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차르’ 노리는 푸틴, 김정은에 ‘핵보유국 인정’ 선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선을 이틀 앞둔 13일(현지시간)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로시아1·리아노보스티 등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자체 ‘핵우산’을 가지고 있다”며 “그들은 우리에게 (핵과 관련해) 어떤 것도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언급이 핵 비확산 체제와 관련해 어떤 인식을 바탕으로 나온 것인지는 명확지 않지만,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은 처음이다.
‘핵우산’은 핵을 보유하지 않은 나라가 핵 보유 동맹국의 핵전력을 통해 자국의 안전보장을 도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푸틴은 ‘자체적으로’라는 표현을 덧붙였다. 이는 북한이 핵을 이미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 ‘핵우산’을 요청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현재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합법적으로 핵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국뿐이다. 이외에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NPT 체제 밖에서 핵을 개발해 ‘사실상(de facto)의 핵보유국’이라고 불리는데, 국제사회가 우여곡절 끝에 이들 국가의 핵 보유를 묵인하고 있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협상이 결렬된 후 앞으론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북핵을 용인하는 전제하에 핵 군축 협상에만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가정보국(DNI)도 지난 11일 공개한 연례보고서에서 “김정은은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러시아와 군사적 밀착 관계를 활용하려고 희망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푸틴의 이날 발언은 김 위원장의 숙원을 지지해 준 셈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푸틴의 발언은 핵 비확산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위협적이며 도발적인 언사”라며 “국제사회가 절대 용인해선 안 되는 발언”이라고 말했다.
다만 푸틴 특유의 모호한 레토릭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적극 지원해 온 북한에 반대급부를 제공한 것일 수 있는 만큼 향후 움직임을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푸틴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기는 부담스러운 만큼 대신 핵우산이라는 표현으로 NPT 체제를 시험해본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북한 관련 발언에서 볼 수 있듯 30년 집권 시대를 열겠다는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제 외교안보 질서를 흔들고 있다. 2000년 첫 당선 이후 대통령 네 차례, 총리를 한 차례 역임한 푸틴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 승리할 경우 임기가 2030년까지로, 소련 시절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의 29년 독재(1924~53년)보다 통치 기간이 길어진다.
전문가들은 푸틴이 구축한 체제를 ‘푸틴주의(Putinism)’라고 부르는데, 이는 민족주의, 러시아정교회, 보수주의, 국가자본주의, 미디어 장악 등을 통해 2000년 첫 대선에서 내세운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부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안드레이 콜레스니코브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센터 선임연구원은 지난 7일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이번 대선은 후기 푸틴주의가 성숙 단계에 접어든 것을 의미한다”며 “푸틴은 2000년 스탈린주의 국가를 부활시켰는데 차이가 있다면 당시엔 반근대적 권위주의를 일부 숨겼지만 이젠 완전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백일현·정영교·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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