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교적 망신 초래한 이종섭 호주 대사의 무리한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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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특검법 발의에 정치 쟁점으로 증폭돼
국익과 정상적 외교 위해 이 대사 거취 숙고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어제 이종섭 주호주 대사의 출국금지 해제 논란과 관련한 고발 사건을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담당하는 수사 4부에 배당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발생한 채 상병 사망사건을 군 수사 당국이 경찰에 이관하는 과정에서 당시 국방장관이던 이 대사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수사중이다. 이에 더해 시민단체인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이 지난 11일 윤석열 대통령 등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및 범인 도피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한 데 따른 조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이종섭 특검법’을 당론으로 정해 발의한 뒤 맹공을 이어 가며 호주 대사 임명 논란은 정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지난 12일 현지에서 업무를 시작한 이 대사 입장에선 부담이 더 늘어난 셈이다.
이 대사의 부임 논란은 정부가 자초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법부무가 이 대사를 출국금지 시킨 사실을 대통령실과 외교부에 알리지 않아 엇박자를 보였고, 곳곳에서 무리수가 읽히기 때문이다. 국방장관 출신이 형사사건으로 수사를 받으며 출국금지를 당했는데, 검증 과정에서 전혀 걸러지지 않으며 정부 인사 검증 시스템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윤석열 정부는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의 낙마 사태를 비롯해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재산신고 누락 등 비리 의혹,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등의 인사 검증에 실패하며 ‘검증받아야 할 검증 시스템’이란 비판을 받아 왔다.
한덕수 총리가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논란과 관련해 “(수사)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했지만 공수처에선 수사의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격수사로는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고, 이 대사가 잠깐 귀국하는 시간을 활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이 대사의 조사 다음 날 곧바로 출국금지를 해제하고 약식으로 대사 교육을 한 뒤 신임장 사본을 들고 가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여당의 공동 선대위원장 중 한 명인 나경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후보가 “임명 절차에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고 지적한 문제점을 정부는 성찰해야 한다.
무엇보다 호주 국영 ABC방송이 한국 대사의 부임 소식을 전하며 “범죄 수사에 연루된 전임 국방장관이 대사직 수행을 위해 호주에 도착했다”고 보도하며 이번 논란은 호주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됐다. 국제적 망신이다. 정부의 설명대로 호주가 안보와 방산 협력에 중요했다면 이런 상황은 사전에 피했어야 했다. 호주 외교부는 이 대사를 환영한다는 의례적 입장이지만 수사받으러 국내에 왔다갔다 해야 하는 대사라면 그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집권 후반을 향해 가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이나 국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군 출신인 이 대사나 용산이 그의 거취를 숙고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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