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218)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시간
2024. 3. 14. 00:12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시간
박영식(1952∼ )
거북이가 기어와도
이보다는 낫겠다
길 내는 달팽이라 해도
서산쯤엔 닿았겠다
온다던
그대 아직도
불길함만 더하고
-편편산조(책만드는집)
이 봄 부디 늦게 가소서
누구를 애타게 기다려보면 알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더디게 가는지를. 오다가 혹시 무슨 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못 오는 것은 아닌지, 온갖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치켜든다. 이 시간을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시간’이라고 명명했다.
지상의 시간은 똑같이 흐르건만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다르다. 젊은 시절 그렇게도 가지 않던 시간이, 늙으면 쏜살같이 날아가는 것을 실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과 싫은 사람과 있어야 하는 시간의 속도도 엄청나게 다르다.
그러나 이제 천하는 봄. 볼 것이 많은 봄이다. 이 아름다운 봄은 부디 늦게 가주기를 부질없이 빌어본다.
사랑하는 사람도/차마 떠나보내고//인연의 매운 정도/봄눈 녹듯 뚝 지워버리고//남아서 동무할 거라곤/무심밖에 따로 없네 -무심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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