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나가면 잊어버리는 ‘기후재난 건망증’
‘80억 번째 태어난 아이, 극한지구에서 어떻게 버텨낼까’. 최근 한 언론의 기사 제목이다. 유엔은 2022년 11월 15일에 세계 인구가 80억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70억 지구’에서 ‘80억 지구’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11년이다. 10억 명 단위로 따져볼 때 지구촌 인류는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그렇다면 80억 번째 태어난 아이의 삶은 어떨까. 버네사 페레스 시세라 세계자원연구소 글로벌 경제센터장은 “80억 번째 태어난 아이는 지금 우리가 가진 것들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충분한 자원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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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염·가뭄·대홍수 등 재난 빈발
기후위기 대비 노력 아직도 부족
다양한 위험 시나리오에 대비를
」
이런 예상의 근거는 첫째, 식량부족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에 가장 취약한 것이 농업인데, 식량 생산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과도한 농업과 축산업 등은 온실가스를 쏟아내고 토지를 황폐하게 만들어 기후위기를 부채질한다. 머잖아 가난한 국가에서는 필수 식량조차 얻지 못하게 될 우려가 크다.
둘째는 팬데믹이다. 69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코로나19는 기후변화가 원인이었다는 연구가 있다. 역사상 팬데믹이라 할 수 있는 흑사병·독감·콜레라·발진티푸스 등이 모두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했다. 의학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바이러스가 나타나 새로운 팬데믹이 지구를 강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식량 부족과 팬데믹만 일으킬까. 폭염·가뭄·대홍수와 수퍼 태풍이 인류에게 엄청난 재난으로 다가오고 있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빠르게 상승하고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서 바다가 죽어가고 있다. 쉴 새 없이 발생하는 대형 산불도 생태계를 파괴한다. 이처럼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삶에 파괴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기후변화다.
유엔 ‘재해 위험 감소 사무국(UNDRR)’은 2023년 12월 보고서에서 지구 평균기온이 2.5℃ 상승하는 경우 수퍼 태풍은 현재보다 2배 더 많이 발생한다고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극심한 가뭄을 겪는 사람은 80년 이내에 두 배로 증가할 수 있고, 기온이 1℃ 증가할 때마다 극한적 일일 강수량 현상이 약 7% 증가하면서 대홍수 빈도도 늘어난다.
이뿐만 아니라 이 보고서는 극심한 더위와 습도에 따른 열 스트레스는 2100년까지 연간 12억 명에게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2050년까지 말라리아와 같은 매개체 질병으로 인해 약 5억 명의 질환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해수면 상승으로 21세기 말까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20%에 해당하는 자산이 사라질 수 있고, 2030년까지 산불에 노출된 지역은 산불 발생 기간이 지금보다 3개월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담았다.
실제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극한 재난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한국도 이런 기후 재난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올해는 또 어떤 극한 재난이 닥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기후재난에 대비하는 정부의 의지와 실천 노력은 미흡하다.
지난해 홍수 사례를 보자. 지난해 7월 13일부터 나흘간 전국 각지에서 강력한 홍수가 발생했다. 충남 청양이 570㎜, 공주 511㎜, 충북 청주 474㎜, 전북 익산은 500㎜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경북 예천 산사태가 발생해 사망 및 실종자가 50명을 넘었다.
그런데 당시 재난 현장에서 정부의 무기력과 무관심이 드러났다. 도대체 재난과 관련한 거버넌스가 있는 것인지, 재난을 줄이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하고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되풀이되는 기후재난의 피해는 오롯이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큰 공공재다. 재난에 대비하는 정부의 정책, 계획 및 프로그램은 다양한 위험 시나리오에서 작동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정부는 다양한 기후 재난 시나리오의 체계적 위험, 연쇄 영향과 중장기적 영향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기후 및 재난 위험 분석, 재난 상황 시 대처 방법을 업그레이드하고 실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춰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반기성 케이웨더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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