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문화의 창] 다시 보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연속유산’

2024. 3. 14. 00: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이집트 아스완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아부심벨 신전을 여러 나라가 힘을 합쳐 이전시키면서 시작됐다. 문화유산은 인류 공동의 자산이라는 인식이 일어나 1972년 제17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문화유산 14곳, 자연유산 2곳이 등재되어 있고, 여기에 북한의 평양 고구려고분군과 개성 역사유적지구 2곳을 포함하면 18곳으로 세계 18위가 된다.

유네스코 유산에는 ‘세계기록유산’이 따로 있는데, 우리나라는 훈민정음 해례본 등 18건을 보유하고 있어 아시아에서 1위, 세계 5위에 올라 있다. 또 2006년부터 시행된 ‘인류무형문화유산’에서 우리나라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등 22건을 보유하여 세계 4위이다.

「 국내 세계유산 상당수는 연속유산
조선왕릉·고인돌·산사·서원·누각
지역이 달라도 성격은 같은 유산들
전국에 퍼져있는 누각도 등재 기대

영남루 전경. [사진 밀양시]
영남루 전경. [사진 밀양시]

세계(문화)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경을 초월할 만큼 독보적이고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등재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유산을 세계사적 시각에서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중 하나가 ‘연속유산’이라는 개념이다. 비록 지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통일된 성격을 보여주는 일괄 유산으로 조선왕릉이 대표적인 예이다. 산사, 서원, 고인돌, 그리고 작년 9월에 등재된 ‘7개 지역의 가야 고분’도 연속유산이다.

유네스코 산하 심의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가야 고분군을 평가하여 “1세기부터 6세기 사이 한반도 남부에 세력을 형성했던 가야가 주변국과 공존하며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체계를 유지해온 점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연속유산”이라고 하였다.

2018년에 등재된 산사(山寺)는 기도처와 수도처가 함께 공존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사찰형식이다. 인도, 티베트, 중국, 일본 등에는 우리나라 산사처럼 자연환경과 어울리는 절집이 없다. 그래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명칭은 ‘산사(Sansa)-한국의 산지 승원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등재를 추진 중인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14곳을 올려놓았는데, 그중 연속유산으로는 ‘중부내륙 산성군’이 있다. 보은 삼년산성, 단양 온달산성, 충주 장미산성, 청주 상당산성, 제천 덕주산성, 괴산 미륵산성 등 삼국시대 산성들은 유럽 중세도시의 성, 일본 다이묘(大名)의 성, 중국의 도시성곽 등과는 달리 한반도의 독특한 자연지형에 의지하여 계곡을 낀 포곡식이거나 산을 감싸 안은 테뫼식이다.

그리고 아직 잠정목록에 들어 있지 않지만, 전국에 퍼져 있는 누정(樓亭) 또한 우리나라 자연환경이 낳은 아름다운 연속유산이다. 삼천리 방방곡곡 풍광 좋은 자리, 쉬어갈 만한 곳에는 반드시 누정이 있다. 그 이름은 루(樓), 대(臺), 정(亭), 헌(軒) 등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 관아에서 지은 누각은 그 고을의 상징적 랜드마크로 규모도 크고 자리 앉음새가 탁월하다.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등은 일찍이 조선의 3대 누각으로 꼽혀 왔고, 이외에도 남원 광한루, 삼척 죽서루, 안주 백상루, 청풍 한벽루 등이 이름 높다. 그런 누정에는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들어 있고, 수많은 시인이 읊은 시가 있다. 또 모든 누각에는 거의 반드시 기문(記文)이 있는데, 대개는 당대 명문장가의 글이다. 한 예로 태종 때 문신인 하륜은 청풍의 한벽루 기문을 쓰면서 “누각을 관리하는 일은 한 고을 수령된 자의 마지막 일감에 지나지 않지만, 그 누각이 관리되는 것만 보아도 고을의 행정 실태를 미루어 알 수 있으니 어찌 작은 일이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이 누정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일어나면서 작년 12월, 삼척 죽서루와 밀양 영남루가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다. 마침 지난달 밀양에 문상 갈 일이 있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영남루에 들러 보니, 밀양천이 맴돌아가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그 늠름한 자태는 과연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로 국보답다는 감동이 일어났다. 이제 이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려면 유적의 보존실태에 대해 심사받을 준비를 하여야 한다. 주변 환경을 재정비하여야 하고 건축, 문학, 역사 등의 학술대회를 열어 인문적 가치를 쌓아야 한다.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하면 아마도 10년 후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