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식충이 같아"…취업 대신 은둔을 택한 청년들의 속사정

한지혜 2024. 3. 1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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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씨리얼'이 지난 8일 공개한 '1인분의 삶을 살고 있나요'라는 제목의 영상. 사진 유튜브 캡처

취업 대신 방 안을 선택했던 청년들. 그들의 은둔 계기는 11년간 취업 공백기부터 성폭력 범죄 피해 후유증, 대학원 교수와의 갈등 등 다양했다.

유튜브 채널 '씨리얼'이 지난 8일 공개한 '1인분의 삶을 살고 있나요'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5년 이상 취업하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한 이른바 '은둔형 청년들'이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대학원생이었던 A씨(남·28)는 "지도교수와 갈등"으로 "중퇴하고 법정 싸움까지 했다"며 그 계기로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A씨는 "방 안에 스스로 가뒀다. 화장실을 가야 하거나 밥 먹을 때 말고는 방 안에 불을 꺼둔 채 계속 누워만 있었다"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던 B씨(여·30)는 "대외적으로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었지만, 실상은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며 "대학 동기들이 대기업에 많이 가서 나도 당연히 갈 거라고 했는데 실패했다.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라고 하면서 안정적인 공무원을 할 거라고 했다. 그 자체가 회피였다"고 털어놨다.

성폭력 범죄 피해 후유증으로 ″사람을 대하는 게 예전과 같지 않아졌다″며 은둔을 시작하게 됐다는 C(여·33)씨. 사진 유튜브 캡처


C씨(여·33)는 성폭력 범죄 피해 후유증으로 "사람을 대하는 게 예전과 같지 않아졌다"며 은둔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스스로가) 식충이같이 느껴진다. 부모님 냉장고를 축내는 것 같아 죄책감이 심하다"면서도 "면접에서 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는 순간이 무섭다. 솔직하게 이유를 밝히면 써주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했으나 2년 뒤 퇴사 후 11년째 취업 공백기를 갖고 있다던 D씨(여·31)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려고 공장 알바 등을 갔는데 일을 못 한다고 잘렸다”며 직장에서 겪은 부정적 평가와 반응이 트라우마가 됐다고 털어놨다.

이 밖에도 '반복되는 구직 실패', '스트레스성 폭식과 체중 증가로 인한 자존감 하락' 등의 이유도 나왔다.

은둔 청년 지원단체 '안무서운회사' 대표 유승규는 "게으른 애들, 배부른 애들, 방 안에서 허송세월 보내고 부모 등골 빨아먹는 애들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며 "하지만 사회에서 한심한 존재로 굳혀진 이들도 '고립'을 원해서 선택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이 상황을 혼자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깨달음이 필요하다"며 "주변 지인이든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라"고 당부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했으나 2년 뒤 퇴사 후 11년 째 취업 공백기를 갖고 있다던 D(여·31)씨. 사진 유튜브 캡처


이날 영상에서 취업하지 못한 기간이 11년에 달한다고 밝힌 한 출연자는 실제 친구의 도움으로 은둔 생활에서 빠져나왔다고 했다. 그는 "내 인생을 바꿀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작은 두려움에 굴복해서 용기 내지 않았던 것에 대해 많이 반성했다"고 했다.

해당 영상은 13일 오후 기준 26만회의 조회수와 1700개가 넘는 댓글 수를 기록했다. 댓글에는 "사회구조 전반적인 문제다. 학업이 맞지 않는 사람 수도 상당한데, 공부 외에는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가 너무 적다", "우리나라는 이 나이에는 뭘 해야 한다, 이 정도는 하고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서 거기서 벗어나는 자체도 힘들다. 개인이 그런 시스템에서 이탈했을 때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공포나 절망도 큰 거 같다"는 등 공감이 잇따랐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고립·은둔 청년은 전체 청년 인구의 5%에 달하는 5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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