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비트코인 광풍, 포모의 기억
식사 자리에서 비트코인 이야기가 다시 등장한 건 지난해 말 무렵이었다. 2021년 말 이후 좀처럼 꺼내지 않았던 화제다. 한동안 사라졌던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 기사도 등장했다. 올해 초 삼성전자 주식을 산 아빠와 비트코인을 산 아들과의 대화 등 다양한 변주가 이뤄진다.
이달 11일 국내에서 비트코인 거래 가격은 개당 1억원을 돌파했다. 원화시장 기준 역대 최고가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 대금이 코스피의 2배를 넘어섰다.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로 인한 기관투자가의 자금 유입, 채굴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 등을 이유로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넘쳐난다. 비트코인이 내재 가치가 없는 투기 수단이라는 등 회의적 시선도 있지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처럼 비트코인이 바퀴벌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며 나름의 생태계를 구축한 게 사실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비트코인은 투자재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비트코인 가격 상승이 찜찜함을 남기는 이유는 2021년의 기억 때문이다. 시장에 풀린 유동성, FOMO 등이 결합해 부동산 등 모든 자산 가격이 다락같이 오를 때였다. 치솟는 집값에 20대, 30대는 암호화폐 투자에 달려들었다. 미국의 개발자들이 장난삼아 만든 암호화폐인 도지코인이 6000% 이상 치솟았다. ‘벼락거지’란 신조어가 생겼고, FOMO에 시달리는 이들이 넘쳐났다.
2021년의 결말은 어땠을까. 2022년 글로벌 금리인상과 함께 투자 광풍은 사그라들었다. 암호화폐의 급등하는 가격에 취해 ‘묻지마 투자’에 나섰던 이들은 큰 손실을 봤다. 미비한 투자자 보호 제도도 피해를 키운 원인이 됐다. FOMO 현상에 대한 기사는 사라졌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빚더미에 앉은 청년들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도지코인, 페페 코인 등 밈 코인 가격이 들썩이는 등 ‘묻지마 투자’의 조짐이 재연되고 있다고 한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도 올해 7월은 되어야 시행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동산 등 다른 자산으로 아직 FOMO가 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불안 요소는 남아있다. 건설 비용 상승과 고금리의 여파로 주택 공급은 위축되고 있다. 30만 가구대를 유지해 왔던 신규 입주물량은 25년 24만 가구, 26년 13만 가구 등 매년 감소한다. 공급 부족이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 FOMO 등과 결합했을 때의 파괴력을 지난 정부 내내 목격한 바 있다. 다시 불이 붙는다면 이번 FOMO의 불은 더욱 끄기 어려울지 모른다. 비트코인 광풍이 찻잔 속 태풍으로만 그치길 바라는 이유다.
안효성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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