많다. 의미 있는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러시아를 적대하는 게 아니라 권위주의와 국제법 위반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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