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공부 vs 아부

김현기 2024. 3. 14. 00:3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나폴레옹도 링컨도 아부 좋아해
하지만 공부보다 우선시는 곤란
'아부 공천'에 누가 희망을 보겠나

김현기 논설위원

#1 나폴레옹은 "아부란 무능력자나 하는 짓"이라고 했다. 아부꾼은 결국 남의 중상모략까지 하게 된다고도 했다. 유럽 대륙 정복 직후 나폴레옹은 참모들에게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내게 아부하면 반드시 불이익을 받을 것이오. 직언만 해 시오." 얼마 후 한 참모가 나폴레옹에게 다가와 말했다. "폐하, 폐하께서 아부하지 말라고 하신 지난번 그 강력한 말씀, 너무나 멋졌습니다. 모두 감동했습니다." 나폴레옹의 반응은 이랬다고 한다. "정말? 정말로 그랬어?"

미국인들의 영원한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그는 1865년 워싱턴DC에서 흑인 참정권 보장에 분노한 남부 지지자에 의해 피살당했다. 그때 링컨의 주머니 안에서 낡은 신문조각이 하나 나왔다. 거기엔 빨간 밑줄이 그어진 부분이 있었다. 링컨을 오글거릴 정도로 찬양한, 아부성 기사였다.

지난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가운데)이 지난 21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회의에 나란히 앉아 있다. EPA


트럼프 1기 각료였던 마이크 폼페이오는 트럼프의 72번째 생일날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조국을 대표해 당신의 리더십 아래 복무하고 있다는 사실에 황송할 뿐입니다." 캔자스 출신의 존재감 없던 하원의원 폼페이오가 트럼프 정부에서 CIA 국장, 국무장관 등 꽃길을 걸은 이유는 뭘까.
미국의 사상가 랠프 에머슨은 이렇게 말했다. "아부에 현혹당하지 않는 사람은 있겠지만, 아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동서고금 변하지 않는 진리일 게다.

『리더라면 정조처럼』(김준혁 저)

#2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드라마틱한 아부를 했던 후보들이 공천됐다. 비명 박광온 전 원내대표를 누른 김준혁 한신대 교수. 그는 3년 전 유튜브 방송에서 이 대표 생가를 방문한 사실을 공개하며 "(이 대표가) 태어난 자리 앞에 200년이 넘은 큰 소나무가 있는데, 그 소나무의 기운이 이 후보(이 대표)에게 간 것 아닌가"라고 했다.

또 『이재명에게 보내는 정조의 편지』란 책을 출간하며 정조가 이 대표의 대선 출마선언문을 보고 놀라움과 기쁨,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는 낯뜨거운 상상의 글까지 등장시켰다. 7개 범죄 10개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는 피의자가 평생을 조신하고 검소하게 산 정조와 동격이라니 그저 정조께 죄송스러울 뿐이다.

지난해 '외모 이상형 월드컵'이란 유튜브 코너에서 이 대표를 가수 차은우보다 이상형이라고 답한 안귀령 부대변인은 아예 생판 연고도 없는, 자신이 선거운동하고 있는 곳이 무슨 동네인지도 모르는 서울 도봉갑에 단수 공천됐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피아노로 연주하며 "달빛 소나타가 문재인 대통령의 성정을 닮았다"고 했던 아부의 원조 격 박경미 전 의원은 이번에도 서울 강남병에 단수공천을 받았다. 철학자 몽테뉴는 "로마시대 정치적 동요가 제일 심각할 때 수사(修辭)학이 최고의 정점에 올랐다"고 했다. 그렇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아부가 활개를 친다. 그렇다 해도 소나무·정조·베토벤까지 아부로 소환되는 건 웃프다.

#3 반면에 정작 찬양받아야 할 '공부'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얼마 전 법률소비자연맹이 12개 항목으로 평가한 21대 국회 4년간 의정활동 결과에서 민주당 상위 10위 내 의원 중 이번에 공천을 받은 의원은 50%밖에 안 된다. 대부분이 친명 후보와의 치열한 경선으로 내몰려 분루를 삼켰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투자자 보호에 나섰던 경기 고양정의 이용우 의원. 그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시 개딸들에게 좌표를 찍히고 '수박 당도 4'에 오르더니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여성 척수장애인 국내 최초 재활학 박사로 21대 민주당 영입 인재 1호였던 최혜영 의원. 의료 사각지대의 비대면 진료 규제 완화를 추진하며 맹활약했지만 결국 친명에게 밀렸다. 박용진·박광온 의원 등 누가 봐도 의정활동, 즉 공부를 열심히 한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022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자 광주 합동연설회에서 이재명(왼쪽 사진)·박용진(오른쪽 사진) 당 대표 후보가 정견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아부가 아무리 달콤하고, 나폴레옹과 링컨도 물리치지 못했던 것이라 해도 공부의 설 자리, 순서까지 빼앗는 건 씁쓸하다. 공부가 감점이 되고 아부가 가산점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 미래 세대가 무슨 희망을 찾겠는가.

김현기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