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도망치는 세대
일본의 베이비부머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 출생)는 ‘도망치는 세대’라고도 불린다. 이는 혜택만 받고 부담은 회피한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전후 고도성장 시기를 누렸고 연금도 자신이 기여한 보험료 이상을 받고 있으면서, 이제 그 부담을 저성장 시기에 성장하여 자산도 축적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떠넘긴다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의 2.6배에 이르는 국가채무도 함께.
일본은 고령화가 진행될 때인 1990년대 이후 매 10년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두 배가 되었다. 국가채무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한 이유를 파악하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대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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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고령자 위한 지출 우선시
증세 대신 적자 국채에 의존
국가채무 GDP 2.6배로 늘어
포퓰리즘 막고 미리 대비해야
」
첫째, 고령자에 대한 지출을 우선하고 미래세대에 대한 지출이 후순위로 밀려났다. 1990년대 저성장과 고령화가 함께 닥쳤을 때, 사회보장지출이 저출생이나 젊은 세대의 고용과 관련된 부문보다 연금, 의료보험, 장기요양보험에 집중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보장지출에서 현역 세대에 배분되는 비중이 영국이나 독일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청년층에 바로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당시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있던 젊은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있으면서 미혼, 저출생, 노동력 등에 영향을 주고 있다. 게다가 성장을 견인하려고 손쉬운 건설 투자를 늘렸고 그 지방 도로는 곰과 토끼가 다니는 곳이 되어 버렸다.
일본은 미래에 대한 지출이 부족했다. 복지는 젊은 세대에 대한 배분이 부족했고 경제는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에 집중했다. 국가채무가 쌓여갔지만,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쓰이지 않았다. 우리는 재정을 고령자 복지 뿐만 아니라 저출생, 젊은 층의 고용과 교육, 스타트업, 소프트웨어 등에 균형 있게 배분해야 한다.
둘째, 고령화 관련 복지 지출이 급증할 때 증세가 아닌 적자 국채 발행으로 대응했다. 일본은 사회지출이 늘어나는 것에 비해 국민부담률은 늘지 않았는데 대신 1990년대 중반부터 적자 국채 발행이 크게 증가했다. 증세는 느렸다. 1988년에 소비세율이 3%였는데 2019년에 이르러서야 10%가 된다. 7%포인트 인상에 30년이 걸린 셈이다. 당연하게도 고령자 복지지출 부담이 다음 세대로 미뤄지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재정 건전성에 민감하다. 하지만 65세 이상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고령자 관련 지출 증가는 이제 시작이라 보면 된다. 앞으로 빠른 속도로 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 엔화처럼 안전통화가 아니어서 국가채무를 계속 쌓기도 어렵다. 국가채무가 많아지면 원화 통화가 약세가 되어 우리나라 자산의 대외 가치가 떨어져 버릴 것이다. 지출 증가에 수반되는 증세가 있어야 한다.
셋째, 성장이 멈춤으로써 GDP의 규모가 커지지 않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증가했다. 일본이 만일 30년 동안 매년 2% 성장했다면 국가채무 비율은 260%가 아닌 140%에 머무른다. 명목성장률 2%는 실질성장률 1%에 물가상승률 1%만 되어도 달성 가능한 수치다. 하지만 일본은 디플레이션으로 명목성장률이 오히려 마이너스인 상황까지 맞이했다. 그러다 보니 GDP는 1992년 4조 달러에서 2022년 4조2000억 달러로 30년 동안 정체였다. 일본은 국가채무는 증가했지만 이를 감당할 경제의 성장 잠재력은 30년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성장의 깊은 정체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고령자의 자산이 소비를 통해 경제에 환류되게 해야 한다. 의료 등에서 규제 완화가 필요하며 연금개혁을 통해 노후의 안정성을 높여주어야 한다. 또한, 청년 세대의 혁신이 활발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청년세대에서 혁신이 일어날 문화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 혁신을 위해서는 위험을 피하지 말아야 하며, 이를 가능케 하려면 여러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청년에게 기회를 주는 데 박하다. 제때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늦게 들어갈 길이 요원하고, 창업 실패를 몇 번 겪으면 더는 갈 곳이 없다. 군대까지 가야 하니 몇 년만 옆길로 새면 번듯한 직장에 들어갈 길이 막힌다. 한두 문제 틀리면 망했다고 한다. 20대는 기회의 10년이 아니라 피 말리는 10년이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혁신에 도전하는 청년이 많아진다. 성장 잠재력을 키우려면 고령자의 자산이 돌게 하고 청년의 혁신이 박동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고령화로 인구구조가 붕괴하는 우리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목표로 스스로 대비하고 바꾸어야 한다. 포퓰리즘 정책에 안주하다 보면 국가채무 증가로 이어져 경제 전체의 틀이 흔들린다. 일본처럼 문제를 덮어두면서 ‘도망치는 세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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