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눈은 세계를 보라”던 김정은, 베트남서 한국의 힘 봤을까

정용수 2024. 3. 1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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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지난달 29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을 찾았다. 중앙일보와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이사장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2회 한-베트남 미래대화’에 참석한 국내 대학생들의 현장 학습 프로그램중 하나였다. 북한과 미국은 5년 전인 2019년 2월 27일부터 28일까지 이 호텔 별관 1층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메트로폴 호텔은 정상회담 당시 첫날 두 정상이 만찬을 하고, 둘째날 오전엔 담판을 벌였던 장소다.

이곳에서 정상회담이 열렸다는 사실을 표시하기 위해 호텔 측이 별관 1층 벽에 설치한 금색 동판이 눈에 띄었다. “메트로폴 호텔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진행한 역사적 장소”라는 내용이었다.

「 베트남 경제성장 파트너 한국
하노이서 ‘우방 북한’ 존재 미미
북 형제국 쿠바도 한국과 수교
개방과 교류로 국제 일원 돼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의 메트로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중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런데 동판의 내용 중 궁금증을 낳는 대목이 있었다. 동판에는 북한과 미국을 동시에 언급한 표현이 두 곳 있었는데, 모두 북한을 미국보다 앞세운 것이다. ‘THE DEMOCRATIC PEOPLE’S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또는 DPRK-U.S.A라는 식이다. 두 정상을 지칭하면서도 김 위원장을 트럼프 대통령보다 먼저 적었다(Chairman Kim Jong Un and President Donald J. Trump). 최근 외교와 경제면에서 친미 행보를 보이는 베트남의 입장을 고려하면 의외였다. 호텔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나는 잘 알지 못한다”였다. 베트남의 외교 전략은 실리와 명분 사이를 오가며 유연성을 발휘하는 ‘대나무 외교’(Bamboo diplomacy)다. 베트남이 북한을 앞세운 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을 의식한 정치적 명분이 아니었을까.

베트남은 1950년 1월 북한과 수교했다. 베트남(당시 북베트남)으로서는 북한이 중국, 소련에 이은 세 번째 수교 국가다. 한국이 통일 베트남과 1992년 수교를 했으니, 베트남에 북한은 그야말로 역사와 전통의 우방국인 셈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북한이 수 백명의 전투기 조종사와 심리전 전문가들을 파견했고, 상당수의 전사자가 발생했으니 두 나라는 혈맹관계일 수도 있다. 김일성 주석과 베트남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호찌민 주석이 수시로 만나 우의를 다졌고, 북한은 베트남을 동남아 외교의 거점으로 여길 정도였다.

하노이의 한국 바람

이런 정치·외교적인 배경에도 불구하고 2024년 2월 베트남에서 북한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대신 한국이 북한의 자리를 훨씬 크게 대신하고 있었다. 굳이 한류를 꼽지 않더라도, 각종 통계가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하루 90편이 넘는 항공기가 양국을 오가고, 연간 360만 명의 한국인이 베트남을 찾는다. 한국을 방문하는 베트남 국민도 연간 55만 명에 이른다. 또 베트남인과 결혼한 한국 내 다문화 가정이 8만7000가구, 베트남 내에서도 한국인과 결혼한 베트남인 6200명이 각지에 가정을 이뤘다. 지난해 현대-기아차는 베트남의 판매량 1위에 올랐다. 베트남의 연간 수출액 18%(2022년 기준, 베트남 통계청)가 삼성전자의 몫이라고 하니, 한국 기업이 베트남 경제의 버팀목이라 할 수도 있겠다. 북한과 베트남을 오가는 항공편은 아예 없고, 인적 교류는 사실상 멈췄다. 이를 보여주듯 서울의 베트남 대사관이나 하노이의 한국대사관 직원은 각각 30명을 넘지만, 하노이와 평양의 북한·베트남 대사관 근무자는 각각 10명 안팎에 불과하다고 한다. 2019년 이후 베트남 주재 북한대사는 공석인 상태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과거 한국어를 구사하는 베트남인들 대부분이 평양식 어투였지만 최근엔 서울 말투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베트남 사람 중 은퇴 전후 연령대는 대부분 평양에서 한국어(북한은 조선어)를 배웠지만, 젊은 연령대는 대부분 한국에서 유학했거나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배웠다. 베트남 안의 한국말 어투조차 한국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우방 없는 냉혹한 현실

4년 전 김 위원장이 이런 상황을 느꼈을지 생각해봤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거나 “더는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강조했던 게 김 위원장 아닌가.

메트로폴 호텔에 설치된 북·미 정상회담 안내 표지판. 정용수 기자

베트남은 그가 미국과 관계 정상화 이후 다음 걸음으로 구상하는 본보기였을지 모른다. 사회주의를 지키면서도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베트남이었으니 말이다. 스위스 유학파인 김 위원장은 어쩌면 삼성이나 미국의 대기업을 평양에 유치해 ‘단번 도약’을 꾀하려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그가 택한 길은 ‘쇄국’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물론 2020년 초 코로나19 확산으로 봉쇄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건 북한이 올해 초부터 세계 각 지역으로 국제사회와 접촉을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최근 해외에 체류 중인 외교관의 자녀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이고 있다고 한다. 외교관들의 탈북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코로나19 이후 폐쇄했던 자국 내 대사관을 다시 열고, 국제기구의 대표단을 맞을 움직임도 감지된다. 북한은 지난 1월엔 비동맹운동 정상회의 참석차 정부 대표단을 아프리카 우간다로 보냈다. 이를 시작으로 지난 9일엔 외무성 대표단을 몽골에 파견하는 등 올해 들어 11차례 공식 대표단이 외국을 찾았다. 지난해 15개 이상의 해외 공관을 폐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사회로 나선 것이다. 이는 외교 노선의 변화이자 ‘김정은식 선택과 집중’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베트남을 찾았던 김 위원장이 지금이라도 베트남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국을 참고하면 어떨까. 민간인들의 활발한 교류와 경제 협력, 무엇보다 경제 성장만이 돈독한 관계의 근간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난달 14일 북한이 형제의 나라로 꼽으며 최우방 국가로 여겼던 쿠바가 북한보다 50배 이상의 경제 규모를 가진 한국과 수교를 선택한 게 이를 보여주고 있지 않나.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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