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늘어나는 갭투자···2억으로 서울 송파에 내집마련?
# 지난 1월 서울 강동구 둔촌동 ‘프라자아파트’에서는 전용 109㎡ 아파트가 6억5000만원에 전세 세입자를 받았다. 불과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 7억3000만원에 매매 계약서를 쓴 아파트였다. 집주인이 이 아파트를 사는 데 드는 돈은 세금을 제외하고 8000만원에 불과했다.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를 끼고 집을 매수하는 이른바 ‘갭투자’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이 14주 연속 하락한 반면, 전셋값은 41주 동안 상승하면서 매맷값과 전셋값 차이가 줄고 있어서다. 수도권에서도 봄 이사철을 맞아 전세 수요가 늘어난 반면 아파트값이 반년 넘게 약세 혹은 보합을 유지하면서 갭투자가 다시 기승을 부릴 모양새다.
갭투자는 매매가와 전세가 차액으로 부동산을 소유하는 투자 방식이다. 집값 대비 전셋값이 높으면 높을수록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갭)는 작아진다. 주로 집값이 올라 시세차익이 날 거라고 기대될 때 갭투자 방식을 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경기 화성시 병점동 ‘병점역에듀포레(778가구)’ 전용 75㎡는 지난해 12월 3억원에 매매된 뒤 바로 2억7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세금 등 비용을 제외하고 3000만원에 아파트를 매입한 것. 이 아파트 해당 면적은 2021년 7월 4억1700만원에 최고가를 기록했는데 당시 전세 시세가 1억9000만원가량이었으니 갭투자를 위해서는 2억2000만원가량이 필요했다. 매매 가격이 하락하고 전셋값은 오르면서 갭투자에 필요한 자금이 크게 줄어든 셈이다.
서울 송파구 송파동 나 홀로 아파트인 ‘송파아파트(30가구)’ 전용 83㎡도 지난 1월 7억8000만원에 거래된 뒤 3주 만에 5억7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매수자는 2억1000만원으로 서울 아파트를 사들인 셈이다. 강북권에서도 규모가 작은 아파트는 더 적은 금액으로 갭투자가 가능했다. 전셋값이 매매 가격에 육박하는 갭투자도 나온다. 성북구 동선동5가 나 홀로 아파트 ‘트라움하임아파트’ 전용 106㎡의 경우 지난해 12월 3억2500만원에 주인이 바뀌었는데, 이 아파트 전셋값이 3억2000만원까지 치솟으면서 갭이 500만원까지 낮아졌다.
나 홀로 아파트에서만 갭투자가 이뤄진 건 아니다. 대단지에서도 갭투자 거래가 꽤 잦았다. 노원구 하계동 ‘학여울청구(1476가구)’ 아파트 전용 113㎡는 올 1월 20일 8억5500만원에 계약서를 썼다. 이 아파트는 같은 날 보증금 7억5500만원과 전세 세입자를 받았다.
3월 7일 기준 최근 6개월 동안 이런 갭투자 매매가 가장 많은 곳은 경기 화성시(153건)다. 이 기간 2824건의 아파트 거래 가운데 5.4%가 갭투자였다. 경남 김해시(135건·4.7%), 충남 천안시 서북구(135건·5.5%), 충남 아산시(134건·4.9%), 인천 서구(127건·5.9%) 등이 뒤를 이었다.
서울에서는 같은 기간 노원구(75건·8.9%), 강동구(66건·10.9%), 송파구(62건·9%) 등에서 갭투자가 많았다. 실제 갭투자 거래 건수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아실은 매매가 이뤄진 직후 3개월 이내에 해당 가구에서 전·월세 계약이 체결되면 갭투자로 분류해 집계한다. 일반적으로 임대차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아파트를 매수한 것도 ‘갭투자’로 보지만, 아실은 이런 사례는 포함하지 않았다.
매매 보합·전세 상승에 투자금↓
한동안 잠잠했던 갭투자 사례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건 봄 이사철을 맞아 전세 수요는 늘고 있는데 매물이 줄면서 전셋값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매맷값과 전셋값 격차가 줄어 갭투자 하기 좋은 여건이 됐다는 얘기다. 1년 전 4만8469건이었던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올 들어(3월 7일 기준) 3만2667건으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2월 마지막 주 기준 전주 대비 0.05% 올랐는데, 이는 지난해 5월 넷째 주 이후 41주 연속 상승한 수준이다.
매맷값과 전셋값 차이가 줄면서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도 7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4%로 반년 전인 지난해 7월(52.7%) 저점을 찍은 이후 반등해 1.3%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1월 52.92%에 이어 1년여 만에 가장 높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66.1%에서 66.8%로 0.7%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상승률만 놓고 보면 서울 전세가율이 전국 기준 대비 2배가량 더 오른 셈이다.
비슷한 기간 서울 아파트 전세 수요도 꾸준히 회복세를 보여 전셋값 강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20.5를 기록했다. 전세수급지수는 0~200 사잇값으로 100보다 크면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2022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늘 120을 웃돌던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같은 해 8월 108.9, 9월 93.3으로 떨어지더니 지난해 1월에는 45까지 추락했다. 이때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운 ‘역전세난’이 문제가 되던 시기다.
갭투자 계속 늘어날까?
전셋값 당분간 상승…투자 몰릴 것
시장에서는 전셋값 상승세가 장기화할 경우 갭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17년 서울 아파트 전체 매매 중 14%가량을 차지했던 갭투자 비율은 2021년 43%까지 급증했다. 2020년 8월 이른바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을 골자로 한 ‘임대차 2법’ 시행으로 전셋값이 집값보다 더 크게 오르면서 갭투자가 폭증했고, 2021년 아파트값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전셋값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총선 이후 금리 인하 등으로 매수 심리가 회복된다면 갭투자가 다시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올 하반기로 갈수록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지는 데다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감소하는 탓에 전셋값이 더 오를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 한 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1422가구로 추산됐다. 지난해 집들이를 한 3만2975가구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발간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2024년 서울 지역 입주 물량 감소에 따라 전세 가격이 추가적으로 상승할 경우 매매 가격에도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진단했다. 주로 집값이 올라 시세차익이 날 거라고 기대될 때 갭투자 수요가 유입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세를 낀 매매가 이어질 가능성은 남은 셈이다.
반면 당분간은 우려와 달리 갭투자 거래가 폭증하지 않을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간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이자 부담이 여전한 데다 최근 전세가율은 연초 이사철 등 계절적 요인 탓에 오른 것이라 수요가 줄면 다시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부동산 시장 한파로 매매가가 뒷받침되기도 어렵다. 황한솔 경제만랩 연구원은 “아파트 매매가는 고금리 영향으로 주춤하고 있지만, 입주 물량 감소와 아파트 전세 수요가 몰리면서 전셋값 상승에 따라 전세가율도 같이 오르고 있다”고 귀띔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0호 (2024.03.13~2024.03.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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