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영의 과학 산책] 위대한 업적의 잣대
필즈상은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2022년에 허준이 교수가 받은 상이다. 필즈상을 받으면 작은 메달을 준다. 앞면에는 고대 수학자 아르키메데스 얼굴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원기둥에 내접하는 구가 새겨져 있다. 뒷면의 그림은 아르키메데스가 자신의 묘비명으로 새겨달라고 유언한 것이다. 궁금하다. 필즈 메달에 기원전 3세기 인물인 아르키메데스가 새겨진 이유가 무엇일까? 가우스를 필두로 위대한 수학자가 숱하게 많은데도 말이다. 구의 부피를 구한 것이 인류 최고의 수학적 업적이던가? 요즘은 자연계 대학생들도 구의 부피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이 왜 최고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유가 있다. 인류가 원기둥의 부피를 구한 후 구의 부피를 구하기까지 무려 1500년의 세월을 기다렸다. 그리고 아르키메데스를 만난 것이다. 더구나 그의 이론을 넘어서는데 다시 2000년의 세월이 걸렸다.
인류 지성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말할 때 그 진위는 중요치 않다. 그 발견이 얼마나 오랜 관습을 넘어섰는가, 또 그 업적을 넘어서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가 하는 것이 판단법이다. 그렇다. 로마제국 시대의 거장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는 지구중심설을 주장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천문학책을 넘어서는데 인류는 14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더구나 케플러가 행성의 운동법칙을 발견하면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에 빚진 것이 많다고 얘기했다. 신기한 일이다. 태양중심설을 논증하는 데 지구중심설 이론이 중요했다고 한다. 이는 인류 지성사를 오늘의 잣대로 기술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흔히 시대가 변화할 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냐에 따라 가치는 달라진다. 오늘 우리가 믿고 있는 과학적 진리도 어느 날 엉터리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과학적 가치를 판단할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우영 고등과학원 HCMC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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