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우 DGB금융그룹 회장 내정자, 전국구 은행 시대 열 ‘전략통’ [CEO 라운지]
‘6년 만에 내부 출신 연구·전략통 회장 선임’.
황병우 DGB금융그룹 회장 내정자(57)를 소개하는 문구다.
황 내정자는 DGB금융그룹 내 각종 기록을 양산한 CEO로 유명하다. 일단 젊다. 1967년생인 그는 금융지주 회장 중 ‘최연소’다. 지난해 대구은행장 취임 때도 대구은행 출범 후 ‘최연소’ 행장이었다. 이전까지 영업이나 인사 출신이 승승장구한 데 반해 DGB경영컨설팅센터장, 기업경영컨설팅센터장 등의 이력에서 볼 수 있듯 경영 지원과 전략에 강점이 있다는 점도 차별화 요소였다.
황 내정자는 학구파로도 정평이 나 있다.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 대구은행 입행 후 오래도록 대구은행 경제연구소에 몸담으면서 지역 경제와 금융 시장을 연구했다.
2018년 취임한 ‘외부 출신’ 김태오 DGB금융 회장은 계파에서 자유롭고 이론이 탄탄한 황 내정자를 초대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이때부터 그는 은행원을 넘어 지주 중심 의사 결정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DGB금융지주 경영지원실장, 이사회 사무국장, 대구은행 비서실장, DGB금융 그룹미래기획총괄, 그룹지속가능경영총괄 겸 ESG전략경영연구소장 등 지주와 주력 계열사의 다양한 요직을 거치면서 사실상 ‘회장 수업’을 받았다.
게다가 그는 지방은행장으로는 이례적으로 ‘전국구 인사’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배경은 이렇다.
윤석열정부 들어 은행권이 지나치게 일부 시중은행 독과점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꺼내든 카드가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이다. 이런 변화 흐름에 가장 먼저 호응한 인물이 황 내정자다. 그는 지난해 행장 자격으로 전국 단위 기자단 대상의 설명회를 주도했다. 그는 대구은행이 정부가 요구하는 요건을 다 갖춰 전국구 지점을 확장할 수 있는 시중은행 도약에 가장 적합한 후보 은행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황 내정자는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면 “은행권 경쟁 촉진과 소비자 후생 증대를 위한 메기가 될 것”이라며 “시중은행 전환으로 낮아진 조달 금리, 중소기업 금융 노하우를 활용해서 금융 니즈가 큰 중신용등급 중소기업·개인사업자를 위한 금융 지원에 나서겠다”고 차별점을 강조했다.
세간에서는 ‘대구’라는 지역명이 선명한 은행을 계속 유지할지도 궁금해했다. 그는 56년 전통(지난해 기준)을 과감히 깨고 ‘아이엠뱅크’라는 새로운 기치를 내걸며 DGB금융그룹을 한 단계 더 진화시키겠다고 천명했다. 이런 과감한 행보, 절제된 논리 전개는 큰 호응을 받았고 이후 시중은행 전환에 급물살을 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금융위원회는 조만간 시중은행 전환을 인가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빠른 의사 결정이 장점”이라며 “특히 윤석열정부 정책 전환 기조에 가장 빨리 태세 전환했다는 점, 그러면서도 지방은행 2위 순이익 등 탄탄한 내실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중은행 전환이라는 중책을 맡은 이상 DGB금융그룹 회장추천위원회 관계자는 “사명 변경 등 현안이 산적한 만큼 차기 은행장 선임을 유보하고 종전 황 행장 임기(12월까지)를 유지하는 회장·행장 겸직 체제가 유력한 방향”이라고 소개했다.
그만큼 황 내정자 어깨는 무거워질 전망이다. 대신 지주, 은행 간 소통이 원활해져 의사 결정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바탕으로 은행뿐 아니라 종전 경북권 위주 영업에 집중됐던 다른 계열사의 전국 동반 진출 효과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것이 황 내정자 생각이다. 그는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지방은행이 없는 강원, 충청 등에 거점 점포를 출점하고 아웃바운드 영업을 확충하는 등 금융 사각지대를 해소해나갈 것이며 핀테크사와 제휴, 동반 성장, 은행 외에도 증권, 보험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웰스매니지먼트(자산관리) 사업으로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전략통’답게 ‘준인터넷전문은행 전략’을 그룹 차원에서 강화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그는 지난해 간담회 때 “수도권 점포망을 아웃바운드 중심으로 효율적으로 구축함으로써, 인터넷전문은행업의 효율성을 갖추면서 대면 채널이 없다는 인터넷전문은행의 한계를 극복하는 디지털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며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준인터넷전문은행 전략을 전개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황 내정자 말대로라면 수도권, 강원권 등에 메리츠금융그룹처럼 핵심 거점 지점 위주로 운영하는 대신 토스와 같은 ‘슈퍼앱’ 전략을 통해 편리성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그림을 예상해볼 수 있다.
사내 신망도 두텁다. 행장 취임 후 계보, 파벌 대신 능력 위주 인사로 사내 문화를 확 바꿨다는 평을 많이 받고 있다. 그 스스로 연구원장 등 이른바 은행 내 ‘비주류’ 경력을 밟아왔기 때문. 그래서인지 ‘일 중심’으로 조직 재편을 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행장 취임 당일 에피소드 하나. 행장 내정 후 첫 출근날 취임식 대신 직원·노조원과 간담회를 했다. 더불어 전 행원 대상으로 비대면 영상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절약한 취임식 비용으로 가전제품, 침구를 구매해 지역 내 아동복지시설에 기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임원 회의도 토론식으로 바꿨다. 서로 마주 보는 병렬 구조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새로운 생각, 빠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봐서다.
물론 황 내정자 앞에 숙제도 많다.
당장 수익성 개선이 관건이다. DGB금융지주는 지난해 4분기 당기순손실만 369억원을 기록했다. 증권 계열 하이투자증권의 실적 부진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증권가는 DGB금융지주가 흑자전환, 이익폭 확대 등을 예상하고 있기는 하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예상 순이익은 4750억원으로 예상된다. 다만 2022년부터 2년 연속 순익이 떨어진 하이투자증권의 이익력 회복이 관건”이라고 짚었다.
약점으로 꼽히는 디지털 경쟁력도 극복 과제다. 황 내정자가 ‘준인터넷은행’ 정도로 키울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아이엠뱅크’ 브랜드 인지도가 상당히 떨어져 시중은행 전환 후 본격 영업을 강화한다고 해도 초기 판관비 부담이 상당 기간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지난해 불거진 각종 비위 행위로 이미지 균열이 갔던 사안도 황 내정자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은 금융권 검사에서 대구은행 영업점 56곳의 직원 113명이 고객 동의 없이 1600여개의 증권 계좌를 부당 개설했다고 밝혔다. 그 밖에도 크고 작은 내부 비위가 드러나면서 시중은행 전환에 먹구름을 드리운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황 내정자가 회장 취임 후 행장 겸직으로 수행할 약 9개월이 이런 비위 행위의 싹을 자를 ‘골든타임’이라는 것이 대내외 기대다.
“경영진 책무 구조도 도입을 통한 책임 경영 강화와 대손비용률, 연체율 등 건전성 관리, 불건전 영업·불완전 판매 방지를 통한 소비자 보호, Net-Zero 전략 이행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황 내정자 전임 김태오 회장이 올해 초 신년사에서 한 발언이다. 황 내정자가 김 회장의 이런 기조를 얼마나 잘 승화시킬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0호 (2024.03.13~2024.03.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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